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지도서(指導書). 조선 교구 4대 교구장에 의해 1857년 8월 2일자로 반포된 이 교서(敎書)는 그 해 3월 25일 다블뤼(Daveluy, 安敦伊) 보좌주교의 성성식(成聖式)을 이용하여 소집한 3일간에 걸친 최초의 성직자회의 결과를 정리한 것이데, 윤서(輪書)의 형식으로 수신인은 충청도와 전라도의 모든 신자로 되어 있다. 당시는 교회 내에 인쇄시설이 없었으므로 교서를 회람형식으로 전달하여 이를 베껴 두게 하였으므로 윤시라고 하였다. 이 서한은 교우들의 행동지침, 도리, 칠성사(七聖事), 성영회(聖嬰會) 규칙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반적으로 엄격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혼인에 있어서 자녀의 의사를 존중할 것, 과부의 재혼을 권고하는 등, 당시의 전근대적인 봉건사회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용단이었다. 또한 고아나 기아(棄兒)를 거두어 양육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성영회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 서한은 간행된 적은 없으나, 그 뒤 한국교회지도서에 부분적으로 수록되었고, 많은 필사본이 오늘날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