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유한 [한] 洪儒漢

홍유한(1726∼1785). 명문가(名門家)에서 태어난 그는 8,9세 떼에 이미 사서삼경(四書三經)과 백가제서(百家諸書)에 통달하여 신동이라는 평을 들었다. 1742년 16세 때 성호 이익(星湖 李瀷)의 문하생이 되었으며 1751년 이익이 ≪천주실의≫(天主實義)와 ≪칠극≫(七克) 등 서학을 연구할 때, 그는 누구보다도 예리한 관찰력과 명민한 이지력(理智力)으로 대철리(大哲理)를 먼저 발견하였다. 그는 유학(儒學)과 불경(佛經)에서 찾아볼 수 없는 오묘한 진리를 깨달아 솔선실천할 것을 가슴 깊이 품고 1757년부터 고향인 예산(禮山)으로 내려가 살았다. 이곳에서 그는 스스로 터득한 신앙생활을 영위했으나, 이곳도 여러 가지 번거로움이 많아 1775년에 더 조용한 곳을 찾아 경상도 소백산(小白山) 밑 구들미[九皐里, 현재는 九邱里]로 옮겨 칠극에서 터득한 덕행을 쌓기 위해 7일마다 하루를 축일(주일)로 정하여 속세일을 전폐하고 기도와 묵상으로 하루를 거룩히 지내는 동시, 육욕을 금하여 30세 이후는 정절의 덕을 실천하였다. 그는 자비심과 정의감이 투철하면서도 희비애락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는 위엄이 있었다. 본시 기질이나 신체가 강건한 편이었던 그는 지나친 고행과 절식으로 점차 몸이 쇠약해졌으나 오로지 기도와 묵상으로 만년(晩年)을 보내다가 1785년 1월 30일 60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천주의 존재를 굳게 믿고 계명을 지키며 덕행을 닦다가 일생을 마쳤다. 그 당시 사정으로 미루어 그는 수세(水洗)를 받지 못하고 필경 화세(火洗)를 받았을 것으로 믿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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