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대교구 주교좌 성당. 1886년 로베르(Robert, 金保祿) 신부가 경상남북도 지역의 전교를 담당하여 대구로 부임하여 읍내 밖 신나무골과 새방골에서 은신, 전교하다가 읍내 정규옥(鄭圭鈺) 집에 주거하며 7년 동안 전교 활동을 하였다. 그 뒤 1897년 현재의 계산동본당의 대지를 구입하고 그 곳에 있던 초가를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며 성당 신축을 계획하여 3년만인 1899년 한국식 목조 십자형의 성당을 신축하였다. 축성식은같은 해 성탄첨례날에 거행하고 성모를 성당 주보로 삼았다. 당시 성당 대지를 물색 중 처음에는 동산(東山)의 구릉지(丘陵地)를 내정하였으나 몇몇 사람들의 반대로 대구 시내에서 제일 저지대(低地帶)에 위치하게 되었는데 개신교가 그 동산을 매입하여 공사를 착수할 때는 적지 아니 후회도 많았다.
더욱이 어렵게 지은 한국식 목조 십자형은 완공한 지 1년도 못 되어 불에 타고 말았다. 그러나 서상돈(徐相燉), 김종학(金鍾學), 정규옥 등 몇몇 사람의 도움으로 성당 재건 계획을 세워 한국에서 구하지 못하는 자재를 프랑스 혹은 홍콩에서 수입하여 서양식 벽돌 건물을 건축하기로 하였다. 당시 대구에서 서양식 건물로는 처음인 새 성당이 1902년 5월에 준공되었다. 2개의 종각이 우뚝 솟아 뾰족집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그 뒤 1911년 대구교구 설정으로 주교좌 성당으로 승격되고 교우 수가 증가함에 따라 증축하지 않을 수 없어 성당 종각을 2배로 높이고 성당 뒤쪽을 확장하여 남북으로 나래를 달아 1918년 완공되었다. 축성식은 1919년 5월 11일 거행되었다. 1983년 현재 신자 수는 9,887명이며 루르드의 성모 마리아를 주보로 모시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