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公權)을 장악한 권력자들이 폭정을 일삼으며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 · 유린할 때 이에 저항하여 싸우는 권리가 모든 인간에게 있다. 이 권리를 일반적으로 저항권이라 한다. 이러한 저항권은 사회가 발전하여 법제(法制)가 생겨나고, 이데 따라 법제를 이용해 권력을 남용하는 폭군들이 나타나면서, 폭군들 아래서 신음하는 백성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기본권을 회복하려고 하는 가운데 형성된 권리다. 그러므로 저항권은 위정자들에 의해 배척받는 경우가 많고, 실증법에 보장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저항권은 자연법상의 권리로 인정되어 왔다. 동양에서의 저항권은 민본사상(民本思想)과 역성혁명사상(易姓革命思想)에 포함되어 있는데 민본사상이란 피치자인 백성을 존중하는 사상이고, 역성혁명사상이란 군주(君主)가 백성들에게 선정(善政)을 베풀지 않고 폭정을 통하여 백성들을 괴롭힐 때, 이 군주를 몰아내고 선량한 사람을 군주로 삼을 권리가 백성들에게 있으며, 이것은 하늘이 원하는 바라고 생각하였다.
서양에서의 저항권은 스콜라철학자들의 주장에서 먼저 발견된다. 스콜라철학자들은 시저를 암살한 부르터스를 찬양하였고, 중세의 살리스버리의 요한도 불의한 군주를 폐위시킬 권리가 백성들에게 주어져 있음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사상들은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그는 “폭정을 일삼는 정권은 의롭지 못하다. 왜냐하면 이런 정부는 사회의 공동선을 도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정권을 전복하는 것을 반란행위로 규정지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저항권은 17∼18세기에 대두된 자연법사상과 사회계약설의 영향을 받아 보다 명확한 권리로 확립되어 영국의 명예혁명(1688년), 미국의 독립전쟁(1775∼1776년), 프랑스의 대혁명(1789년) 등의 이론적 무기로 사용되었다. 19세기 법실증주의(法實證主義)의 대두로 저항권은 한때 소멸된 듯하였으나 20세기 파시즘의 등장과 함께 재생되어 불의(不義)의 정권에 대항하는 권리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은 저항권을 연방헌법 속에 명문화(明文化)하기도 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 이후의 가톨릭사상에서는 백성의 생존을 유린하고 공동선을 침해하는 폭군의 압제(壓制)를 물리칠 자연적인 권리와 의무가 백성들에게 있음을 인정하여 왔다. 이러한 저항권은 최근의 여러 교황에 의해서 확인되었다. 교황 비오 11세는 1937년 멕시코 주교들에게 보낸 회칙 에서 “기존 정권이 정의와 진리를 공공연하게 유린하면서 근본적인 권위를 파괴하려 할 때 시민들이 하나가 되어 국가를 수호하고, 자신들을 방위하기 위해 적당하고 알맞은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여 집권자들에 거슬러 봉기하였을 때 이를 단죄하여야 할 근거는 없다”고 하면서 저항권을 시민권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으며 교황 바오로 6세는 1967년 <민족들의 발전 촉진에 관한 회칙>을 통하여 “인간의 기본권을 유린하고 국가의 공동선을 해치는 폭군의 압제가 명백하고 계속되는 경우”에 저항권이 인정될 수 있음을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