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목대리 [한] 監牧代理 [라] Vicarius foraneus [영] Vicar forane [관련] 감목대리구

감목대리구(監牧代理區)를 담당하는 사제(司祭). 주교는 그의 교구 영역을 여러 본당으로 구성된 지구로 구분하여, 마땅한 성직자로 하여금 각 지구를 감독하게 하는데, 이러한 직책에 임명된 신부를 지구장(地區長, Vicarius episcopalis) 또는 지구수석사제(首席司祭) 등으로 부른다. 주교는 이들의 임면(任免)을 임의로 할 수 있다. 지구장은 담당 구역 내의 성직자들의 생활을 비롯하여 성무집행, 교리교육, 교회재산의 관리, 본당문서의 정리 등을 감독하고 매년 교구장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감목대리는 교회법상 지구장에 해당되는 직책이지만, 포교지(布敎地)의 경우 지구장과는 전혀 다르다. 지구장의 임무는 담당 구역에서 성직자의 생활을 감독하는데 그치지만, 감독대리의 임무는 무엇보다도 담당 구역이 조속히 교구로 승격되도록 준비하는 데 있다. 감목대리는 감목이라는 포교지의 고유한 직책에서 연유한다. 감목은 포교지의 고유한 교구제도인 대목구(代牧區)나 지목구(知牧區)의 대목(代牧)이나 지목(知牧)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포교지의 감목에게는 대목구란 잠정적인 교구제도를 조속히 정식 교구제도로 발전시키고, 그것을 현지인에게 넘겨주어야 할 중대한 의무가 있다. 이 실현을 위해 잠정적으로 나타난 것이 감목대리라는 직책이었다. 감목대리에게 주교만이 할 수 있는 견진성사의 집전이 위임된 것도 실은 교구창설의 준비작업과 관련된 특전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교회에 처음으로 감목대리가 탄생한 것은, 1928년 서울교구의 감목인 뮈텔(Mutel, 閔德孝) 주교가, 서울 대목구에 속하는 황해도(黃海道)를 감목대리구로 설정하는 동시, 장연(長淵)본당의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신부를 초대 감목대리로 임명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러나 황해도는 끝내 교구로 승격되지 못하고 1942년 황해도 감목대리구의 폐지와 더불어, 김신부는 감목대리의 직책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어 1931년에는 대구 대목구에 속해 있던 전라북도가 감목대리구로 설정되어, 전주(全州)본당의 김양홍(金洋洪, 스테파노) 신부가 초대 감목대리로 임명되었다. 이 감목대리구는 1937년에 한국인에게 위임되는. 동시에 김신부도 감목으로 승격되었다.

광복과 더불어 한국 교회에는 많은 감목대리가 탄생하였는데, 이는 방인(邦人)교구로 육성키 위해서가 아니라, 새 선교단체에 새 지역을 맡겨 교구를 증설하려 했기 때문이다. 충청남도와 안동지역은 파리 외방전교회에 위촉되었고, 충청북도와 인천(仁川)은 미국 메리놀회에 위촉되었으며, 제주도는 에이레 골룸바노회에 위촉되었는데, 이들은 곧 교구로 승격되었다. 1956년에 대구 대목구의 감독대리구로 설정된 바 있는 왜관(倭館)지구만은 아직도 감목대리구로 남아 있다. 감목대리는 한국 교회에서 방인교구의 탄생과 교구의 증설을 촉진시켰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는 크다고 하겠다. (⇒) 감목대리구

[참고문헌] 敎會史硏究, 第4輯, 한국교회사연구소,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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