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분리 [한] 政敎分離 [라] separatio status ab ecclesia [영]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

근대국가의 헌법에서 나타나는 기본원리의 하나로 교회와 국가가 서로 자기의 고유한 활동영역을 지키는 한 상호 간섭하지 않으며 국가는 어느 특정한 종교나 교파에만 특권이나 특별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고 어떠한 신앙에 대해서도 동등한 자유를 보장한다는 원칙. 이것은 절대권적이었던 교권에서 국가와 개인의 해방임과 동시에 종교를 국가권력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한다는 취지 아래 시행되었다. 즉 교회가 정치를 지배하려거나 국가가 종교단체의 활동 및 개인이나 신앙행위에 부당하게 간섭하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근대국가의 출현에 따라 국가와 교회는 자주 충돌하면서 마찰을 빚었다. 또한 국가가 특별한 교파에 편들어 종교전쟁을 유발케 하기도 하였다. 정교분리는 이러한 과정에서 실현되었다. 최초의 정교분리는 영국의 식민지 당시 미국의 로드아일랜드(1636년), 펜실베이니아(1682년)에서 시행되었고, 1787년 헌법에 의해 미국 전체에 확장, 적용되었다. 미국의 정교분리는 모든 교파에 평등한 지위를 부여했고, 종교에 대해 비교적 호의적이었다. 이와는 대조되는 프랑스의 정교분리는 대혁명의 자유주의적인 분위기에서 자연 반교회적인 경향으로 흘러갔다. 가톨릭 교회의 정치적 영향력을 억압하기 위해 확립한 것으로 교회에 대핸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 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각국은 다투어 정교분리의 원칙을 채택하였다. 자본주의 국가든, 사회주의 국가든, 공산주의 국가든 그 형태는 달리하지만 정교분리를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정교분리의 원칙은 자칫하면 지배자 이데올로기의 이용물로 전락할 위험을 갖고 있다. 즉 지배층은 체제유지를 위해 종교의 통합기능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대중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눈뜨지 못하게 하고, 현실의 고통을 종교의 통합적 기능 속에 수렴하여 와해시키면서 현실의 모순과 부정을 그대롤 온존시킨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 등에 의해 종교가 이용된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정교분리에 대해 새로운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교회가 정치에 직접 간섭함으로써 정교분리의 원칙을 파기한다는 가르침이 아니라 현대교회는 끊임없이 지상의 평화를 가로막는 전쟁의 야만성을 단죄하고(사목헌장 77) 전쟁의 온상인 과도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해야 함을 강조하였다(사목헌장 83). 교황 바오로 6세도 <민족들의 발전 촉진에 관한 회칙>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민족들이 기아에 울고,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빈곤에 허덕이는가 … 국가나 개인의 낭비, 허영심에 가득 찬 지출, 군비경쟁은 무엇인가. 교회는 아직도 굶주리고 불안한 생활을 계속하는 형제들의 운명에 무관심한 수 없다”(회칙 53, 74)고 강조하며 교회의 사회참여를 역설하였다. 정교분리의 원칙은 실제에 있어서 지켜지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정교의 이상적인 관계는 완전한 분리보다는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그레고리오 16세를 위시하여 역대 교황들도 완전하고 철저한 정교분리를 배척하였다.

[참고문헌] Dawson, Religion and the Modern State, 1935 / Bates, Religion liberty, 1945 / Gutierez, A theology of Liberation(성염 역, 해방신학, 1972) / 崔奭祐, 韓國天主敎會의 歷史,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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