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한] 進步 [영] advancement

18세기 이래로 인간은 구원의 이상향을 줄곧 진보라는 불투명하고 모호한 이념으로 분장하려 하고 있다. 진보라는 표현은 계몽시대 중엽인 1750년 종이의 발행자 크리스크로프 밀리우스가 처음으로 독일어로 사용하였다. 신약성서는 두 가지 의미에서 ‘프로코페’(prokope)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 말은 본래 진보가 아니라, 힘들여 노를 저어서 배를 전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프로코페’는 한편 신의 자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신앙과 그리스도 추종(追從)의 발전(1디모 4:15, 필립 1:25), 기쁜 소식의 발전(필립 1:12)을 가리킨다.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의 암종(癌腫)처럼 발전하여 만연되는(2디모 2:16-17, 3:13) 이단의 발전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진보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향해 가느냐에 있는 것이다.

현대인의 생활조건은 사회적 내지 문화적 영역에서 많이 변화되었다. 즉 현대는 진보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문화를 보다 완전하게 발전시키고 보다 널리 확장할 수 있는 새 길들이 열려 있다. 자연 · 인간 · 사회에 관한 학문의 진보, 기술의 발달, 인간교류 수단의 발달과 조직화가 이런 새 길들을 마련하였다. 소위 정밀과학은 비판적 판단을 매우 발전시켰고 심리학의 새로운 연구는 인간 활동을 보다 깊게 설명하고 있다. 역사학은 사물을 변화와 진보의 각도에서 관찰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고, 생활양식과 관습은 날로 더욱 획일화하고 있으며, 집단생활을 촉진시키는 공업화 · 도시화 및 그 밖의 여러 가지 원인들이 새로운 문화형태를 조성하며 거기서 새로운 사고방식, 새로운 행동방법이 생겨났다.

인간의 진보는 인간 복지에 크게 이바지하지만 동시에 커다란 유혹도 수반한다는 사실을 성경이 인류가족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사실 가치질서가 혼란해지고 선과 악이 뒤섞이게 되면 각 개인이나 집단은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타인의 이익은 생각지 않는다. 그 결과로 이 세상은 이미 참된 형제애의 광장이 되지 못하고 인류 자체가 멸망의 위협하에 놓여 있다.

세계 인류역사는 암혹의 세력에 저항하는 인간의 투쟁으로 엮어져 있으며, 이 투쟁은 태초부터 시작되어 주님의 말씀대로 마지막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 투쟁에 말려든 인간은 선에 충실하기 위해서 끝없이 싸워야 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도우심과 비상한 노력 없이는 자신의 통일을 획득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느님의 계획을 믿으며 인간의 진보가 인간의 참된 행복에 이바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동시에 “너희는 이 세상 풍조를 따르지 말라”, 즉 하느님과 인간에게 봉사하도록 정해진 인간활동은 죄의 연장으로 변질케 하는 허영과 악의에 가득 찬 정신을 따르지 말라고 하신 사도 바울로의 말씀을 상기하게 된다.

이러한 불행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써 정화(淨化)하고 목적 달성으로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복음은 가르친다. 인간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았고 성신 안에서 새로이 창조되었으므로 하느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사랑할 수 있고 또

사랑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하느님으로부터, 하느님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 보고 존경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교인은 피조물을 주신 데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청빈과 자유의 정신으로 피조물들을 사용하는 동시에 그 혜택을 누려야 하며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소유하는 사람으로서 진정한 세계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인류는 그 역사의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심각하고도 신속한 변화가 점차로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인간의 지능과 창조적 노력에 의해서 일어난 이 변혁들이 이제는 인간자체를 변혁시키게 되었다. 개인과 단체의 판단과 욕망, 사물과 인간에 대한 사고방식과 행동에까지 이런 변혁이 반영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크게 확대하면서도 그 능력을 언제나 충분히 지배하지는 못한다. 또 인간 정신의 가장 깊은 데를 파고들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확신을 얻지 못한다. 사회생활이 법규를 점차로 보다 명백히 발견하면서도 사회생활에 방향을 제시하기는 주저한다.

인류가 오늘과 같은 재화와 능력과 경제력을 누려 본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렇지만 세계 인구의 상당수는 아직도 기아와 빈곤에 신음하고 있으며 문맹자도 적지 않다. 인간이 오늘과 같이 강한 자유의식을 가져 본 일도 일찍이 없었건만 다른 편으로는 사회적 내지 심리적 노예화의 새로운 형태가 대두되고 있다. 세계는 필연적 연대성을 가지고 서로 종속되어 하나를 이룬다는 의식은 생생하면서도, 서로 힘의 대립으로 극도의 분열을 자아내고 있다. 정치 · 사회 · 경제 · 인종 · 이념 등의 극심한 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전쟁의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사상의 교류는 증대되고 있지만 중요한 개념을 표현한다는 말마디 자체는 서로 다른 이념 속에서 아주 다른 뜻을 가진다. 현대세계는 보다 완전한 현세 생활의 건설을 열심히 추구하지만 정신적 성장의 노력이 수반되지 못한다.

이와 같이 현대상황이 복잡하기 때문에 현대인의 상당수는 영원한 가치를 발견하지도 못하고 또 그것을 새로운 발명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따라서 희망과 불안이 엇갈리는 사이에서 현대인은 사물의 진행에 대하여 스스로 의문을 품으며 안정을 찾지 못한다. 정신적 동요와 생활조건의 변하는 보다 광범한 변혁에 직결되어 있다. 과학적 정신이 과거와는 다른 문화 형태와 사고방식을 낳아 주었다. 기술의 발전은 이미 지구의 면모를 바꾸어 놓았고 이제는 우주정복을 시도하게끔 되었다.

인간의 지성은 시간에 대해서까지 그 지배권을 확대시켰다. 역사지식으로 과거를 지배하고 추정기술과 계획설계로 미래를 지배하게 되었다. 생물학 · 심리학 · 사회학 등의 진보는 인간이 자신을 깊이 인식하는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과학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사회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도록 인간을 도와준다. 동시에 인류는 인구증가의 예측과 그 조절에 대하여 날로 더욱 깊은 관심을 가진다. 역사의 흐름도 사람이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다. 인류 사회는 이제 하나의 공동운명을 지니게 되었으므로 이미 여러 가지 역사권으로 분류될 수는 없다. 이렇게 인류는 정적 세계관에서 동적 혹은 발전적 세계관으로 넘어 가고 있다.

이처럼 서로 비슷한 사람끼리의 인간관계는 끊임없이 증가되며 동시에 사회화 자체가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마땅한 인격의 성숙과 참된 인간관계를 촉진하지는 못한다. 이러한 진보는 이미 경제발전과 기술진보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선진국에 있어서 더욱 명백히 나타나고 있지만 공업화와 도시화의 혜택을 누리려고 희망하는 후진국에 있어서도 이런 움직임이 없지는 않다. 특히 오랜 전통을 가진 백성들은 보다 성숙하고 보다 인격적인 방법으로 자유를 행사하고자 한다.

사고방식과 사회구조의 변화는 기존가치에 대한 논쟁을 일으킨다. 이러한 새로운 사태는 드디어 종교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한편으로, 날카로워 가는 비판력이 마술적인 세계 개념과 아직 남아 있는 미신적 요소를 종교에서 깨끗이 씻어 버리고 보다 인격적이며 활동적인 신앙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하느님께 대한 보다 생생한 인식을 가지게 된다. 또 한편으로는 이 때문에 종교생활에서 이탈하는 대중이 격증하고 있다. 옛날과는 달리 신이나 종교를 부정하거나 거기서 이탈한다는 것이 이제는 예외적인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것도 아니다. 오늘에 와서는 가끔 과학의 진보가 새로운 인간주의의 필연적 요청같이 여겨지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여러 지역에 있어서 철학사상으로 표현될 뿐 아니라 문학 · 예술 · 인문과학 · 역사의 해석심리에서 국법에까지 널리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크게 동요되고 있다.

우리는 땅과 인류의 완성시기를 알지 못한다. 우주변혁의 방법도 모른다. 죄로 이지러진 현세의 모습은 분명히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새로운 처소와 새로운 땅을 마련하실 것이고, 거기서는 정의가 지배할 것이며 그 행복은 인간들 마음속에서 치솟는 평화의 온갖 소망을 충족시키고도 남으리라는 가르침을 우리는 받고 있다. 그 때에 죽음은 패배하고 하느님의 자연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할 것이며 약하고 썩을 것으로 여겼던 것이 썩지 않는 힘을 입을 것이다. 사랑의 업적은 남을 것이며, 하느님이 인간을 위하여 만드신 피조물 전체가 허영의 노예상태에서 해방될 것이다.

인간이 온 세상을 다 얻을지라도 자신을 잃어버린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나 새로운 땅에 대한 기대가 현재의 이 땅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약화시켜서는 안 될 것이며 오히려 그런 의욕을 자극시켜야 할 것이다. 이 지상에서 이미 새로운 세대를 어느 정도 암시해 주는 새로운 인류공동체가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적 진보를 그리스도 왕국의 발전과 분명히 구별해야 하겠지만 그것이 인간 사회의 질서를 개선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는 한,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서도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형제적 친교와 자유와 같이 인간의 본성과 노력으로 얻어진 훌륭한 결실을 전부 다 하느님의 성신 안에서 하느님의 계명을 따라 널리 지상에 전파한 후에, 모든 때를 씻어버리고 광채 찬란하게 변모된 그것들을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당신 성부께 ‘보편되고 영원한 나라’를 돌려드릴 때이다. 그 나라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요,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요,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일 것이다. (⇒) 교회와 문화 (韓庸熙)

[참고문헌] 사목헌장, 서론과 제1부, 3장 / 사회정의, 가톨릭출판사, 1976 / 바오로 6세, 어머니와 교사, 1961 / 교회헌장, 41항 / J. 회프너, 그리스도교 사회론, 분도출판사,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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