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가사 [한] 天主歌辭

1. 명칭과 형식 및 개념 : 가사의 명칭은 천주교 가사(歌詞), 천주교 성가(聖歌), 천주 찬가(讚歌), 가사(歌辭)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천주가사는 천주교 교리와 신앙의 교훈을 전달할 목적으로 운문형식에 곡조 없이 송영(誦詠)되었다. 가사가 주로 장형(長型)으로 되었음은 작사의 본래 의도가 종교 의식(儀式)의 음악적 목적에 사용하고자 작사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 가사의 전승자(傳承者)들은 <천당노래>, <천당강론>, <사주구령가>(事主救靈歌)라고 한다. 천당노래의 뜻은 가사의 의도가 천당 영복을 열망하며 부르는 노래라는 뜻이다. 강론의 명칭은, 가사의 내용이 교훈과 교화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런 내용을 교회는 전통적으로 강론이라고 하는 데서 왔다. <사주구령가>라는 것은 천주를 섬기고 자기 영혼의 길을 가르치는 신앙본래의 목적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주가사를 곡조에 맞추어 노래한 것은 1900년대부터이며 가사의 사용자들이 자신의 감흥을 위해서 그 시대에 널리 유포된 주변의 노래에서 곡조를 차용(借用)하거나 단조로운 곡을 붙여 불렀다. 또 성가에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1920년경부터이며 가사의 일부가 성가에 자주 인용되었다.

① 형식 : 가사의 공통적 형식은 조선조 후기에 대중가사 형식인 4 · 4조로 되어 있으며 후기에 와서는 7 · 5조와 8 · 5조가 드물게 있다. 가사가 평이한 한글로 대중가사 형식을 취한 것은 대중 교화를 목적으로 작사되었음을 의미한다.

② 기원 : 천주가사는 작가의 단순한 창작욕에서 발생된 문학작품이 아니라 대중 포교와 신도들의 교화를 위한 실용적인 목적에서 작사되었다. 가사는 교리교육을 위한 교리 교수법과 대중교화와 신심의 함양으로 사용되었고 위정척사(衛正斥邪)의 사상에는 호교론적(護敎論的) 입장이 되었다. 조선 후기 왕조의 천주교 금압 정책 속에서 천주교가 참혹한 박해와 고난을 극복한 것은 자기 자신 안에 생명력을 소유한 데 있다. 믿음에 대한 확신은 고통의 한탄을 찬양으로 노래하고 죽음을 영광에로 승화하게 되었다. 여기에 천주가사는 영신지도서일 뿐 아니라 신앙생활의 영적 양식이 되어 삶의 활력소 역할을 담당하였다. 가사는 교리의 소개와 논리 전개를, 난해한 철학적 논리가 아니라 삶의 체험을 명쾌한 논리로 전개하고 있어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또 교리의 내용을 완미(玩味)하여 회화적으로 구사한 한 구절들은 격언적인 금언(金言)이 된다. 가사는 덕을 닦는데 명확하고 용이하게 제시하고 있으며, 윤리적인 반성은 삶의 현실을 예리하게 관찰하며 현장적으로 생생하고 깊은 고백에서 나온다. 천주가사는 박해 중에 교회가 당면한 신앙서 보급의 부족과 신앙교육의 난관을 해결하는 수단에서 시작되었다. 가사의 전승자가 대부분 부녀층인 것은 천주가사가 무식한 아녀자층을 교육을 해결하려는 방책의 하나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가사의 구성이 훈계, 호소, 권면, 설명조이며 형식이 국문 되풀림, 숫자, 풀림, 베틀가 민요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은 대중의 흥미에 밀착시켜 암기하기 쉽도록 의식한 것이다.

2. 가사연대 : 천주가사는 포교와 교화 활동의 소산이므로 교회의 성장을 반영한다. 가사의 효시(嚆矢)작품으로 학계의 일부에서는 1779년에 작사되었다는 이벽(李檗)의 <천주공경가>와 정약종(丁若鐘)의 <십계명가>를 들고 있다. 그러나 그 작품들을 수록한 ≪만천유고≫(蔓川遺稿)가 서지학적(書誌學的)인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어서 천주가사의 효시로 단정하기에는 문제가 있고, 이런 문제가 명확히 밝혀져야 확실하게 될 것이다. 또 그 시대의 저자들이 교리를 가사화할 만큼 교리 지식과 신앙이 성숙되었는지 의문시되고 있다. 천주가사의 최종 관심은 가사를 이루고 있는 지혜와 영성(靈性)이다.

가사의 가장 확실한 형성 연대는 1850년대로서 저자와 출처의 신빙성이 있는 최양업(崔良業) 신부의 작품이 작사된 시기이다. 최양업 신부의 이름이 밝혀진 가첩(歌帖)은 1897년에 필사된 김약슬본(金約瑟本)과 1913년에 복사된 박동헌본(朴東憲本)이다. 지금까지 발굴된 천주가사는 200여종에 이르고 있다. 가사의 발전 양상은 대개 3기로 나눌 수 있다. ① 제1기(1850년대)는 최양업 신부를 비롯하여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 남상교(南尙敎), 남종삼(南鍾三) 등 성직자와 양반계층의 작품들이다. ② 제2기(1880∼1910년) : 신교(信敎)의 자유가 획득된 시기에서 개화기까지이며 특히 개화운동의 일환으로 발간된 <경향신문>에 발표된 작품들이 주종을 이룬다. ③ 제3기(1910∼1930년) : 애국계몽운동과 교회의 토착화시기로서 <경향잡지>에 발표된 작품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제1기는 천주교 교리 발전사에 가장 괄목할만한 시기였다. 8종 13권의 한글 신심서와 교리서가 편찬되어 대중에게 보급되었고, 성사(聖事) 중심의 신앙 생활이 활발하게 시작되었다. 신심서의 간행은 부족한 선교사를 대신하였고 신심생활을 심화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최양업 신부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가사는 사말(四末)을 준비시키고 성사를 교육하며 수덕(修德)생활을 지도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가사의 수는 19편으로 <사향가>, <경세가>, <천당가>, <지옥가>, <십계강론>, <삼세대의>, <성세>, <견진>, <고해>, <성체>, <종부>, <신품>, <칠극>, <제경>, <행선>, <애덕>, <선종가>, <사심판>, <공심판> 등이며 남상교, 남종삼, 베르뇌 주교의 가사는 각 1편으로 국문 되풀림조의 특이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작자 미상의 작품은 <피악수선가>, <강신부 노래>, <신덕>, <망덕>, <애덕>(보세 만민가), <제성>, <옥중제성> 등이다. 이 시기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애용되고 후대에까지 다른 가사들이 모방하고 표절한 가사는 <사향가>, <피악수선가>, <삼세대의> 등이다. 특히 <사향가>는 내세를 지향하며 박해를 극복하는 신도들에게 희망과 용기의 위로였다. 가사들의 작품 배경은 양심성찰 지침서인 ≪성찰기략≫, 참회 기도서인 ≪회죄직지≫, 영성생활 입문서인 ≪신명초행≫, 칠성사 해설서인 ≪성교절요≫, 사후 묵상서인 ≪사말론≫ 등이다. 사향가는 ≪신명초행≫에서 영향 받았고 선종가, 사심판가, 공심판가는 ≪사말론≫의 내용을 가사화한 것이다. 가사의 제목과 소재가 그 시대의 신심서에서 그대로 차용된 것은 가사가 독창적인 문학작품으로 작사된 것이 아니라 그 시대 교회의 산물이고 교리 교수였던 것을 보여 준다. 이 시기의 가사는 박해를 겪는 교회의 지하노래였다.

제2기는 신교의 자유를 얻고 지하교회의 처지를 벗어난 시기이다. 가사의 특징은, 개인의 영성에서 우러나 고백록적인 자탄가(自歎歌)류와 개화를 권면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오늘날 전해지는 제1기의 가사들이 단편적으로 구전 또는 필사되어 오다가 편집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 편집된 가사집에 있는 수기(手記)로 최양업 신부의 작품을 밝히게 되었다. 천주가사는 오늘의 문학개념과 달라서 작품의 저자와 연대 표기에 무관심하였고 제3기의 <경향잡지>에 발표된 대부분의 가사들에까지 예외는 아니었다. 천주가사는 오늘의 문학개념과 달라서 작품의 저자와 연대 표기에 무관심하고 신앙 교육과 영성에 관심을 두었다. 작품의 저자와 연대에 대한 표시는 전승되는 과정에서 밝히기 시작하였는데 그 시기가 제2기부터이다.

제3기는 교회가 안정을 찾은 시기로 가사의 특징은 계몽을 위한 교육적 가사와 교회행사에 사용할 목적으로 작사된 것을 비롯하여 개인의 감사, 찬미, 참회, 회고 등 가사의 내용이 다양해진다. 천주가사의 최종 연대를 이 시기에 두는 것은 가사의 생활감정과 어투가 개화기 창가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저자들이 교회의 수난을 체험한 인물인 데 있다.

3. 내용 : 대중 교화와 성화(聖化)의 목적에서 기원된 천주가사는 그 제목과 소재를 그대로 그 시대의 교리에서 차용한다. 가사는 신도들에게 생소한 교리나 문학적인 가제(歌題)를 쓰지 않으며 교의(敎義)와 윤리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앙의 합리성을 변백(辨白)하는 호교론과 윤리생활이 초보적인 교리로 구성되어 있다. 신도들의 영성을 위하여 성사생활을 교육, 실천윤리의 덕행과 수계(守戒)생활, 영성이 심화된 고백과 찬가, 고담(古談)의 우화를 교훈화한 가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윤리관은 천주사랑과 인간사랑의 모든 도리를 집약한 십계명을 수계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주구령(事主救靈)의 길이요 천국을 지향하며 사는 사람들의 삶이다. 이것은 유교의 수기치인(修己治人) 정신과 실천 도덕과 상통한다. 권선징악의 사상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현세의 행업에 내세(來世)가 결정되는 상선벌악의 가르침은 쉽게 수용되었다. 그러나 자력갱생(自力更生)의 인간이 아니라 천주의 은총에 기대하는 인간이다. 따라서 삶 안에 은총을 주시는 표적인 성사생활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인간이다.

② 인간관은 철저하게 천주께 예속되어 천주의 도움 없이 선행마저 무기력한 인간이며 천주께 철저하게 소유되므로 참된 행복을 얻는다. 영성의 본질인 천주와의 일치는 피악수선(避惡修善)이 기본조건이다. 인간은 자신 안에 죄악의 뿌리를 소유하고 있으나, 그것을 극복하는 처방전도 자신 안에 소유하고 있다. 그것은 칠죄종(七罪宗)과 칠극(七克)이다. 교만(驕傲)은 겸손, 간린(慳吝)은 시사(施捨), 탐도(貪饕)는 담박(淡泊), 분노는 함인(含忍), 질투는 인애(仁愛), 사음(邪淫)은 정결, 해태(懈怠)는 흔근(忻勤)으로 대처하는 것은 인간 안에 내재한 양면성이다. 따라서 칠극은 삶에서 경험한 인간에게는 가장 실감나는 윤리 실천 덕목이며 유교 사회에까지 호감을 주는 윤리도덕이었다. 인간은 성찰과 통회를 생활하여 사는 수련의 연속이므로 고해성사(告解聖事)의 삶을 강조한다.

③ 세계관은 내세 지향적이며 현세는 내세의 도정에 있는 여인숙이며 초로(草露)이고 잠시이며 현세의 부귀영화와 빈궁재화(貧窮災禍), 고통과 환난은 내세의 영원 앞에 찰나이며 영생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현세는 영생의 준비 장소로 중요하다. 세상과 물질은 천주께서 창조하신 선물이지만 또한 현실주의의 유혹거리이며 영혼을 약하게 하는 영생의 적이다. 죽음은 삶의 끝장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과정이므로 영혼의 타당한 준비를 갖추어 선종(善終)에 힘써야 한다. 인간의 사말인 죽음, 심판, 천당, 지옥은 생에 대한 가장 중요한 묵상(默想)이며 삶의 지침이다.

④ 인생관은 죽음과 영생을 동시에 인정하며 허무를 고백하지만 그만큼 부활을 강조하는 인생이다. 인생은 기도에 정진(精進)하면서 천주와 함께 동거(同居)하는 생명이 되고 죽음을 모르게 된다. 기도는 인생의 양식(糧食)이고 생활화한 신덕(信德)과 굳은 망덕(望德)과 겸손한 사랑은 인간의 한계상황(限界狀況)을 극복하여 자기를 초월하는 인생에 살게 한다. 천주가사는, 신조(信條)를 문학적으로 표현한 기교의 소산이 아니라, 신앙의 내용을 생활화한 묵상을 통하여 소화 섭취하고 자기화한 것으로 묵상으로 닦여진 영혼의 고백이다.

⑤ 시대관은 조선후기 사회의 신학사상과 연관된다. 천주가사는 중국 중심의 세계관과 문화를 부정하고 근대 지향적인 혁신방향을 강조한다. 그리고 중국문화가 우리 문화보다 우월하다는 모화(慕華)사상에서처럼 서구 문화에 대한 개방과 선택을 통하여 이 민족이 진보와 발전의 요소를 수용하여 자기화해야 한다는 것이 시대에 대한 의지이다. 천주교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는 이질(異質)문화에 대한 진지한 연구 검토가 없이 극단적인 비난과 배척으로 말살하려는 보수성을 벗어나지 못함을 비판한다. 또한 국가의 부강은 개화에서 비롯되며 개화는 지식에서 이룩됨을 각성시키면서 학문을 권면하고 있다. 국가가 자주 독립하는 길은 국민 계몽으로 내적인 힘을 육성하는 것이며 국민 화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개화기의 일본 의존적 자세에 대해서는 통렬히 비판하며 자강(自强)과 주체의식을 각성시키면서 애국 애족의 마음을 배양하여 충효하는 신자가 되어야 함을 호소한다.

천주가사는 항구하게 새로운 가치관을 탐구하고 있다. 무엇이 인간과 사회를 구원하는 것인가 생각하는 구원의 노래이다. 천주가사의 노래를 부르면서 사람은 자기의 주체성을 분명하게 키워 간다. 천주가사가 진부할 만큼 교리 위주인 것은 천주를 갈망하는 영혼의 소리 외에는 취급하지 않은 것이다. 천주께 투신하는 마음의 생활이 사회와 민족에게 충성함과 동일 선상에서 의식한다. 천주가사는 지나칠 만큼 수계생활을 지향하고 있으나, 그것은 고백하는 삶의 인간적 표현이고, 인간은 그 안에서 자기를 체험하고 있다. (金眞召)

[참고문헌] 金東旭, 西學傳來 후의 天主歌辭 – 사향가 기타에 대하여, 人文科學, 第21輯, 延世大學校, 1969. 2 / 河聲來, 십계명가와 천주공경가, 神學展望, 21 · 23호, 1973 / 吳淑榮, 天主敎聖歌歌詞考 – 특히 崔도마神父의 聖歌를 中心으로, 淑明女大 大學院 석사학위 논문 / 金眞召, 天主歌辭의 硏究, 敎會史硏究, 3輯, 韓國敎會史硏究所, 1981; 天主歌辭 思想硏究 試論, 崔奭祐神父華甲紀念 韓國敎會史論叢, 서울 1982.

이 글은 카테고리: 신학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