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창설되어 1946년 폐쇄된 연길교구 소속본당. 주보는 예수성심. 소재지는 만주 간도성 연길현 용정상시(間島省 延吉縣 龍井上市). 용정지역은 ‘북관(北關)의 12사도(使徒)’로 불리는 최문화(崔文化, 베네딕토), 최병학(崔秉學) 등이 1900년 20여 가구의 교우가족을 데리고 용정의 대교동(大敎洞, 일명 佛洞)에 정착, 교우촌을 형성함으로써 복음의 씨가 뿌려진 곳이다. 교우촌 형성 이후 주민이 늘어나 1906년 삼애학교(三愛學校)가 설립되면서 차츰 교세가 신장되어 1909년 삼원봉(三元洞)본당과 함께 간도(間島)의 첫본당으로 창설되었다. 초대 주임으로 파리 외방전교회의 퀴를리에(Curlier, 南一良) 신부가 부임, 성당과 사제관을 짓는 한편 10개 지역에 공소를 개설했고, 1911년 용정시가의 화재로 성당이 전소하자 1912년 벽돌 양옥성당을 신축,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의 방문시 축성식을 가졌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본당회장 김영학(金永學)을 중심으로 교우들이 중심이 되어 용정과 인근지역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고 이듬해 5월 상해 임시정부에서 안중근(安重根, 토마스)의 동생 안정근(安定根)이 파견되어 조직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함경도와 간도지방이 오틸리엔 베네딕토회의 포교지로 되자 이듬해 베네딕토회의 히머(Hiemer, 任)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 해성학교(海星學校)를 설립했고, 이어 하프너(Hafner, 韓) 신부가 1925년에서 1931년까지, 랍(Rapp, 朴) 신부가 1931년에서 1932년까지 사목하였다. 1932년 아펠만(Appelmann, 裵) 신부가 5대 주임으로 부임, 탈시시오소년회를 조직하여 이를 교구차원의 소년운동으로 발전시키고 아울러 신심운동을 활성화시켰다. 그러나 용정에 새로운 용정하시(龍井下市)본당이 창설되자 용정상시본당은 공소로 격하되었다가 1938년 한윤승(韓允勝, 필립보) 신부가 부임하여 다시 본당으로 재출발하였다. 1943년 김성환(金成煥, 빅토리아노) 신부가 7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사목했으나 1946년 만주를 점령한 소련군이 성당을 비롯한 교회재산을 몰수함으로써 본당은 폐쇄되었다. 본당내 신심단체로는 탈시시오소년회를 포함한 7개의 단체가 있었고, 이외에 사업체로 해성학교, 야학 등이 있었다. 1936년의 교세는 교우수 1,743명, 공소 8개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