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거주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이 정보교환 수단으로 1902년부터 1921년까지 20년 동안 프랑스어로 등사 간행한 잡지. 이 잡지는 고유한 명칭은 없고, 편의상 서울에서 발행된 것이므로 ‘le Seoul Bulletin’이라 하여 이를 ‘조선교구통신문’으로 번역하여 불리게 되었다. 이 잡지의 성격에 대해서는 1909년에 발행된 <조선교구통신문>의 내용 중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발행 횟수는 월 2회, 조선 안에 거주하는 천주교 성직자라면 비매품으로 누구나 받아 볼 수 있다. 편집자는 드예(Deshayes, 曺) 신부이고, 관리인은 비에모(Villemot, 禹) 신부로 되어 있다. 내용은 종교적 · 정치적 · 사회적 · 경제적 · 문화적인 모든 분야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아주 객관적으로 기술된 내용이고, 가끔 해설이 첨부되어 있기도 하다. 편집은 드예 신부 외에 비에모 신부, 망(Meng, 明) 신부, 라리보(Larribeau, 元享根) 신부 등이 여건이 허락되는 대로 맡아 왔는데 1921년 11월 30일 이후 폐간된다는 예고도 없이 발간이 중단되었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타벨라>(Tabella)지의 속간이 주요한 원인으로 추론되고 있다. (⇒) <타벨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