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산사건 [한] 珍山事件 [관련] 신해박해 조상제사문제

1791년 신해(辛亥)박해의 계기가 된 사건으로 전라도 진산(珍山)에서 천주교인 윤지충(尹持忠)과 권상연(權尙然)이 제사를 폐하고 신주(神主)를 불태워 버린 폐제분주(廢祭焚主)사건을 말한다. 1790년 말 북경교구장 구베아(Gouvea, 중국명 湯士選) 주교는 조선교회에 제사금지령을 내렸다. 이 명령에 따라 윤지중은 1791년 5월(음) 모친 권씨(權氏)의 상(喪)을 당한 후 이해 8월(음) 그믐에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불태워 땅에 묻었고 윤지충의 외종사촌 권상연도 죽은 고모의 신주를 불태워 윤지충과 보조를 같이 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안 친척과 이웃 주민들이 두 사람을 무군무부(無君無父)의 불효자를 고발함으로써 사건은 서울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는데 조정에서는 이 사건을 충효의 유교이념을 국시로 하는 조선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척사자 홍낙안(洪樂安)이 진산군수 신사원(申史源)에게 사건의 처리를 독촉하는 편지를 보내고 좌상(左相) 채제공(蔡濟恭)에게는 윤지충과 권상연의 처형을 요청하는 장서(長書)를 올리자 이를 시작으로 조정에서는 윤지충과 권상연의 처형을 비롯하여 천주교 탄압의 상소가 끊이지 않게 되었다. 한편 홍낙안의 편지를 받고 이미 광주(廣州)와 한산(韓山)으로 피신한 윤지충과 권상연의 집을 수색하던 신사원은 신주함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윤지충과 권상연의 체포령을 내렸으나 피신해 있던 두 사람은 10월 26일(음) 신사원에게 자수했고 전주감영으로 이송되어 그곳에서 문초를 받았다. 문초 중 두 사람은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불태운 사실을 고백하고 그것이 천주교 교리에 따른 행동이었음을 밝혔고 결국 배교를 거부한 끝에 12월 8일(음 11월 13일) 처형당하였다. 사건은 이것으로 일단락되었으나 이 사건의 영향으로 이승훈(李承薰), 권일신(權日身)이 체포되고 최필공(崔必恭)등 10여명의 천주교인이 투옥되는 신해박해가 일어나게 되었다. (⇒) 신해박해, 조상제사문제

이 글은 카테고리: 신학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