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는 강원도 원성군 신림면 용암리(江原道 原城郡 神林面 龍岩里) 719의 2. 본당 주보는 루르드의 성모. 용소막본당은 강원도에서는 풍수원(豊水院), 원주에 이어 세번째로 1904년에 설정된 교회이다. 이 교회의 개척자는 제천(堤川) 사람 최도철(崔道澈, 바르나바)이었다. 그는 1848년에 태어나 18세 때 병인(丙寅) 박해를 겪고, 1893년 풍수원본당의 르메르(L. Le Merre, 李類斯) 신부로부터 전교회장에 임명되어 각처를 다니며 전교하다가 1898년 용소막에 정착, 5∼6명 교우들과 작은 경당을 짓고 원주본당 소속 공소를 개설하였다. 1904년 4월 용소막공소는 원주본당에서 분리, 초대 주임 프와오(Vedastus Poyaud, 表光東) 신부가 부임, 용소막본당으로 발족하였다. 당시 관할지역은 원주 · 평창 · 영월 · 제천 · 단양 등 5개 군에 공소는 17개로, 본당을 중심으로 사방 300리의 광활한 지역이었으며, 신자수는 864명이었다. 그러나 10여간 초가성당을 짓고 선교를 시작한 프와오 신부가 최도철, 선병로(宣秉魯, 베드로) 회장 등의 도움에 힘입어 수년 후에는 교세가 1,000명을 넘었고, 1910년 프와요 신부가 서울로 전임 될 때는 교세 2,000명의 큰 본당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1910년 4월 2대 주임으로 부임한 기요(J. Guillot, 吉) 신부는 새 양옥성당 건립을 계획, 신축공사를 시작하려던 차에 1914년 7월 1차 세계대전 반발로 8월에 본국 프랑스 군대에 소집되어 귀국, 애석하게도 1916년 5월에 전사하고 말았다. 기요 신부의 성당 신축계획을 실천에 옮긴 선교사는 3대 시잘레(P. Chizallet, 池士元) 주임신부였다. 그는 1914년 가을에 묘재공소 이사연 회장의 알선으로 중국인 기술자들을 고용, 1915년 가을에 건평 100평의 벽돌 양옥성당을 준공하였다. 시잘레 신부는 1927년 5월 서울의 백동(栢洞, 현 혜화동)본당 창설신부로 전임, 안성(安城)본당에 있던 뤼카(F. Lucas, 陸嘉恩) 신부가 4대 주임으로 있은 뒤, 1928년에는 이철연(李喆淵, 프란치스코) 신부가 5대 주임으로 사목, 1940년 7월 제천공소를 본당으로 분리 승격시켰다. 같은 해 12월 춘천교구 설정으로 용소막본당은 서울교구에서 춘천교구로 이관, 골롬바노회 선교사들의 관할하에 들어갔다. 6.25동란 때는 성당이 공산군의 식량창고가 되어 많은 파손을 보았다. 수복 후에 이종흥(李鍾興, 크리산도) 신부가 11대 주임으로 부임, 성당과 사제관을 원상복구하고 강당을 신축하였다. 1954년 대구(大邱)교구로 이적한 이 신부의 후임으로 최동오(崔東五, 아타나시오) 신부가 부임하여 성당 증축사업을 계속하면서 성가대를 도시수준으로 육성 발전시켰다. 그 후부터 골룸바노회 신부들이 주임으로 계속 부임했으며, 1965년에 이 본당은 춘천교구와 청주(淸州)교구에서 분할 신설된 원주교구 소속이 되었다. 그 동안 관할지역 분할과 주민들의 도시진출 현상으로 교세가 크게 축소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주임은 김태원(요한) 신부이고, 신자수는 744명(1984년 현재), 공소는 3개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