예수의 인성을 부인하는 4세기의 그리스도론적 이단주의 니체아 신조의 옹호자였던 라오디체아(Laodicea)의 주교 아폴리나리우스(Apollinarius)의 이름을 딴 것으로 삼위일체론에서 그리스도론적 이단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나타났다. 아폴리나리우스는 원래 반 아리우스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으나, 그리스도의 신성을 옹호하려는 의도가 지나친 나머지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의 인성을 무시하는 아리우스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라는 구절에서 그리스도론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열쇠를 발견했다고 믿고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①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두 개의 완전한 본성 즉 신성과 인성은 하나로 합쳐질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인성의 축소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의 일치는 설명될 수 없다. ② 죄는 인간의 의지 안에 주재하며 자유의지와 죄는 상호 의존적이기 때문에 완전한 인간이 존재하는 곳에 죄가 존재한다. ③ 예수는 완벽한 인성을 취한 것이 아니라 육체 및 육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민감한 영혼만을 취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하느님 말씀이 육화한 유일하고 단일한 본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362년 알렉산드리아 교회회의에서 처음으로 아폴리나리우스의 교의가 검토되었는데, 그 기본원리가 동방 신학과 같다고 하여 비난 받았으며 375년 안티오키아에서 그의 제자 비탈리스에 의해 ‘아폴리나리우스회’가 조직되자 그의 평판은 결정적으로 손상되었다. 376년 아폴리나리우스는 비탈리스를 그의 안티오키아 교회의 주교로 축성하고 그의 후계자 티모데오를 베리투스(Berytus)의 주교로 인정함으로써 교황의 비난에 저항했으나 그의 가르침을 이집트 주교들에게 전파하려는 시도와 함께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무산되고 말았다.
로마 교회회의의 결정은 378년 알렉산드리아 교회회의, 379년 안티오키아 교회회의 및 381년 제1차의 로마 공의회에 의해 재확정되었다. 그러나 아폴리나리아니즘은 390년 아폴리나리우스가 죽기까지 많은 동방교회에 받아들여졌으며 그의 사후에는 점차 영향력을 잃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