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심 [한] 黃沁

황심(1756∼1801). 순교자. 세례명 토마스. 충청도 덕산(德山) 출신으로 본명은 인철(寅喆). 내포(內浦)의 사도로 불리는 이존창(李存昌, 일명 端源)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한 뒤로는 지황(池璜), 윤유일(尹有一)과 더불어, 조선 교회와 북경주교와의 연락 일을 담당하였다. 1794년 12월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북경으로부터 영입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주문모 신부의 입국사실이 탄로되어 1795년에 윤유일, 지황이 잡혀 순교한 뒤로는 황심이 주로 북경과의 연락을 맡았다.

즉 1796년에 주문모 신부의 서한을 북경주교에게 전달하기 위해, 동지사(冬至使)의 하인 자리를 돈을 주고 사서 북경에 들어가 밀서를 무사히 전달했고, 그 뒤에도 여러 번 옥천희(玉千禧), 김유산(金有山) 등과 함께 북경을 왕래하면서 조선 교회의 사정을 북경에 알리는 동시, 조선 교회에서 성사집행에 필요로 하는 성유(聖油) 등 성물을 가져와 주 신부를 도왔다. 1801년 신유(辛酉)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강원도 춘천(春川)으로 피신하였는데, 이 때 황사영(黃嗣永)이 가까운 곳에 피신해 온 것을 알고는, 제천(提川)으로 그를 찾아가, 주 신부의 순교사실을 알리는 동시, 조선 교회의 이 같은 사정을 북경주교에게 알리는 방안을 의논하였다.

이렇게 해서 황사영은 북경주교와 면식이 있는 황심의 이름으로 이른바 백서(帛書)를 쓰고, 황심은 이를 옥천희를 시켜 북경에 전달하기 위해 그해 9월에 백서를 받으러 다시 제천에 가기로 약속이 되었다. 그러나 그해 9월 20일 옥천희가 먼저 잡히고, 이어 황심도 그 달 26일에 잡혔으며 황사영도 10월 3일에 잡혀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갔다. 그는 1801년 10월 24일 옥천희와 함께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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