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전례에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키려는 운동. 이 운동은 모든 신자들이 전례, 특히 미사를 정확히 알고, 사제의 기도[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라틴어로 기도했다]를 이해하도록 하는 운동임과 동시에 일종의 교회 내적인 개혁운동이다. 19세기말에 베네딕토 수도회를 중심으로 벨기에와 독일에서 일어나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각국으로 퍼졌다. 수도원, 특히 독일의 보이론(Beuron), 벨기에의 몽세자르(Mont-Cesar)에서는 전례문을 실용적인 보급판으로 출판하였다. 그 중 독일어로 씌어진 ≪미사전서≫(Messbuch der hl. Kirche)는 180만 부나 팔렸다. 교황 성 비오 10세는 신자들에게 가능하다면 매일 성체배령을 하도록 권장하였다. 매일의 성체배령을 통해 전례에 친밀하게 참여하게 된다는 의도에서였다. 그는 교회음악의 순화(醇化)에도 많은 노력을 바쳤다.
본격적인 운동의 전개는, 1909년 이후 가톨릭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여기서 공송(公誦)미사(Missa recitata seu diaiogata)의 형식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뒤 교황 비오 11세는 신자들이 전례와 성가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것을 권장하고, 미사 중 ‘무언의 방관자’로 있는 것을 비난하였다. 전례운동에 의해 성무일도의 중요한 부분, 특히 아침기도와 저녁기도가 평신도들에게 친밀하게 될 수 있도록 보급판이 출판되었다. 전례운동은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상이 모두 전례에 구체화되어 있기 때문에 전례에의 참여가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즉 전례에의 능동적인 참여를 통하여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그리스도만이 그들의 위대한 중개자이며 유일한 사제, 희생과 구원의 근원임을 알게 된다. 전례는 하느님의 지상왕국, 성스런 공동체로의 신자들의 참여인 것이다. 그러므로 전례를 통해서만이 신자들을 공동체 참여가 가능하다.
1947년 교황 비오 12세는 회칙(Mediator Dei)을 통해 미사의 중심적인 위치를 강조하고 평신도 사제직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전례운동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구현되었다.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은 그 결정판이다. 공의회는 전례운동을 장려하기 위해 각 교회가 전례학, 전례음악, 교회미술, 사목사업에 조예가 깊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례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한 바 있다. 공의회의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도 전례운동에 커다란 분기점을 이를 만한 성과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