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한] 江華

교회사적지. 강화도는 수도방어의 요충지로서 외세와 충돌의 현장이었기 때문에 박해 또한 극심하였다. 1866년 프랑스 성직자 9명이 처형된 사실을 추궁한다는 명목으로 프랑스는 함대 6척에 병사 600여명을 파견하였다. 10월 3일 강화도 근해에 정박한 함대는 포함(砲艦)과 연락선을 강화 갑곶(甲串)에 파견, 마침내 상황은 전투적으로 발전하여 전등사 전투에서 패한 프랑스군은 강화읍을 불지르고 10월 10일 후퇴하였다. 이로 인해 강화지방에서는 새로운 박해가 일어났다. 1866년 성연순(成連順)과 원윤철(元允哲)이 통진에서 치명했고, 1868년에는 박상손(朴常孫), 우윤집(禹允集), 최순복(崔順福), 최인서(요한), 조서방, 박서방, 최영준, 장치선 등이 강화에서 치명하였으며, 1870년에는 권바오로가 통진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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