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한] 戰爭 [영] war [관련] 평화

가톨릭 교회가 가르치고 있는 정당한 전쟁이론의 창시자는 성 아우구스티노이고 그의 사상은 현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재산이나 생명을 하느님과 이웃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정당방위를 위해서도 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 그는 보았다. 이 주장의 결정적 요인은 정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적 사랑이다. 그러나 평화의 유지는 위정자의 의무이기 때문에, 전쟁을 할 권리가 그에게 있고, 국민은 위정자의 명령이 하느님의 계명에 어긋나지 않는 한 복종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전쟁을 정당화하는 유일한 이유는 중대한 침해자에 대항해서 평화를 유지를 지향해야 하며 희생자에 대한 자비심을 잃지 않으면서 집행되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전쟁은 평화유지를 위한 경우에만 정당하고 희생자에게 무자비할 수 없다.

토마스 아퀴나스, 비토리아, 수아레즈와 같은 학자들에 의해서, 아우구스티노의 전쟁사상은 정리되고 정교화되어 정당한 전쟁이론(just war theory)이 정립되었다. 이 전쟁이론에서는 전쟁이 정당하려면 몇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① 합법적 위정자가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 ②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③ 전쟁은 최후수단이어야 한다. ④ 올바른 지향으로 전쟁을 해야 한다. ⑤ 전쟁은 적절한 방법으로, 예컨대, 무죄한 이들을 학살하지 않으면서, 진행되어야 한다. 그들에 의하면, 평화적 공동체에 가해진 전쟁행위에 대항하는 전쟁은 방어전쟁이요 불가피한 행동이므로 특별한 도덕의 정당성이 요청되지 않는다. 외부세력의 전쟁행위가 아닌, 단지 침해적 행위에 대한 전쟁행위는 방어전쟁이 아닌 공격전쟁이므로 특수한 도덕적 정당성이 필요한데, 이 경우에 정당한 전쟁이론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평화에 대한 사랑과 전쟁에 따르는 인명살해와 파괴행위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그들의 문제였으며, 정당한 전쟁이론은 그 문제에 관한 해답을 제공한다고 보았다.

최근의 교황들, 특히 전쟁문제를 많이 다룬 교황 비오 12세와 요한 23세의 가르침에 의거하면, 가톨릭 교회는 공격전쟁에 관한 전쟁이론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으며 정당한 전쟁이론을 방어전에 대하여 적용하고 있다. 현대에는 공격전쟁은 절대로 부당하며, 방어전도 정당한 전쟁이론의 조건을 갖추어야만 정당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현대의 가톨릭 전쟁이론은 상당한 지속성을 유지하면서도 중대한 변화를 하였다고 보인다.

애당초부터 가톨릭 전쟁이론은 그리스도적사랑, 정의 및 폭력행위를 사이에 조화를 찾으려는 노력의 결과이다. 그 이론은 그 시대의 전쟁기술가 파괴력을 염두에 두면서 전쟁의 목적과 행동을 제한하려는 노력의 결과이므로, 고정적 규정이기보다는 전쟁기술과 파괴력의 변동에 따라서 조정될 수 있는 역동적이고 융통성 있는 이론이다. 현대의 전쟁기술의 발달과 극단적 파괴력을 고려할 때 변동된 전쟁이론이 발생하였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다. 현대 가톨릭 전쟁이론은 일곱 가지 원리로 요약된다. ① 공격전쟁은 언제나 부도덕적이다. ② 방어전은 도덕적으로 정당할 수 있다. ③ 방어전 준비는 도덕적으로 합법적이다. ④ 양심적 병역 거부는 도덕적으로 정당할 수 없다. ⑤ 전쟁은 최후 수단일 경우만 정당화될 수 있다. ⑥ 비례의 원칙이 준수되어야 한다. ⑦ 무기의 사용은 제한되어야한다(New Catholic Encyclopedia, 14, pp802∼807).

1. 공격전쟁의 문제 : 교황 비오 12세는 1944년 성탄절 메시지에서 공격전쟁을 국제적 분규의 해결방법이나 국가적 야심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분명히 선언하였다(A.A.S. 37(1945), 18).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현대 전쟁무기의 파괴력이 극심하기 때문에 공격전쟁은 분규의 해소방법으로는 더 이상 적합하지 못하고, 둘째로, 그것은 평화유지를 위한 국제기구를 창설하는 인간의 창의성을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공격행위인지는 명백한 개념이 아직 불투명하다. 옛날에는 국경을 넘는 것이 공격행위로 간주되었으나 현대는 월경행위가 불필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경너머로 무기를 쏘는 행위도 공격행위가 될 것이다.

2. 방어전쟁의 정당성 : 방어전쟁이 도덕적으로 정당할 수 있다는 원칙은 거의 자명하고 가톨릭 전쟁이론의 지속적인 요소였다. 교황 비오 12세는 대량파괴력을 가지는 원자무기 · 세균무기 · 화학무기의 시대에도 인간공동체에는 부당한 공격에 대항해서 전쟁을 통하여 보호할 가치들이 있는 것이라고 선포하였다(A.A.S. 41(1949), 13). 이것은 현대에도 원칙적으로 말해서 방어전쟁이 도덕적으로 정당할 수 있다는 것이지 모든 방어전쟁이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방어전쟁이 정당화되려면 아래의 몇 가지 원칙이 준수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언급은 부당하고 과도한 방어전쟁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까다롭고 중대한 문제는 공격전쟁과 방어전쟁을 구별하는 일이다. 현재의 상황처럼 국제적 상호 의존성이 높은 경우에는 공격행위는 무기 사용과 국경 침범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다양한 자원이 무기로 사용되고 물 · 원유 · 곡물의 단절도 매우 효과적 공격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3. 방어전쟁의 준비 : 방어전쟁이 정당할 수 있다면 방어전쟁을 위한 준비가 정당하다는 것은 당연하다. 중대한 국제분규가 계속되고 그것을 조정할 수 있는 국제기구가 없는 한, 모든 국가는 방어준비의 권리를 갖는다. 이 원칙은 무기경쟁을 촉진하는 것은 아니라, 부당한 침략의 위협을 알면서도 국가는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4. 양심적 병역 거부의 부당성: 교황 비오 12세는 가톨릭 신자가 국가에 대한 자신의 봉사를 거부하고 법률이 정하는 의무 이행을 거부하는 근거로 양심을 내세울 수 없다고 하였다(A.A.S. 49(1957), 19). 이것은 국민이 무조건 전면전쟁과 무기경쟁의 정책을 지지하고 전면전에 참여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뮤레이(J.C. Murray) 신부의 해석대로, 이 원칙은 정부는 합법적이고, 그 결정은 민주적으로 이루어지며, 방어전쟁을 위한 극심한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렇지 않으면 양심적 병역거부도 정당할 수 있을 것이다.

5. 최후의 수단 : 전쟁은 모든 분규 해소의 방법을 전부 사용해본 후 최후수단으로 사용될 경우에만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이다. 전쟁의 물리적 내지 도덕적 피해는 극심하므로 회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경우에 모든 수단이 효과 없이 사용되었고 최후수단으로 전쟁만이 남아 있다고 판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 것이다. 무력공격을 받았을 경우에는 방어전이 최후수단임을 알기 쉬우나, 전쟁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공격을 받는 경우에 전쟁이 최후수단인지 판정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

6. 비례의 원칙 : 적의 불의행위(不義行爲)나 공격으로 인한 손해보다 방어전도 부당하다. 교황 비오 12세는 “전쟁으로 인한 손실이 굴욕적으로 받은 불의보다 비교 안 되게 크다면, 불의를 참아낼 의무가 있다”고 하였다(A.A.S. 41(1949), 13). 또한 방어전이라도 승산이 있을 경우에나 정당하며 그렇지 못하면, 기존의 문제와 손실은 해소되지 않은 채 파괴와 인명피해가 클 것이므로 이런 방어전은 무의미하고 비합리적인 반응이라는 것이다.

7. 무기사용의 제한 : 방어전에 있어서 무기사용의 제한원칙이 의미하는 것은 비전투적 요원이 보호되어야 하고 공격대상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좀더 근본적인 가톨릭 윤리 원칙, 즉 무죄한 인간을 직접 공격하고 살해하는 것은 언제나 비도덕적 행동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비전투적 민간인은 무죄한 인간이며 따라서 직접 공격을 받지 않아야 한다. 현대의 전쟁에서 수많은 민간인인 전쟁행위에 깊이 협조하여 전투요원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더 많은 민간인들을 무죄한 민간인이고 직접 공격을 받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전쟁 상대국의 전 국민을 전투요원으로 보고 직접 공격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전쟁이 전면전쟁이라고 한다면, 현대에도 전투원으로 취급될 수 없는 무죄한 시민은 많기 때문에 전면전쟁은 부당하다. 가공할 핵무기를 사용하면, 전투요원과 비전투요원의 구별없이 누구나 직접공격의 대상이 되고 따라서 핵전쟁은 필연적으로 전면전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핵무기를 사용하는 전쟁은 방어전이라도 정당할 수도, 도덕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가톨릭 전쟁이론은 현대 상황에서는 적합성 없는 이론이라고 비판받는다. 어떤 이는 현대 상황에서는 전투요원과 비전투요원을 구별하는 것은 거의 무의미하고 지역폭격이 자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상의 전쟁이론은 너무 추상적이고 실천성이 없다고 한다. 다른 이들은 까다로운 조건들과 그 조건의 실현 여부를 따지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이 이론은 정당바위 전쟁까지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그 조건들을 채우면서 방어전을 한다면 효과적이 방어는 불가능하므로 이 전쟁이론은 터무니없는 공론(空論)이라는 것이다. 가공할 파괴력을 가지는 현대적 핵무기를 사용하는 핵전쟁의 도덕성 문제를 생각하고 따진다는 것은 극히 어렵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현대인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 즉 전면전쟁의 비도덕성 때문에 전쟁을 완전히 포기하고 패배주의와 평화주의를 표방하는 길과, 다른 한편으로 전쟁은 어차피 부도덕한 것이니 핵전쟁에 간해서는 애초부터 도덕성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가톨릭 교회의 전쟁이론은 전쟁의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인간에게는 이상의 두 가지 선택만이 있다는 주장을 거부하고 제3의 선택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톨릭 전쟁이론은 두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다. 우선, 그것은 현대적인 상황에서도 전쟁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대중의 양심을 형성하고 도덕적 견해를 추구하게 한다. 다음으로, 이 이론은 현대적 전쟁과 평화문제에 있어서 정부정책에 관한 합리적 토론의 길을 열어 놓는다. 다시 말하면, 이 이론은 현대인이 핵무기를 염두에 두면서도, 도덕적이기 위해서는 전쟁을 포기하고 공산주의에 항복하거나, 아니면 핵무기의 도덕적 사용방법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도록 자극한다. 가톨릭 전쟁이론은 핵전쟁이 중대한 도덕적인 문제임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제한적인 핵전쟁은 있을 수도 있고, 정당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 전쟁이론은 전쟁을 포기하는 평화주의와 핵전쟁의 도덕성 연구에 대한 포기는 성급한 태도라고 배척하면서도, 제한적 전쟁을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며, 현대전은 모두 제한전쟁이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 평화

[참고문헌] William O’Brien, Just War Doctrine in a nuclear Context, Theological Studies 44, pp.191∼220, 1983 / Robert A. McCormick, Morality of War, New Catholic Encyclopedia 14, McGraw-Hill, Now York 1967 / 비오 12세, Sermo, Acta Apostolicae Sedis 37, p.18, 1945 / 비오 12세, Nuntius Radiophonicus, Acta Apostolica Sedis 41, p.13, 1949 / 비오 12세, Nuntius Radiophonicus, Acta Apostolica Sedis 49, p.19, 1957 / J.C. Murray, Remarks on the Moral Problem of War, Theological Studies 20, pp.40∼61,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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