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공학교 [한] 崇工學校

건전한 직공 양성을 통해 선교사업을 전개한다는 목적으로 베네딕토 수도회가 1910년 혜화동에 설립한 직업학교. ‘기도하고(崇), 일하라(工)’라고 한 베네딕토 수도회의 이념에 따라 학교명을 숭공(崇工)이라 하였다. 숭공학교는 우선 철공소와 목공소를 개설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목공예, 자물쇠, 제작, 양철제품 제작, 페인트칠, 제차(製車) 등의 기능을 연마케 했고, 제도(製圖), 한문, 일본어, 수학, 교리(敎理)교육도 병행하였다. 교과과정은 4년이었고, 전과정을 이수한 학생에게 이론과 실기시험을 치른 후 자격증을 교부하였다. 숭공학교는 제대, 촛대, 세례반을 주문받아 제작, 판매하였고, 자동차의 상부를 제작하거나 수리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숭공학교의 제작품으로 대표적인 것은 명동성당의 강론단이 있다. 한편 1919년에 이르러 일제가 숭공학교를 독일인이 경영한다 하여 적산(敵産)으로 취급, 몰수하려 했기 때문에 수도원은 경영권을 서울교구 프랑스 선교단측에 넘겨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뒤 1921년 수도원이 덕원으로 옮겨 감에 따라 숭공학교도 폐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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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신학교 [한] 崇信學校

베네딕토 수도원이 1911년 설립한 일종의 사범학교. 당시 베네딕토 수도원이 있던 지금의 가톨릭대학 신학부 자리에서 개교하였다. 초대 교장에는 에카르트(Eckardt, 玉) 신부가 취임하였고 2대 교장에는 로머(Romer, 盧) 신부가 취임하였다. 학제는 2년제로 종교학, 윤리학, 교육학, 한국어, 한문, 일본어, 세계사, 지리, 수학, 박물학, 음악, 도화, 체육, 등 과목을 4명의 강사(한국인 2명, 수사신부 2명)가 담당하였다. 15~28세의 남학생들을 대상으로 1911년 9월에 23명, 1912년에 26명, 1913년에 17명을 선발하여 교육시켰다. 1913년 9월 일제의 탄압으로 제1회 졸업생만을 배출하고 2년만에 폐교되었다.

[참고문헌] 崔奭祐, 韓國芬道會의 初期修道生活과 敎育事業, 史學硏究, 36, 韓國史學會,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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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학교

황해도 수안군(遂安郡) 대오면 사창리에 있던 초등교육기관으로 1908년 사창리공소의 교우들이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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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정역서 [한] 崇禎曆書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 1629년 명(明) 의종(毅宗)의 서양역법 번역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역법개정 계획에 따라 당시 예부시랑(禮部侍郞) 서광계(徐光啓)를 책임자로 중국인 학자 이지조(李之藻)와 당시 명나라에서 전교에 종사하던 예수회 선교사 롱고바르디(Longbardi, 중국명 龍華民) · 테렌츠(Terrenz, 중국명 鄧玉함) · 로(Rho, 중국명 羅雅谷) · 샬(Schall, 중국명 湯若望) 등이 참가하여 전후 5차에 걸쳐 완성된 역산서로, 1631년 1월 1차로 9종(種) 24권(卷)이, 1631년 9월 2차로 7종 20권이, 1632년 4월 3차로 7종 30권이 간행되었고, 1633년 서광계가 사망하자 이천경(李天經)이 편찬 책임을 이어받아 1634년 7월 4차로 14종 29권이, 1634년 12월 5차로 10종 32권이 간행됨으로써 그 완성을 보았다. 그 후 몇 차례 ≪숭정역서≫ 전권의 보간본(補刊本)이 간행되었고, 청대(淸代)에 들어와서 샬에 의해 ≪서양신법역서≫(西洋新法曆書)라는 제목으로 재편집되어 간행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7세기에 전해졌는데 많은 실학자(實學者)들에게 읽혀져 좋은 반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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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정이

순교지(殉敎趾). ‘숩머리’라고도 불리는 숲정이는 숲이 우거져 조선시대 때부터 사형장으로 사용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이순이(李順伊, 누갈다)와 그의 가족 일부가 순교하면서 숲정이는 순교자의 피로 얼룩져 온 영광의 땅이 되었다. 당시 이순이와 함께 순교한 이로는 신희(申喜, 이순이의 시어머니), 유중성(柳重誠, 마태오) 및 이순이의 시숙모 등이다. 1839년 기해박해 때에는 주문모 신부가 순교한 후 정하상(丁夏祥)과 함께 북경을 왕래하면서 신부 영입운동을 벌였던 신태보(申太甫, 베드로)가 경상도 상주 잣골에 은둔 중 전주 포교에 의해 1827년 4월 22일 체포, 13년의 옥고를 치른 후 다른 5명과 함께 순교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이곳에서 순교한 조화서(베드로), 조윤호(요셉, 조화서의 아들), 이명서(베드로), 정원지(베드로), 정문호(바르톨로메오), 손선지(베드로), 한운서(베드로) 등은 성인의 품에 올랐다. 1935년 교우들은 숲정이에 비석을 세워 순교자의 넋을 기렸고, 1960년에는 미래의 사회와 교회를 이끌어 나갈 청소년을 순교자들의 정신으로 교육하기 위해 해성학교를 세웠다. 숲정이는 전북 전주시 진북동 해성중고교 안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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