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재 [한] 空腹齋 [관련] 공심재

⇒ 공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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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번됨 [영] catholic [프] catholique [관련] 가톨릭

‘공평(公平)하다’라는 형용사의 옛말로 ≪한불자전≫에서는 ‘보편적’이라는 의미를 가진 catholique를 ‘공번되다’라고 표현하였다. ≪한불자전≫에서 ‘공번되다’라는 말의 의미를 가진 프랑스어로는 그밖에도 commun, General, public, universel, equitable, juste, impartial 등이 있다. 사도신경 중의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와~’에서 ‘공번된’이 의미하는 바는 catholique의 의미이다. (⇒) 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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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미사 [한] 空~ [라] Missa sicca [영] dry Mass

미사의 독서와 기도문만 봉송하고 성찬의 전례 부분을 생략한 미사. 공미사를 봉헌한 기록은 9세기 프루덴시오(Prudentius) 주교의 예식서에 처음 나타났으며 13세기 윌리엄 두란드 주교가 이의 타당성을 논의한 적이 있었다. 종교개혁 이전 시기에 프랑스 국내 수도원과 본당에서 공미사가 상당히 봉헌되었는데 후자의 예로는 혼인미사, 위령미사의 경우에 국한되었고 항해하는 선박 안에서 공미사가 봉헌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우는 완전한 미사를 드리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불편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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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로 [한] 功勞 [라] meritum [영] merit

인간관계에서 타인의 이익을 위하여 이행한 행위에 대하여 보답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 이는 정의의 관념에 기인한 적정공로(適正功勞, meritum de condigno)와 자유재량에 근거한 재량공로(merirum de congruo)로 구분된다. 인간관계에서 유효한 개념인 공로를 하느님에 대한 관계에 적용시킬 수 있는가가 문제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피조물이요 은총에 의하여 구속되고 양자(養子)가 되었을 뿐 하느님과 대등한 지위도, 독립한 당사자도 못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간의 선행은 하느님께 대한 의무이행에 불과하므로 그것이 하느님에게 이익이 될 수 없다. 바울로가 율법의 업적으로 구원받지 못한다고 한 것은(로마 3:9-20) 이 진리를 긍정한 것이다. 루터는 인간성의 원죄로 인하여 완전히 부패하여 의화에 의하여 본질적으로 변모될 수 없고, 공로개념은 하느님 홀로 구원자라는 신앙에 모순된다는 전제 아래, 하느님은 인간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공로와 무관하게 구원해 주신다는 신앙만이 인간을 비본질적으로(extrinsically) 의화시킨다고 함으로써, 인간행위가 의화되기 이전에 행해졌느냐 이후에 행해졌느냐를 불문하고 그 가치를 전적으로 부정하였다. 이에 대해 트리엔트 공의회는 인간행위의 가치를 검토하게 되었다.

이 공의회에 의하면, 인간은 의화에 의하여 본질적으로 변화되며 의화된 자는 하느님 눈에 가치 있는 행위를 할 수 있고 따라서 공로를 쌓을 수 있다. 인간은 성화은총에 의하여 하느님의 상대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화된 자의 행위가치를 적정공로라 한다. 이는 의화되지 않는 자의 자연적 행위가치를 의미하는 재량공로와 구별된다. 공의회에 의하면 공로는 먼저 은총과 선물로, 다음으로 선행에 대한 보답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인간은 혼자 힘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공로에 참여함으로써 공로 있는 행위를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성서는 의덕과 은총, 신앙과 사랑 및 내적 인간의 진보와 성장을 언급한다(잠언 4:18, 루가 17:52, 고린 4:15-17, 에페 4:15 등). 영원한 행복은 보답으로(지혜 5:16, 이사 40:10, 마태 5:12, 1고린 3:8), 상급으로(1고린 9:24, 필립 3:14, 2디모 2:3), 보상으로(골로 3:23, 히브 10:35, 11:6) 제시된다. 인간은 선행으로 영원한 행복을 얻을 자격이 있다(지혜 3:5, 루가 20:35, 2데살 1:5). 보답은 악행의 형벌과 대조된다(마태 25:34-46, 요한 5:29, 로마 2:6-). 마태 6:20은 보화를 하늘에 쌓으라고 한다.

인간공로를 이해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하느님 앞에 인간공로가 불가능한 영역과, 피조물의 공로는 유비적인 의미에서 공로라 칭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하느님 앞에 공로를 얻을 수 있는 근거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이며, 성화은총에 의하여 인간이 동등하지 못한 수준에서 유비적으로나마 하느님의 진정한 상대자라는 점에 있다. 물론 상대자가 된 것은 인간의 독립된 지위 때문이 아니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의해서이다. 이로써 공로의 교리는 구속된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를 긍정하는 셈이며 인간이 하느님의 도움으로 자신의 존재를 완성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참고문헌] Waldemar Molinski, Merit, Sacramentum Mundi, vol.2, Burns & Oates, London 1968 / C.S. Sullivan, Merit, New Catholic Encyclopedia, vol.9, McGraw-Hill, New York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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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한] 共同體 [라] communitas [영] community [관련] 사회

자연적으로 생성된 인간의 모임의 단위를 가리키는 말인데, 사회(society)라는 말과는 구분해서 쓰인다. 공동체의 개념으로 묶어지는 것은 가족 · 종족 · 민족 같은 것이 있으며,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러한 공동체에 귀속된다. 공동체는 자체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 완성을 위한 수단이다. 그렇지만, 개인은 반드시 공동체 속에서만이 충분히 발전할 수 있는 것이므로 공공(公共)의 복지를 유지해야 하며 공동체를 긍정해야 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개인주의(individualism)나 집단주의 또는 집합주의(集合主義, collectivism) 같은 것도 공동체와는 반대되는 이념들이다.

창세기 때 하느님이 아담과 하와를 지음하셨지만, 그 후손인 카인은 아벨을 죽였다. 이미 이때부터 공동체에는 금이 가고 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공동체는 혈연 · 지연 · 정신 등 몇 가지의 복합적인 공동성(共同性)에 기초를 두어야 하는 것이기는 하나, 크게는 인류 공동체로서의 사명을 다할 때만이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니며, 넓은 의미로서의 ‘인간관계’를 담은 단위 집단이라고 지칭할 수 있다. 공동체를 바로 문명과 문화에 연관지어 생각해 보았을 때, 단순한 공통분모(共通分母) 위에 모인 분자의 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그리스나 로마의 문화의 한계를 한 발 짝 뛰어넘으면 ‘야만인’이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좁은 지리적 시각(視角)에 사로잡혀 있던 이교적(異敎的)인 고대에 있어서는 ‘인류공동체’라는 관념은 전혀 낮선 말이었다. 그러다가 중기 및 후기 스토아파 시대에 와서 비로소 자연적인 인간 공동사회의 신앙 즉 공동체에 대한 의식이 희미하게나마 엿보였다. 예언자들에게서 바람직한 싹이 트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끝내 편협된 종교적 또는 정치적 민족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차원에서의 공동체에 대한 이해에 불과하였다.

세계적인 보편주의의 결정적인 동향을 최초로 초래한 그리스도교는 모든 인간의 자연적인 공동체 또는 공동사회를, 동일 사명과 성총을 부여받은 주님의 자식들 및 그리스도의 형제의 공동체, 즉 그리스도 안에서 결합된 ‘몸의 지체로서의 공동사회’(바울로적인 그리스도 신비체사상)로까지 깊이를 더해 갔다. 이리하여 인류는, 하느님의 의지에 의해서 태어나고 질서 잡혀지고 지배되며, 그 목표에 향하여 이끌림을 받는 ‘인류적 가족’이 되었다. 이 인류적 가족의 유기적인 조성(組成) 가운데서 즉 공동체의 생활을 통하여서만이 개인과 공동사회와의 관계는 민족적인 개체로 하여금 여러 민족공동체 사회로의 결합을 대규모적으로 촉진시켜 주며 반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공동체라는 개념은 사회라는 말과는 구분해서 쓰이는 것이므로, 사회 쪽에서 풀이해 볼 수도 있겠다. 가령, 집단을 여러 성원(成員)의 인간적인 접촉이나 시간적인 지속성에 바탕을 두고 분류할 때 가족, 학교, 교회는 지속적 면접적 집단 쪽에 그리고 국가, 도시, 노동조합은 지속적 간접적 집단 쪽에 속한다. 그러나 통일성의 면에서 본다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가 공동체 또는 기초집단(community)이라고 부르는 가족 · 촌락 같은 것과, 둘째가 기능집단(association)이라고 부르는 노동조합 · 정당 · 클럽 따위다. 이 경우, 그 사람의 생활이 그 집단 가운데서 완전히 영위되며, 모든 사람의 사회관계가 그 집단속에서 찾아질 수 있는 그런 집단이 바로 기초집단이라 할 수 있고, 특정한 이해 또는 몇 가지의 이해가 합한 것을 공통적으로 추구하자는 목적으로 성원이 가입하거나, 혹은 창설된 집단은 곧 기능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기능집단의 경우의 공동체라는 개념은 개인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구속적인 사회관계, 아니면 일정한 토지를 공동으로 차지하고 있는 데 바탕을 둔 사회관계의 총체를 가리키게 되는 것이다.

이미 퇴니스(Ferdinand Tonnies, 1855~1936)에 의해 설정된 사회형(社會型)의 하나인 공동사회(共同社會, Gemeinschaft) 즉 자연적 실재적으로 통일하는 ‘본질의사’(本質意思, natural will)의 구성체 단위를 공동체, 협동체 등으로 흔히 호칭하는 때도 물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자연적인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성체로서의 초자연적인 공동사회로서 성당, 교구, 교회 등에서 그 최종의 근거와 생명적인 기초를 발견한다. 즉 종교적인 공동사회에 기여하는 광범한 의미에 있어서의 정신적 도덕적 종교적인 유대의식으로 표현되고 수렴되는 뿌리가 공동체이다. 공동체와 교회의 관계에 대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으로 보아 과거와 같이 성직자나 수도자 중심이 아니라 평신도를 포함하는 유기적 공동체라는 사상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교회를 계층제도로 하는 것을 배격하였으며 모든 교회구성원이 한 백성으로서 각자에게 주어진 소명에 충실할 것을 다짐한 것이다. (⇒) 사회

[참고문헌] F. Tonnies, Gemeinschaft und Gesellschaft, 1887 / A. Pieper, Organische und mechanische Auffassung des Gemeinschaftslevens, Aufl. 3, 1929 / A. Rademacher, Die Kirche als Gemeinschaft und als Gesellschaft, 1932 / M.R. Stein, Eclipse of Community, Princeton 1960 / J. 회프너, 그리스도교 사회론, 분도출판사,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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