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년 서울의 문밖 수렛골(순화동)에 명동(종현)본당 산하의 공소(公所)로 설립, 1890년 명동본당 주임 두세(J. Doucet) 신부가 합동(蛤洞)에 성당대지를 마련, 1892년 9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벽돌집 성당인 약현본당을 준공시켰다. 이보다 앞서 두세 신부는 5월에 약현본당 초대 주임으로 정식 부임함으로써 서울에서 둘째 번 본당이 발족되었다. 약현본당 관할의 공소들은 경기도 일대를 위시하여 멀리 송도(松都, 開城)를 지나 황해도 배천[白川]에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깔려 있었다. 본당의 교세는 날로 늘어나서 1901년에는 송도(개성)공소, 1905년에는 행주(幸州)공소를 각각 본당으로 승격, 분리 독립시켰다. 또한 성당 구내에 1901년 여학교를, 1906년에는 남학교를 건립하였다. 1917년 두세 신부가 병사함에 따라 2대 비에모(Villemot, 禹一模) 신부가 부임, 성당 내부를 전면 개수하였다. 1926년 3대 주임으로 한국인 김윤근(金允根, 요셉) 신부가 부임, 1927년 가명(加明)유치원을 창설, 1932년에는 영등포본당(지금의 도림동본당)을 분리 독립시켰다. 1947년 본당소속의 잠실(蠶室) · 반포(盤浦) · 양재(良才) · 방배(方背) · 서초(瑞草) 등 공소를 묶어 잠실(잠원동)본당으로 분리 독립시킨 것을 필두로 신용산(新龍山, 1948), 후암동(厚岩洞, 1949년), 홍제동(弘濟洞, 1949), 아현동(阿峴洞, 1957년), 서대문(西大門, 1958년), 청파동(靑坡洞, 1963) 등 여러 본당을 분립시켰다. 1973년 11월 12대 본당주임 김창석(金昌錫, 다테오) 신부가 부임, 85년이란 세월동안 많이 훼손된 성당건물 복원공사 기공식을 1974년 8월에 가졌다. 동시에 노후된 구 수녀원을 철거하고 아담한 수녀원(건평 29평)도 함께 신축, 1976년 4월 부활절을 기해 성당 복원식을 가졌다. 현재 본당주임은 13대 여형구(呂瑩九, 미카엘) 신부이며 주보는 성 요셉, 신자수는 4,103명(1983년 현재)이다.
[참고문헌] 최석우, 약현본당사, 약현천주교회, 19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