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예절 [한] 公所禮節 [관련] 첨례

공소에서 미사 대신 거행되는 전례. 미사예식 중 성찬의 전례가 빠진 미사형식으로, 공소에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주일이나 축일에 그 지역 교우들이 모여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이 예식을 행한다. 공소예절이 생기기까지는 교회에서 성찬 규식과 경문을 따라 첨례를 보았다. (⇒) 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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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 [한] 公所

본당(本堂)보다 작은 교회 단위를 의미하지만, 때때로 공소 교우들의 모임 장소인 강당(講堂)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공소에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미사가 집전되지 못하고 대신에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첨례를 보거나 공소예절이 행해지며, 정기적인 신부의 방문을 통해서만 성사(聖事)가 집행된다.

한국 교회에서는 신부가 1년에 두 번 춘추(春秋)로 공소를 방문했기 때문에 이를 ‘춘추공소 때’라 불렀고, 또 신부방문 때 주로 집행되는 성사가 판공성사(判功聖事)였기 때문에 신부가 봄에 방문하는 것을 ‘봄 판공’, 가을에 방문하는 것을 ‘가을 판공’이라 불렀다. 그리고 신부가 공소를 방문하기 전에 공소 방문 일정과 교우들의 유의해야 할 점을 기록한 배정기(排定記)를 미리 공소에 보내는 것이 관례였고, 이에 대해 공소회장은 신부의 방문을 전후하여 공소의 상황을 적어 신부에게 보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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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리본당 [한] 貢稅里本堂

충남 아산군 인주면 공세리에 위치한 대전교구 관할의 이 성당은 조선조 때 아산 · 서산 · 한산을 비롯해서 멀리 충주 · 문의 · 옥천 · 회인 등 40개 고을의 조세(租稅)를 쌓아 두던 공세창고가 있던 곳인데, 1523년(중종 18년)에 개설, 고종 때 폐지, 80간 짜리 창고 건물이 헐리고 그 자리에 1897년 구 본당 건물과 구 사제관 건물이 들어서게 되었다.

초대 본당신부 드비즈(Devise, 成一論)는 1895년에 부임, 1년 만에 주교단 당가신부로 임명되어 전임, 2대 기낭(Guinand, 陳普安) 신부도 1년 만에 전임, 1897년 6월 드비즈 신부가 3대 본당신부로 다시 공세리에 부임, 1930년까지 34년간 공세리본당의 기반을 굳건히 하고 발전의 터전을 닦아 놓았다. 급히 서둘러 지었던 구 본당 건물이 날로 늘어나는 신자수를 감당하기에 벅차다는 것을 알게 된 드비지 신부는 다년간 절약해 모은 돈으로 성당신축에 착수해 자신이 설계, 중국인 건축기술자들을 지휘 감독하여 마침내 1921년 숙원이던 크고 화려한 성전 건축공사를 마무리지었다. 이 때 현 사제관 건물도 함께 신축하였다. 이 웅장한 성당으로 말미암아 공세리는 일약 아산지방의 명물이 되어 멀리서까지 많은 구경꾼이 몰려왔다고 한다. 드비즈 신부는 공세리본당 산하의 공주공소를 1897년에 본당으로 분리 독립시켜서, 당시 공세리본당의 2대 기낭 신부에게 그 운영을 위촉했으며, 1901년에는 안성공소를 안성본당으로 분리 독립시켰다.

현 강당건물은 9대 이인하(분도) 신부 때인 1956년에 신축, 수녀원 건물은 13대 김동욱(마리아) 신부 때인 1970년에 축성식을 가졌다. 현재 15대 여충구(마르코) 신부가 주임으로 사목하고 있는데, 이 본당의 주소는 성 베네딕토, 신자수는 2,100명(1984년 현재), 관할 공소는 15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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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한] 共産主義 [영] communism [독] Kommunismus

1. 공산주의는 어원적으로 라틴어의 ‘콤무네’(commune)로부터 생각할 수 있는데 코뮤니즘(communism)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과의 나누기, 사귀는 것을 의미하는 말에서 왔다. 이 의미로는 공산주의는 재산공유제도를 가리킨다. 엄밀히 말하면, 생산재 · 소비재와 더불어 모든 재산을 공유하려는 주의이다. 즉 사유재산에 반대하는 모든 사상을 총칭한다. 이렇게 공산주의를 다만 사유재산의 폐지를 지향하는 사상 및 운동의 의미로 해석한다면 그 역사는 멀리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옛적의 공산주의는 반드시 유물론(唯物論)이나 무신론(無神論)도 아니었다. 지난날에 있어서는 종교적이며 영적인 특색을 갖추고 있었다.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에서는 그리스도 신자들은 “모든 것을 공동소유로 내어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각자의 필요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사도 2:45). “누구 하나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쓸 수 있게 하였다.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데,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 그 돈을 사도들 앞에 가져다 내놓고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받았기 때문이다”(사도 3:34-35)라는 성서의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사랑의 복음을 바탕한 영적 공동체로서 사람들 사이의 나눔에 의하여 우애가 넘쳐흐르는 공산주의 제도를 실행했었고, 이 그리스도교적인 전통은 사실 오늘날 수도생활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확실히 이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공동소유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엥겔스는 공산주의라는 칭호를 선택한 이유를 ‘공산당 선언’ 서문에서 설명하기를 공산주의는 노동자 운동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과연 근대의 공산주의는 외면적 강제적인 사회를 조직화하고 전투적 무신론에로 치달리고 있다.

2. 공산주의는 오늘날 마르크스 · 레닌 · 스탈린 · 모택동(毛澤東)의 가르침과 동일시됨으로 말미암아 왕왕 마르크스 · 레닌주의 또는 모택동주의라고 불려진다. 특히 마르크스 사상의 중요성으로 인하여 간단히 마르크스주의라고 불리기도 한다. 따라서 공산주의를 “마르크스 · 레닌주의의 이론과 실천”이라고 정의하기도 하는데, 공산주의 사상의 계보는 자연히 여기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제1 인터내셔널에서도 마르크스파를 공산주의자라고 일컬었었다.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그 근거로 한다. 그것은 유물변증법이라고도 하며, 이 기초 위에 유물사관(唯物史觀)이라는 역사적 필연론이 설명되고 있다. 변증법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듯이 “만물은 유전한다. 다툼은 만물의 아버지이다”라는 사고방식이기도 하면, 정(正)-반(反)-합(合) 혹은 긍정-부정-부정의 부정이라는 무한한 유동과정 내지는 끊임이 없는 생성(生成) 발전을 계속해 간다는 견해이다.

유물론은 물질이 정신 의식의 원천이며 정신 의식은 물질 존재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에 의하면, 관념세계는 필경 인간의 두뇌 안에 옮겨놓은 물질세계 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물론은 물질이야말로 제1차적인 것이며 물질의 존재를 절대적인 진리로서 승인하는 것으로 출발하는 극히 간단한 철학이다. 이 유물론을 변증법에 연결시켜 일체의 물질이 유동, 운동, 발전해 가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이른바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과연 그 말대로 변증법이 물질이나. 존재의 세계에 적용할 수 있으냐에 대한 의문이 있다. 모든 물질이 모순을 포함하고 있음을 명제로 하여, 그 물질이 모순을 기동력으로 하여 자기 운동을 영위해 간다는 법칙과 필연성이 모든 물질에서 안정될 수 있을까. 변증법칙 유물론이 설명하는 물질의 절대성은 레닌의 말과 같이 “자연 안에야말로 객관적인 합법칙성이나 객관적인 인과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그것이 “인간에게 반영한다”라고 할진대, 인간의 주체성은 부정되고 인간은 다만 그 의사와는 무관한 법칙에 의해 좌우되는 불안정한 것에 지니지 않는다. 또한 공산주의의 이론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철학으로부터 이끌어낸 유물사관 혹은 사적 유물론을 그 중요한 기초로 하고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을 인간사회의 진화성에 적용할 때에 사회변증법이라고도 할 유물사관이 주창되기에 이르기도 한다. 유물사관은 이런 의미에서 변증법적인 사회관이라고 볼 수 있다.

유물사관은 사회적 존재가 사화적 의식의 토대이며 그 역(逆)은 아니라는 것을 근본적인 주장으로 한다. 그 사회적 존재란 물론 물질적 존재이며, 사회의 경제적 구조이다. 마르크스 · 엥겔스는 이것을 “생산, 자본, 물질적 조건의 각기 힘의 총계”라고 결론한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생산력이야말로 역사의 창조주이고 인간의 의사와 관련이 없는 물질적 생산력이 발달하면 그 생산력이 증대하고 사람과 사람과의 유대관계도 변화하고 인간의 의식도 변화한다. 그래서 인류사회는 원시공산사회 ⇒ 노예사회 ⇒ 자본주의사회 ⇒ 사회주의사회에로 필연적인 발전을 한다는 것이다.

유물사관은 사회적 발전을 오로지 생산력만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상부구조인 관념의 여러 형태도 역으로 토대에 작용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 필연성을 저지하는 현실에 대한 가책 없는 투쟁을 실천토록 한다. 과연 마르크스가 주장하듯 모든 역사적 사실이 단지 경제적 원인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을까. 역사의 과정에 나타나는 모든 사회적 정치적 지적 관계, 종교적 법적 체계, 모든 이론적 견해를 물질적 경제적 조건에 의존하다고 간단히 해치울 수 있을까. 그리고 마르크스는 변증법적 이론을 역사에 응용하여, “종래의 사회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고 공산당선언 제1장의 서두에서 결론짓고 있다. 실은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은 ‘잉여가치’(剩餘價値)를 그 기초로 하고, 자본가의 발전과 그에 수반하는 노동자의 필연적 빈궁화를 가정(假定)해서 성립한 것이다.

3. 마르크스 · 엥겔스의 공산주의는, 1917년 11월의 러시아 혁명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형의 공산주의로 변화하였다. 그것은 종래의 마르크스나 엥겔스의 사상을 승계한 것이며, 일체의 소유제와 일체의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공산주의체제를 세우려는 데에는 같으나 특정한 때와 장소에서 독특한 해석을 가한 특수한 공산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 소련의 현대공산주의는 소비에트 공산주의, 마르크스 · 레닌주의, 볼셰비즘 등으로 불린다. 이것이 오늘날 문제되고 있는 공산주의이며, 우리는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와 이 현대 마르크스주의와를 구별하여야 한다.

소비에트에서의 공산주의는 한 마디로 러시아의 독특한 조건에 부응해서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킨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이론과 전술이며 특수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이론과 전술이다. 그것은 레닌에 의하여 러시아적으로 형성되고, 스탈린에 의해 발전되고, 흐루시초프에 의해 수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레닌과 스탈린은 폭력혁명과 폭력에 의해 장악한 정권은 독재방식에 의하여 운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폭력혁명과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가 절대로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은 레닌이다. 폭력혁명은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고 공포와 희생, 파괴와 유혈의 비참한 일을 일으키는 이외 아무것도 아니며,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는 스탈린에 의하면, 폭력에 입각한 혁명적 폭력이고, 그것은 폭력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 폭력은 공산주의의 불가피한 수반물이며 독재정치에 공통된 속성이다. 흐루시초프에 의하여 주도된 소련 공상당의 새로운 강령에서도 평화공존과 완전군축을 제창하고 있으나, 동시에 “착취자 계급이 인민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는 곳에선 사회주의에의 비평화적 이행이 가능하다”고 폭력혁명의 여지를 인정하고 있다. 또한 미국에 도전하고 평화공존의 미명 밑에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증오의 대결을 하고 있다.

4. 스탈린이 국제공산주의에 유산으로 남겨놓은 세계공산주의 중앙집권제는 무너졌다. 최초의 중대한 구조적 분열은 유고슬라비아에서 일어났고, 이탈리아의 “다양성과 자치속의 단결”이라는 지역적 다양성의 수정주의와 아울러 서구 공산당들의 수정주의적이며 지역적인 노선은 마니교적인 획일화 체제에서 이탈하게 하였다. 특히, 중소(中蘇)분쟁의 분극화가 공산주의운동 변천에 끼친 영향은 분열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크다.

오늘날 공산주의에는 중국적, 소비에트적, 유소슬라비아적, 동구적, 쿠바적, 북한적 형태가 있다. 이미 변화되었고 방금도 변화하고 있는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현실은 그 자체야말로 복잡하기 짝이 없다. 공산주의의 성격의 변화와 내부의 분열이 그의 붕괴를 가져오리라고 생각하는 따위는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북한의 공산주의는 김일성이 창시했다는 주체사상과 김일성주의라는 것을 주축으로 한 정권유지의 정치실천을 위한 것이다.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공산주의도 아니며, 또한 서구인들이 생각하는 서구의 공산주의와는 판이하다. 더욱이 정권의 세습을 내건 봉건적인 요소도 역사의 흐름을 거부하는 것이다.

5. 가톨릭 교회는 130여년 전부터 공산주의에 적극 반대해 왔다. 교회가 반대하는 이유는 대체로 두 계열로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마르크스 · 레닌주의적 무신론이 자연법칙과 자연법에 위반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여 마르크스 · 레닌주의적 무신론의 학설과 실천의 결과를 비판하는 논거로 삼고 있다. 또 하나는 속 깊이 파고 들어간 마르크스 · 레닌주의로부터 직접 유래되는 공산주의를 분석하면서 공산주의의 현실적 여러 형태를 비판하는 논거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 생각하더라도, 공산주의의 무신론적 학설은, 그 이론적 근거에 있어서, 또 그 이론적 결과에 있어서도 그릇된 학설이고, 따라서 교회의 가르침과 대립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사실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대 무신론 교설은 공산주의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오류로서 단죄하고 있다. <쿠이부스 쿠안티스쿠에>(Quibus quantisque), <실라부스>(Syllabus), <쿠오드 아포스톨리치>(Quod apostolici), <디우튜름 일류드>, <레룸 노바룸>(Rerum novarum), <디비니 레뎀토리스>(Divini redemptoris)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교황의 회칙이나 교서가 발표되었다. 요한 23세는 선임자들만큼 격렬하게 직접적으로 단죄하지 않았으나 ‘모든 것’의 기초로서 하느님을 뚜렷이 하며 적어도 간접적으로 무신론을 단죄하고 있다. 회칙 <지상의 평화>에서 되풀이해서 하느님을 사회 평화의 기초인 권리와 의무, 그리고 모든 교회적 질서의 객관적 토대로서 명시하고 있다. 바오로 6세는, <에클레시암 수암>(Ecclesiam Suam)에서 명확한 말로 무신론의 오류를 지적하고, 공산주의의 무신론과의 대화를 지향하면서도 이를 확고히 단죄하고 있다.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를 현대에 적응시켜 모든 현대인과의 대화의 실현을 목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무신론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인 태도를 고수하면서 무신론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인 태도를 고수하면서 무신론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사목헌장 19~21). 그러나 애써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갖는 무신론에 대한 태도 가운데서 무엇인가 특징을 찾으려면, 그것은 공의회의 기본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대화에의 자세이다. “가톨릭 교회는 하느님 부정의 숨은 이유를 무신론자들의 마음속에서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또 교회는, 무신론이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대한 사랑에 이끌려 이런 문제들을 진지하게 또 깊이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사목헌장 21)고 선언하고 있기에 말이다.

6. 한국 천주교회는 현실적으로 주어진 조건 이래에서 정치적 상황을 응시하면서 북한의 공산주의와 침묵의 교회를 사목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공산주의는 “무기를 들어야 정권을 잡는다. 정권을 쥐려면 투쟁하자. 그 투쟁형태는 조직적인 폭력투쟁, 무장투쟁이다”라는 김일성의 말과 같이 철두철미 스탈린적 교조주의적인 사상에 바탕한 전쟁불가피론에 의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김일성과 김정일은 남한 적화의 폭력혁명과 무장투쟁을 포기하지 않고 그 목적 달성을 위하여 대남전술을 강행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회는 분단된 현실의 비극을 성서의 메시지에 비추어서 해석하면서 미래의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북한 공산주의를 마음 아파하면서 단호히 배격하는 태도를 확고히 하는 가운데에 공산주의자들이 마음을 열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검토해 보도록 하는 데 전력하여야 할 것이다. (梁漢模)

[참고문헌] F.J. Sheed, Communism and man, London 1945 / ピオ11世 著, 無神論的共産主義, 中央出版社, 日本 1954 / A.G. 마이어 著, 梁好民 譯, 맑스主義論, 乙酉文化社, 서울 1958 / 梁漢模, 第三勸力의 本質論, 博文閣, 서울 1968 / アソリ シヤソプル 著 · 古屋孝賢 譯, キリスト敎と共産主義, ドソボスコ社, 日本 1966 / トーマス W. オグレシトリ 編, 高尾利數 譯, マルクス主義とキリスト者の對話, 日本基督敎團出版局, 1970 / 梁漢模, 福音과 社會와 敎會, 가톨릭出版社, 서울 1974 / A.M. 스코트 著, 鄭泰燮 譯, 共産主義, 思想界社出版部, 서울 1961 / 보헨스키 · 니이마이어 共編, 共産主義批判全書(1-4), 韓國反共聯盟, 서울 1964 / 亞細亞反共聯盟自由센터硏究院, 共産主義問題硏究(第1號-5號), 亞細亞反共聯盟, 1965-1967 / 韓國反共聯盟, 共産主義批判(第1卷-3卷), 서울 1966-1968 / General Editor Herbert Vorgrimler, Commentary on the Documents of Vatican II, vol.5, Herder and Herder, New York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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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가 [원] Gonzaga, Aloysius [관련] 알로이시오 곤자가

⇒ 알로이시오 곤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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