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범 [한] 良心犯 [영] crime of conscience

양심범이란 말은 법률용어로 정착된 용어는 아니다. 또 양심범을 만들어내는 사회의 지배계급은 양심범의 실재조차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에 따라 양심법이란 용어는 “자기의 양심에 어긋나는 행위를 강요당할 때, 그것을 거부하거나 자기의 양심이 명령하는 대로 행위함으로써 현행 법질서와 마찰을 불러일으켰을 경우의 ‘행위주체’”라고 규정지을 수 있다. 그러므로 양심을 속이고 범죄를 저지른 파렴치범(破廉恥犯)의 의미는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오히려 그 반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양심에 충실함으로써 현행법을 어겨 범죄를 구성한 사람을 양심범이라 부른다.

양심에 따른 행위가 보편적인 윤리로 인정되고, 그 윤리 위에 법률구조가 세워져 있는 사회 속에서는 양심범이란 있을 수 없다. 바로 사회정의와 인간의 기본권, 생존권이 무시당하고 불의와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사회구조 속에서 양심범이 나타난다. 지배계급이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악을 배태시키며, 기득권(旣得權)을 연장시키기 위해 악법을 제정하여 인간의 양심과 도덕을 타락시킬 때, 사회의 양심을 회복하고 도덕을 타락시킬 때, 사회의 양심을 회복하고 도덕을 바로 세우기 위해 불의, 부정, 부패를 몰아내려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 때 지배계급은 기존 법률구조의 이름으로 이들의 주장을 불법적인 것으로 몰아 처단하려한다.

구약시대의 수많은 예언자들도 일종의 양심범이다. 이들은 불의를 자행하며 백성을 수탈하고 억압하는 권력층들을 비판하고 경고하다가 수난을 당하고 처단된다. 무엇보다도 양심범의 대표적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예루살렘 입성을 행함으로써 당시 로마의 법질서와 마찰을 야기한 바 되었고, 결국 체포되어 처형당한다. 그 뒤 그리스도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불의한 사회구조를 변혁하려다가 수난을 당했는데 이들은 모두 양심범에 속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양심에 충실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다른 사람과 결합하여 진리를 추구하게 되고, 그 진리에 따라서 개인생활과 사회생활에서 야기되는 윤리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현대교회의 사목헌장 16장)고 선언하였다. 결국 양심범이란 지배계급의 강압적인 탄압으로 인해 희생된, 천부적인 권리인 자유와 정의와 평화의 증언자이며, 정의롭지 못한 사회의 개변자(改變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이후 불기 시작한 근대화의 바람과 함께 빈부의 격차가 극심해지고, 사회구조의 모순이 심화되어 오면서 양심범이란 용어가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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