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원] Franciscus [관련] 프란치스코회

① 아시시의 ∼(F. Assisiensis, 1182?∼1226). 성인. 프란치스코회 창설자. 축일은 10월 4일. 너그러움, 단순하고 천진한 신앙심, 신과 인간을 향한 헌신, 자연에 대한 사랑과 진실한 겸손 등으로 인해 중세기에 나타난 가장 사랑받는 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비오(Pius) 11세는 그를 “또 하나의 그리스도”(alter Christus)라고 불렀다(1926년). 부유한 직물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자유분방하고 야심 많은 청년기를 보내던 중 일련의 계시와 나환자와의 만남을 통해 23세에 개종하였다. 2년 뒤 아시시 근처 산 다미아노(San Damiano) 성당에 있는 십자가상(像)으로부터 “가서 무너지려고 하는 나의 집을 돌봐라” 하는 목소리를 듣고 소명을 자각하였으며, 1209년에는 마태오 복음 10장 5-14절의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하는 ‘작은 형제회’를 창설하였다. 형제들은 복음정신을 따라 세상에서 이방인과 순례자로 살며(프란치스코회칙 6장)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았다.

수도회의 창립 후 그 회의 영성적 성장을 위해 편지와 훈시를 보내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선교를 위해 시리아(1212년)와 스페인(1213∼1214년), 심지어는 근동(1219년)에까지 여행하였지만 틈이 날 때마다 외딴 곳에서 혼자 기도하며 명상하는 것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말년은 아시시 근방에서 보냈는데 눈이 먼 데다가 중병을 앓았다. 영면 뒤 아시시의 성 지오르지오(St. Giorgio) 성당에 안장되었다. 1228년 교황 그레고리오(Gregorius) 9세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1916년 가톨릭 액션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 프란치스코회

② 파올라의 ∼(F. de Paola, 1416∼1507). 성인, 은수사. 미니모회(Minimi)의 창립자.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주(州) 코센차군(郡) 파올라에서 태어나 프랑스의 투르에서 세상을 떠났다. 12세 때 산마르코의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1년간 지낸 뒤 부모를 따라 로마, 아시시를 순례하였다. 14세 때 파올라 부근 해변에 은수사로서 정주, 19세 때부터 많은 제자들이 신변에 모이기 시작, 이 집단은 ‘미니모’회(모든 탁발수도사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라는 겸손의 뜻)라는 새로운 수도회로 발전되어 갔다. 이때부터 그는 가난하고 억압당한 자들의 옹호자가 되어 그들의 주장을 아라곤왕국의 페라테 1세나 프랑스의 루이 11세 앞에서 서슴없이 변호하였다. 1474년 미니모회는 교황 식스토 4세로부터 공인을 얻었다. 1482년 임종이 가까워진 루이 11세로부터 종부성사를 부탁받자, 교황 식스토 4세의 권유도 있고 하여 수락하고 프랑스에 가서 행복한 임종을 맞도록 마련하였다. 루이 11세의 후계자 샤를르 8세의 간청으로 프란치스코는 여생을 프랑스에 그대로 눌러 있게 되었다. 그 동안 프랑스와 브르타뉘공국(公國)과의 평화유지에 공헌하였고, 루이 11세에게 스페인에 대해 루지용(Roussillon), 세르다뉴(Cerdagne) 양군을 할양(割讓)할 것을 권고함으로써 두 나라 사이의 평온을 유지하게 하였다. 그는 평생을 영적(靈的)인 아버지로 숭앙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겸손과 청빈을 지켰다. 1519년 교황 레오 12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축일은 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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