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섭 [한] 張奎燮

장규섭(1884∼1944). 교육자, 독립운동가. 자(字)는 산음(山陰), 호는 송헌(松軒), 본관(本貫)은 인동(仁同), 세례명은 바오로. 황해도 장연(張淵)에서 장완식(張完植)의 아들로 출생, 향리에서 한학(漢學)을 수학하고 상경, 경감학교(敬監學校)를 졸업한 뒤, 황해도 교원양생강습회를 수료하고 장연 일대의 여러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08년 장연군 선산의 우신학교(又新學校) 재직시 학생들에게 애국가를 가르친 사실이 문제되어 사임하고 장연본당 부설 경애학교(敬愛學校)로 옮겨가 이 때 성세성사를 받고 입교하였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의 황해도 지방 위원 겸 적십자사 황해도지부 책임자로 임명되었고 3.1운동이 일어나자 태극기를 제작, 읍민들에게 배포하는 등 지하운동을 벌였다. 1921년 장연군 낙도(樂道)의 낙흥학교(樂興學校) 교장에 재직 중 학생들에게 애국가를 가르친 사실이 탄로나 체포되었는데, 이 때 적십자회원의 명부와 회비를 상해 임시정부로 송금한 것이 발각되어 5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으나 1924년 3년만에 가출옥되어 장연 경애보통학교 교장대리, 장연본당 회장으로 활약, 이해 서울에서 개최된 서울교구 청년연합회 총회에 장연본당 대표로 참석하였다. 그 후 <조선일보>(朝鮮日報), <동아일보>(東亞日報), <조선중앙>(朝鮮中央), <만선일보>(滿鮮日報) 등의 장연지국장을 역임하고 해주(海州)로 이주, 8.15광복을 1년 앞둔 1944년 사망하였다. 1977년 대한민국 독립유공자로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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