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석문 [한] 玄錫文

현석문(1797∼1846). 성인(聖人). 축일 9월 20일. 회장. 세례명 가롤로. 1801년 신유(辛酉)박해 때의 순교자 현계흠(玄啓欽)의 아들. 1839년 기해(己亥)박해 때 순교한 성녀 현경련(玄敬連)의 동생. 서울 중인 계급의 독실한 교우가정에서 태어났다. 5살 되던 1801년 부친이 순교한 후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모친, 누이와 함께 열심히 수계했고, 1837년 샤스탕(Chastan, 鄭) 신부가 입국하자 샤스탕 신부의 복사(服事)가 되어 신부와 함께 각지를 순회하며 전교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로 주교와 신부들이 체포될 때 회장으로 임명되었고 박해 후 성직자 없는 조선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 순교자들의 기록을 수집, 정리하여 ≪기해일기≫(己亥日記)를 편찬하고, 또 포졸들에게 쫓기면서도 변성명(變姓名)을 하고 각지에 흩어져 있는 교우들을 찾아다니며 위로하고 격려하는 한편 중국 교회와 긴밀히 연락하였다. 그 뒤 1846년 5월 김대건 신부가 입국한 지 얼마 안 되어 체포되고 병오(丙午)박해가 일어나게 되자 신부의 처소에 남아 있던 여교우들을 새 집으로 피신시키고 자신도 그 집에 숨어 있다가 7월 11일 정철염(鄭鐵艶), 이간난(李干蘭), 김임이(金任伊), 우술임(禹述任)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체포된 뒤 형벌과 고문은 별로 받지 않고 꽤 우대를 받았지만 사형선고를 받는 순간까지 함께 갇힌 교우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회장의 직무를 다하였다. 9월 19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軍門梟首)형을 받고 순교, 이로써 1801년 순교한 부친, 1839년 순교한 아내, 아들, 그리고 누이와 함께 전 가족의 순교라는 영광을 입게 되었다.

1925년 7월 5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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