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동 [한] 淸溪洞

황해도 신천군 두라면 청계리(黃海道 信川郡 斗羅面 淸溪理)에 위치한 청계동은 황해도의 유서깊은 교우촌 가운데 하나이며, 우국지사 안중근(安重根)이 자라난 곳이다. 1863년 제4대 조선교구장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의 황해도 순방 당시 이곳에는 17가구의 천주교인들이 공소를 이루고 살고 있었으나 1866년 시작된 병인박해(丙寅迫害)로 공소가 파괴되었다가 진사(進士) 안태훈(安泰勳)에 의해 다시 복음이 뿌리를 내려 1896년 공소로, 1898년 본당으로 설정되었다.

안태훈은 진해현감을 지낸 순흥 안씨(順興安氏) 안인수(安仁壽)의 3남으로 태어나 중년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884년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었던 인물로서 갑신정변(甲申政變)의 실패로 유학의 꿈이 좌절되자 가족을 이끌고 청계동으로 이주,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고 이어 가족들을 천주교로 인도하였다. 또한 안태훈의 장남 안중근도 부친의 뜻을 따라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며 황해도 지방의 전교에 헌신하는 한편 1906년 진남포에 삼흥(三興)학교, 돈의(敦義)학교를 세워 교육사업을 전개했고, 후에 연해주로 망명하여 무장독립운동을 전개, 1909년 10월 26일 만주의 하얼삔에서 이또오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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