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병(1888~1950). 신부. 세례명은 바오로, 호는 죽총(竹叢). 1888년 9월 27일 경기도 안성(安城)의 산촌(山村) 청룡에서 부(父) 윤상우(尹相雨)의 5남 1녀 중 차남으로 출생. 소년시절 충북 배티, 용진동(龍津洞)에서 친척과 함께 살면서 백부(伯父) 윤상운(尹相雲)이 세운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고, 1904년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 1920년 9월 18일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의 주례로 종현성당(鐘峴聖堂)[지금의 명동대성당]에서 사제로 서품되어 충북 음성 장호원(長湖院)본당의 보좌신부로 사제생활을 시작하였다. 장호원본당에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어 신설본당인 충북 괴산 고마리(叩馬里)[속칭 높은 사랑이}로 전임, 신설 본당을 맡아 1921년 한옥 사제관을 신축하였고, 1923년 아동교육을 위해 숭애의숙을 설립, 1927년 수녀원을 설립하고 1928년 서울 샤르트르 성 바오로회 수녀 2명을 초청하여 아동교육을 전담시켰다. 그 뒤 건강이 나빠 1932년 행주(幸州)본당에서 휴양하다가 1935년 황해도 은율(殷栗)로 전임되어 1936년 사제관을 신축하는 한편, 성모 유치원과 성당 학교를 개설하고 수시로 신부들을 초청, 교리 강습회와 강연회를 여는 등 교육사업에 헌신적으로 사목하였다. 또 1939년에는 기해박해 100주년을 맞아 본당과 공소 교우들과 함께 박해시대 교우들의 피신처였던 구월산(九月山)을 등반, 순교자를 현양하는 미사를 봉헌하였고 박해시대 교우들의 신앙생활을 주제로 한 소설 ≪은화≫(隱花)를 집필하기 시작, 당시 조카 윤형중(尹亨重) 신부가 주관하던 <경향잡지>(京鄕雜誌)에 1939년 1월호부터 납치되기 전 1950년 6월호까지 총 125회(상권 69, 하권 56)를 연재하였다. 나머지 부분은 월남하는 교우편에 보내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원고마저도 분실되었다. 1950년 6월 24일 상오 2시 북한 정치 보위부원에게 연행되어 비밀리에 해주(海州)로 이송된 뒤 행방불명되었다. 1977년 은율 출신의 이계중(李啓重, 요한) 신부가 은사 윤의병 신부의 피랍 27주년을 맞아 자비로 ≪은화≫(상권)를 출판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