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철학에서 쓰여 온 용어로서 경험이나 교육에 의하지 않고 선천적으로 사물을 알고 행할 수 있는 마음의 작용을 가리킨다. 이 말의 어원은 그리스어 ‘synderesis’ 즉 ‘양심의 번뜩임’(spark of conscience)이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양심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 까닭도 그 때문인데, 이 경우의 양심이란 기본 원리를 알고 있고, 특정의 인간적인 행동의 선악(善惡)을 판단하고 이를 구체적인 행동에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양지양능’이란 용어를 좀 더 확실하게 정의하자면 도덕률(道德律, moral law)의 기본적인 여러 원리, 즉 실천면에서의 보편적인 제일차적인 원리를 아는 습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행위의 기준, 즉 도덕적인 행위의 규범이 되는 보편타당한 법칙을 도덕률 또는 도덕법칙이라고 하며, 이는 다시 말을 바꾸자면, 도덕에 있어서의 당위(當爲)의 원리인 것이며, 현실적인 행위 일반의 원리와는 원칙적으로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실천면에서의 보편적인 가장 중요한 원리를 아는 습성이라는 것은 본능이나 욕구에 대립되는 이성이나 신을 근본에 앉혀 놓은 입장에서 도덕의 원리를 아는 습성이라고 해석된다.
≪한불자전≫(韓佛字典, 1880)에 의하면, ‘양지’[량지]는 ① 이성, 지능, 분별력을 말하거나, ② 선의(善意), 선의의 사고(思考), 좋은 의도를 뜻하며, ‘양능’은 ① 이성, 지능, 분별력 ②용기, 박력, 능란한 솜씨, 재능을 뜻한다. ‘양지’와 ‘양능’이 합하여 된 ‘양지양능’이라는 말은 타고난 지능 또는 지혜를 가지고서 사물을 알고 행함을 지칭한다고 보겠다.
일찍이 정하상(丁夏祥)은 ≪천주실의≫(天主實義)에서 말하는 사물의 ‘네 원인’[質 · 貌 · 作 · 爲]을 들어 “만유(萬有)를 통하여 주재(主宰)가 있음을 아는 것”이라고 지적, ‘천지의 작자’(作者)가 있음을 증명하였는데, 이 ‘아는 것’을 ‘양지’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그의 입장은 만물과 ‘양지’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또한 경서(經書)를 통한 즉 양명학(陽明學)에서의 ‘양지’가 마음의 본체(本體)이고, 지의 수행[致良知]과 행위를 바루는 격물(格物)과는 동일행위의 양측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주장도 인용하여 ‘천지의 주재’를 증명하였다. 또한 정약종(丁若鐘)의 경우, ‘양능’을 “인심이 천주계심을 아느니라”로 풀이하였다.
[참고문헌] 崔奭佑, 天主實義에 대한 韓國儒學者의 見解, 東亞硏究, 제3집, 西江大學校 東亞硏究所, 1983.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