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운(1811∼1866). 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일명 승연. 세례명 요한. 서울에서 태중교우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친을 여읜 후로 농사와 분상(粉商)으로 어려운 생계를 꾸려나갔다. 1839년 기해(己亥)박해 때 체포되어 구류간(拘留間)에 1개월 동안 갇혀 있었으나 혹형을 이겨 내지 못해 배교하고 풀려 나왔고, 그 뒤 독실한 모친의 권면으로 배교한 죄를 뉘우치고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 신부의 입국을 기다리며 열심히 통회하였다. 그러던 중 1845년 김대건(金大建) 신부가 입국하자 고해성사를 받고 열심히 신앙생활로 교우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한편 결혼하여 슬하에 3남매를 두고 가족과 함께 더욱더 열심히 수계하였다. 그 뒤 1866년 초, 베르뇌(Berneux, 張) 주교의 명에 의해 교회서적 출판에 참여하게 되어 최형(崔炯)과 임치화(任致禾)를 도와 판각(板刻) 장만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곧 박해가 일어나 주교와 신부들이 체포되면서 많은 교회서적들이 적발되자 이로 이해 3월 1일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1회의 신문, 의금부의 국청에서 9회의 신문과 2회의 형문, 그리고 신장 32도를 맞은 후 3월 6일 형조로 이송되어 3월 9일 사형을 선고받고 그 날로 최형과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諡福)되었고, 이어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