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신학 [한] 敎父神學 [라] theologia patristica [영] patristic theology

그리스도교 신앙을 이해하고 전하였던 교부들의 이론 체계. 로마의 글레멘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등 초세기의 교부들 사이 에는 아직 신학이 성립되지 못하였다. 그들은 성서의 자료와 사도들의 설교를 이론적 분석없이 되풀이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2세기와 3세기에 이르러 교회와 이교도 세계와의 접촉이 잦아지게 되자 두 가지 형태의 호교론자들이 나타났다. 타치아노와 같이 이교도의 철학을 배척하는 전통주의자들과, 유스티노와 같이 그리스 철학을 그리스도교 신앙의 이익을 위하여 기꺼이 적용하는 측이 그것이다. 후자는 그노시티즘의 오류에 빠질 위험에 놓여 있었으나 다행히도 이레네오는 계시진리의 살아있는 보고(寶庫)인 교회의 전승에 충실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유스티노의 사변적인 노선은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 및 오리제네스에 의하여 계승 발전되었고 대 카파도치아노, 바실리오, 니사의 그레고리오, 나치안츠(Nazianzus)의 그레고리오 등에게 영향을 끼쳤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특징은 플라톤 사상과 성서의 비유적 해석과 심원한 신비주의에로 현저히 기우는 경향이었다.

이와 달리 안티오키아의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는 요한 크리소스토모,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 및 테오도레토를 배출하였는데 이들은 전 교부시대를 통하여 신학의 흐름에 영향을 끼쳤다. 뒤이어 일어난 논쟁들의 주요 논점은 최초의 7개 세계 공의회의 개 회와 때맞추어 부각되었는데 각 공의회는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위격에 대한 주요 교의를 정의하는 데 있어서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키아 학파로부터 두루 이익을 보았다. 교부들 가운데 신학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들 중의 하나는 아우구스티노이다. 그는 자기보다 앞선 4세기간의 전승을 종합하였고 난해한 교의적 문제를 해명하였으며 교리와 관련되는 지식을 조화 통합시켰다. 이 지식은 후에 토마스 아퀴나스와 스콜라 철학자들이 통일된 사상체계로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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