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양을 치는 목자(牧者)의 뜻으로 비유하여 주교(主敎)를 가리키는 말. 그러나 감목은 정식 교구의 주교가 아니라 포교지 교구의 교구장인 주교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대목구(代牧區)의 대목(代牧) 및 지목구(知牧區) 지목(知牧)이 바로 감목이다. 지목은 일반적으로 주교가 아니지만 주교의 대우를 받으므로 역시 감목으로 불린다. 한국 천주교회는 1831년 조선대목구의 대목들은 자신을 ‘감목’ 또는 ‘본감목’ ‘조선감목’으로 불렀다. 감목의 명칭은 1962년 한국이 정식 교구, 다시 말해서 교계제도(敎階制度)가 설정되기까지 사용되었다. 즉 조선교구의 역대 교구장을 비롯하여 1911년 이래 교구의 증설로 여러 감목들이 탄생하였는데, 1911년에 대구 대목구의 설정과 더불어 대구 감목이, 1920년에는 원산 감목, 1927년에는 평양 감목, 1928년에는 연길(延吉) 감목, 1937년에는 전주 및 광주 감목, 1939년에는 춘천 감목, 1957년에는 부산 감목, 1958년에는 대전 및 청주 감목, 끝으로 1961년에 인천 감목이 탄생하였다.
감목은 그의 교구 내에서 정식 교구장과 똑같은 권리와 권한을 갖는다. 대목은 주교이지만 지목은 일반적으로 주교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주교의 존칭으로 불리고, 주교의 복장을 착용할 수 있는 등 여러 점에서 주교의 예우를 받는다. 그는 견진성사를 집전할 수 있고 성작(聖爵)을 축성하며 삭발례와 소품까지 집전할 수 있다. 감목은 부감목을 둘 수 있는데, 부감목은 부주교로 불리며, 감목의 부재시 또는 공석 중에만 감목의 권한을 대행할 수 있다. 조선 감목은 계승권을 가진 보좌주교를 두어 왔다. 이는 박해로 인해 조선 감목이 중단될 경우에 대비해서 취해진 교황성좌의 특별 배려에서였다. 감목은 그의 교구의 유일한 입법자이다. 그는 최소한 10년마다 교구 회의를 소집해야 하고 또 원칙적으로 교구회의를 거쳐 성직자의 선교지침, 평신도의 신앙지침 등을 결정하게 되는데, 이 교구회의 의장은 감목이 맡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