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 제주읍(현 제주시)에 창설된 본당. 현재의 명칭은 제주중앙본당이며 제주교구 주교좌본당. 주보는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제주도는 1856년 베드로 펠릭스라는 한 사공에 의해 처음으로 복음이 전파되었다. 베드로 펠릭스는 풍랑으로 표류하던 중 구조되어 홍콩에서 한국인 신학생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한 후 고향인 제주도에 돌아와 친척과 이웃을 중심으로 전교, 곧 교우공동체를 만들었다. 이 공동체는 1866년 병인(丙寅)박해로 산산이 흩어지게 되었으나 그 후로 다시 교우들이 생기기 시작하여 1899년 페이네(C. Peynet, 裵嘉錄) 신부와 김원영(金元永,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제주읍에 부임, 제주본당을 창설하게 되었다. 1909년 페이네 신부가 전임되고, 후임에 라크루(Lacrouts, 具瑪瑟) 신부가 부임하여 성당을 마련했고, 이어 이듬해에는 서홍리(西烘里)본당[서귀포본당의 전신]이 신설되어 무세(G. Mousset, 文濟萬) 신부와 김원영 신부가 그 지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1901년 제주도 교난사건으로 성당이 파괴되고 대부분의 교우가 학살당하는 등 본당은 폐허가 되었으나 라크루 신부의 노력으로 재건되었고, 1909년에는 신성(晨星)학교를 개설, 교육사업을 전개하였다. 1915년 본당의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라크루 신부가 전임하고 후임으로 김양홍(金洋洪, 스테파노) 신부가 부임했으나 김 신부도 이듬해에 전임되어 제주본당은 목포본당에서 관리하게 되었고, 1924년 이필경(李弼景, 안드레아) 신부가 부임하면서 본당으로 재출발하였다. 1926년 최덕홍(崔德弘, 요한) 신부가 부임, 1930년 건평 130여평의 성당을 신축했고, 1933년 에이레의 성 골룸바노 외방선교회가 한국에 진출하여 제주도와 전라남도 지방을 관할하게 되자 이후 골룸바노회 신부들이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그 후 일제말기 교회탄압과 6.25동란으로 본당 발전은 잠시 정체되었으나 6.25동란 직후부터 다시 발전하기 시작, 성당이 증축되었고, 1955년 샤르트르 성 바오로수녀회 분원이 설치되었으며, 1969년 현재의 성당이 신축됨과 동시에 본당명이 제주중앙본당으로 바뀌었다. 1971년 제주도가 지목구로 설정되고 전(前)광주교구장 헨리(Henry, 玄海) 대주교가 초대 지목구장에 임명되자 주교좌본당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83년말 현재 교세는 교우수 3,638명, 공소 3개소이며, 카리타스수녀회 분원이 설치되어 본당사목을 돕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