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estrina, Giovani Pierluigi da(1526?∼1594). 이탈리아의 가톨릭 교회음악 작곡가. 로마악파의 거두. 팔레스트리나 태생. 고향 성당의 성가대장 겸 오르간 주자가 되고, 1551년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 내의 카펠라 율리아의 소년 성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554년 교황 율리오 3세에게 미사곡집을 바친 것이 인연이 되어 이듬해 교황청 악부 성가대원으로 임명, 그러나 1555년 교황 바오로 4세(재위 : 1555∼1559)에 의해 결혼했다는 이유로 지위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곧 라테란 성당 성가대장으로 취임, 1561년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의 성가대장이 되었다. 1571년 카펠라 율리아의 성가대장으로 임명되는 동시에 ‘교황청 악부 전속작곡가’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받았다. 1589년 상처를 하자, 이듬해 부유한 과부와 재혼, 그 재산으로 자기 작품을 속속 출판하였다. 그가 죽을 때까지 출판한 곡은 미사곡을 포함한 320곡이었다. 그가 늑막염으로 죽자 무덤이 성 베드로 대성당 내에 마련되었다.
그의 작품 스타일은, 초기의 것에는 네덜란드 악파적인 기교적 다성곡(多聲曲)이 많지만, 후기에 가까워지면서 그 기교는 간소화되고 동음음악적인 처리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관능적인 반음계적 진행이나 자극적인 선율의 비약은 가급적 피하고, 불협화음마저 최소한도로 제한해서 종교적 청순성을 유지했으며, 곡보다도 가사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려고 힘썼다. 이것은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 논의된 교회음악 본연의 자세에 합치되어 있고, 로마악파의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서도 이 스타일은 계승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