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의미로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고 사랑 속에 머무르는 상태를 말하나, 좁게는 대신덕의 하나로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 또는 그분을 사랑하는 습관적인 성향(性向)을 뜻한다. 이는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이(요한 14:16) 우리 인간에게 주신 것이요, 부패하지 않는 생명에서 나오는 것(1베드 1:8-9)이다. 애덕의 주제(主題)는 하느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1요한 4:9) 그 아들의 죽음에서 사랑을 보여 주셨다는 점이다(로마 5:8-10).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죽고 새 생명으로 태어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지체가 되고 성삼위께서 내주하시는 몸이 되어(요한 14:23)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한다. 애덕은 이처럼 새 사람이 되어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함으로써 모든 계명과 예언을 완성시키는 것이다(마태 22:36-40). 토마스 아퀴나스가 애덕을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우애(友愛)라고 했을 때 이는 인간이 하느님의 생명으로 드높여진 처지를 강조한 말이다.
애덕은 사랑받기보다 사랑하는 행위로 나타나고, 하느님과 이웃을 대상으로 하며,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 자신과 일치하기를 궁극목적으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애덕은 모든 덕행 중 가장 뛰어난 것이다(1고린 12:8 · 13). 교부들이 신자들을 일치시키는 원리로 애덕을 내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느님과의 일치는 하느님이 계시하신 진리를 믿고 하느님을 희망하는 순서가 전제된다. 그래서 애덕은 신덕을 뿌리로, 망덕을 줄기로 하여 그 위에 핀 아름다운 꽃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애덕은 증진될 수 있으며 사죄(死罪)로 잃게 되나 참회와 화해의 성사로 회복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