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효장애 중의 하나. 성별(聖別)된 생활의 수도회에서 종신공개정결서원을 한 남녀 수도자들에게 혼인을 금하는 교회법적인 조건. (⇒) 혼인장애
허무주의 [독] Nihilismus [영] nihilism
이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투르게네프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1861). 그는 기성의 질서와 가치를 부정하는 주인공을 니힐리스트라고 불렀다. 니힐리즘이란 원래 무(無)를 의미하는 라틴어 nihil에서 유래된다. 여기서 ‘무’란 존재에 대한 비존재란 의미는 아니고 세계와 생존의 의미와 관련된 가치의식이다. 가치의식에 의해 생존은 의미를 부여받게 되고 인생의 목표를 세우게 되는데, 니힐리즘이란 삶의 가치의식을 상실한 채, 이전의 낡은 가치는 붕괴하고 새로운 가치는 아직 정립되지 않은 전환기 상태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니체는 이러한 전환기에서 새로운 가치는 기존의 가치체계에서 그 근거였던 신의 죽음에 의해서 나타난다고 보고, 당시의 니힐리즘은 커다란 세계사적 전환에 직면한 인간의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였다. 니체는 낡은 가치의 붕괴에 의한 무의미한 생존과 무의미한 상태에서 생기는 도피적 형태를 수동적 니힐리즘, 장래 새로운 가치의 창출을 위해 기성체계에 반항하는 파괴적 형태를 능동적 니힐리즘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니힐리즘이 가치의식과 결부되어 하나의 적극적 자기주장을 펼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때, 이것은 이미 니힐리즘을 극복한 것이 된다.
니힐리즘의 극복은 니힐리즘을 배태하고 있는 현대 인간 · 사회 · 문화 · 경제 · 정치의 근본조건에 대한 성찰을 통하여 새로운 가치를 정립시킬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허균 [한] 許筠
허균(1569∼1618). 문인.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 성소(惺所), 백월거사(白月居士), 본관은 양천(陽川).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엽(曄)의 아들. 1589년 초시(初試)에 합격하고 1594년 정시문과 을과(庭試文科乙科), 1597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 1598년 황해도 도사(都事)가 되고 춘추관 기주관(春秋館記注官), 형조정랑(刑曹正郞)을 역임한 뒤, 1602년 사예(司藝), 사복시정(司僕寺正)을 거쳐 전적(典籍), 수안군수(遂安郡守)를 지내고 1606년 원접사(遠接使)의 종사관(從事官)으로 명(明)의 사신을 영접, 이 때 탁월한 문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 뒤 상의원정(尙衣院正), 삼척부사(三陟府使), 내자시정(內資寺正), 공주목사(公州牧使)를 역임하였으나 숭불(崇佛)했다는 죄로 파직 당했다가 1609년 재등용, 형조참의(刑曹參議)가 되었고 이듬해 진주부사(陳奏副使)로 명(明)나라에 가서 게(偈) 12장(章)을 갖고 귀국, 이 해 시관(試官)이 되었으나 친척을 부정으로 급제시켰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 전라도 태인(泰仁)에 은거하며 작품 창착에 전념하다가 1613년 계축옥사(癸丑獄事)로 평소 친분이 두터운 서양갑(徐羊甲), 박응서(朴應犀) 등이 처형되자 신변의 위협을 느껴 권신 이이첨(李爾瞻)에게 아부, 예조참의, 호조참의, 승문원 부제조(承文院副提調)를 거쳐 1614년 천추사(千秋使)로, 1615년 동지부사(冬至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1617년 폐모론(廢母論)을 주장하는 대북파(大北派)의 일원으로 광해군의 신임을 이용, 반란을 계획했으나 이듬해 반란계획이 탄로나 하인준(河仁俊), 김개(金闓), 김우성(金宇成) 등과 함께 체포되어 능지처참되었다. 시문(詩文)에 뛰어나 누이 난설헌(蘭雪軒)과 함께 당대의 시재(詩才)로 이름을 떨쳤고 또 이조 봉건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새로운 이상향(理想鄕)을 제시한 소설 ≪홍길동전≫(洪吉童傳)을 저술하여 평소 자신이 갖고 있던 신분타파의 사회 개혁적인 의지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평소 불교와 도교에 심취했으나 뒤에는 많은 서학서(西學書)를 읽고 연구하여 한국 최초의 천주교인이라는 설(說)도 있다. 작품으로는 ≪교산시화≫(蛟山詩話), ≪성소복헌고≫(惺所覆-稿), ≪한년참기≫(旱年讖記), ≪비한정록≫(秘閑情錄), ≪도문대작≫(屠門大嚼), ≪학산초록≫(鶴山樵錄) 등이 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 光海君日記 / 朝野輯要 / 燃藜室記述 / 於于野談 / 五洲衍文長箋散稿 / 趙神權, 韓國文學과 基督敎, 1983.
허계임 [한] 許季任
許季任(1773∼1839).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 막달레나. 성녀 이정희(李貞喜) · 이영희(李英喜) 자매의 모친. 경기도 용인(龍仁)의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경기도 봉천(奉天)의 이(李)씨 성을 가진 외교인과 결혼한 뒤 중년에 이르러 시누이 이매임(李梅任)의 가르침과 권면으로 두 딸과 함께 입교하였다. 1839년 3월 성사(聖事)를 받으러 상경하여 시누이와 두 딸이 사는 집에 머무르고 있던 중, 남명혁(南明赫)과 이광헌(李光獻)의 어린 자녀들이 혹형과 고문을 이겨 내고 신앙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시누이, 두 딸, 김성임(金成任), 김 루시아(金累時阿) 등과 순교를 결심한 뒤 4월 11일 이들과 함께 남명혁의 집을 파수하던 포졸들에게 묵주를 내보이며 자수하였다. 포청과 형조에서 배교를 강요하는 수차의 혹형과 고문을 당했으나 모두 이겨 내고 9월 26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