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법 [한] 五月法 [영] May laws [관련] 문화투쟁

1973년 프로이센 국회(Preussen Landtag)가 제정한 일련의 법률. 이 법들은 교회를 로마와 단절시켜 교회를 국가의 지배아래 두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즉 성직자의 양성과 임면, 교회의 재판권 관장 등의 권리를 국가가 가지고 수도회의 폐쇄(간호업무에 종사하는 수도회만은 제외), 성직자의 재산몰수 등을 이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이 법들은 1887년까지 효력을 가졌었고, 그해 근본적인 수정을 거쳐, 1905년 폐지되었다. (⇒) 문화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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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진 [한] 吳龍鎭

오용진(1906∼1983). 교육자 · 수학자 · 이학(理學)박사. 세례명 요한, 호는 석봉(石峰). 경북 출신. 교우 가정에서 태어나 1926년 대구고보(大邱高普)[경북고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 1932년 히로시마(廣島)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귀국하여 대구고보 교사로 재직하면서 1935년 이효상 · 김주석 · 서정섭 · 김용화 등 젊은 평신도들과 ‘육우회’(六友會)를 조직, 전교와 문맹퇴치에 힘쓰는 한편, <천주교회보> 간행의 주역으로 활동하는 등 대구교구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고 그 뒤 경북중학교장을 거쳐 1948년 대구사범학교[경북대학교의 전신] 교수로 부임, 1971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경북대 대학원장, 대한수학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많은 인재를 배출했으며, 1975년에서 1979년까지는 대구 대교구 사제양성후원회 회장직을 맡아 교구내의 사제 양성에 공헌하였다. 이러한 교육과 교회 사업에 대한 공헌으로 1970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받았고 1974년에는 교황청으로부터 평신도사도직 수훈포상을 수여받았다. 1983년 1월 15일 대구 대명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 경북 고령군 선산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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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부인회 [한] ~婦人會 [독] Katholische Frauenwerk in Oesterreich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들의 복지향상과 선교를 목적으로 조직된 여성 활동 단체. 단체회원은 기혼 · 미혼의 여성들로 이뤄져있고, 1958년부터 우리나라의 교육사업, 양로사업, 고아사업, 의료사업에 96억 5,180만원에 상당하는 기금을 보내어 지원을 하였다. 단체의 본부는 빈에 있으며, 오스트리아의 각 교구에 지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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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원] Austria

유럽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공화국.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이탈리아, 서독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국토의 면적은 8만 3,849㎢, 인구는 약 757만명(1982년 추계)이다. 오스트리아의 그리스도교회는 많은 순교자를 냈던 로마시대로부터 샤를르 마뉴 시대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졌다. 현재는 국민의 약 88%인 658만 6,000명(1982년 현재)이 가톨릭 신자이며 전통적인 가톨릭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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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 [원] Australia

세계에서 가장 작은 대륙이며, 가장 큰 섬으로서(대략 미국과 같은 크기 면적 678만 7,033㎢에 인구 약 1,517만명이며 가톨릭 신자는 약 412만명(1982년 현재)에 달한다. 17세기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의 지원을 받은 네덜란드의 항해사들이 바타비아(Batavia)를 떠나 황금과 후추를 구하여 항해 하던 중 오스트레일리아 해안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그 땅을 뉴 홀랜드라 하였다. 호주는 6개 주(뉴 사우드웨일즈 · 빅토리아 · 퀸즐랜드 ·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 타즈마니아)의 연합체로서 연방의회와 각주 의회가 있다. 연방은 국내의 정치와 대외관계를 스스로 장악하는 완전한 독립국이다. 동시에 영국연방의 일원이며 그 안에서의 지위는 캐나다 · 뉴질랜드 등과 마찬가지로 자치령이다.

원주민에 대한 가톨릭 포교는 1843년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는 공산주의자들이 오스트레일리아의 거의 전부의 노동조합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에 ‘가톨릭운동 사무처’(The National Secretariat of Catholic Action)는 위험한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멜버른 · 시드니 등 주요 도시에 가톨릭 신자들 조직체를 만들어 사회문제 연구운동을 적극 전개하여 공산주의자들의 침투에 대처하였다. 이 운동을 둘러싸고 심지어 가톨릭 신자들 간에도 국가와 교회와의 관계를 놓고 의견이 팽팽히 대립되었으나, 결국 이 문제 해결의 재가를 로마 교황청에 품신하게 되었고, 로마 교황청은 미묘한 타협안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다. 즉, 가톨릭 운동은 종교문제와 평신도의 윤리적 형성에만 힘을 쏟아야 하나, 평신도는 공산주의와 대항, 정치활동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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