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 [한] ∼敎 [영] Hiduism [독] Hinduismus [관련] 종교

‘힌두교’란 말은 인도 내에 존재하는 다른 종교들[예 불교, 자이나교, 이슬람교]과 구별하는 말로서는 인도의 가장 오래되고 인도인의 대다수가 따르고 있는 종교의 이름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힌두교는 하나의 종교라고 부르기보다는 인도인의 삶 전체를 지배해 온 성스럽고 다양한 사상적 전통들과 행위의 관습들을 총망라한 매우 포괄적인 문화적 전통을 가리킨다. 힌두교의 전통은 기원전 15세기경을 전후한 인도유럽(Indo-European)계의 인종인 아리안(Aryan)족의 침입 이전에 살고 있던 인도 원주민들의 인더스문명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 원주민들의 토착적 신앙과 관습들은 아리안족의 정복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존속하면서 힌두교의 대중적 기반을 형성해 왔다. 그러나 힌두교의 상층적 문헌적인 전통은 주로 아리아인들에 의하여 형성되었으며 이 상층문화는 다양한 지방적이고 토속적인 전통들과 상호영향 하에 발전되면서 범인도적(汎印度的)인 힌두교의 전통을 이루게 되었다.

아리안족에 의하여 이룩된 힌두교의 상층 전통은 산스크리트(Sanskrit, 梵語)어로 씌어진 여러 문헌들에 담겨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오래되고 성스러운 것은 ‘베다’(Veda) 문헌이다. ‘베다’는 아리안들이 섬기던 여러 신(deva)들, 예를 들어 폭풍의 신 인드라(Indra), 불의 신 아그니(Agni), 태양신 수리아(Surya)에 대한 송가와 기도 등을 수집한 것으로서 4종 [리그 베다, 싸마 베다, 야주르 베다, 아타르바 베다]이 있으며, 각 베다에는 제사의 방법과 규범을 다루는 ≪브라흐마나≫(Brahmana)와 철학적 사변과 지식을 주로 취급하고 있는 ≪우파니샤드≫(Upanisad)라는 문헌이 부가되어 있다. 모든 힌두교도들은 명목상으로나 실제상으로나 ‘베다’의 권위를 신성시하며 이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나 자이나교와 같은 인도의 토착적인 종교들을 이단시해왔다.

힌두교에 있어서 베다적 전통을 전수해 온 사람들은 주로 사제계급인 브라만 계급으로서, 이들은 무사계급인 크샤트리아(Ksatriya), 농업 및 상공업에 종사하는 바이샤(Vaisya), 노예계급인 슈드라(Sudra)와 더불어 소위 사성계급제도(四姓階級制度, varna)를 이루어왔다. 사성제도는 힌두교 전통의 기반으로서 ‘베다’의 권위와 더불어 힌두교의 정통성의 두 기준이 되어 왔다. 이 사성제도를 중심으로 하여 힌두교는 인도인들의 행위에 규범과 의무(dharma)를 포괄적으로 규정하여 왔으며, 이런 면에서 힌두교는 인도의 사회 윤리질서와 밀착된 종교이다. 특히 사성제도는 실제의 시행상에 있어서는 일종의 직업분권(職業分權) 제도와 같은 소위 ‘캐스트’ 제도(jati)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으며 이 제도는 오랫동안 인도 사회의 삶의 양식을 지배해 온 것이다.

사성제도와 더불어 힌두교의 전통적 사회 윤리체계의 또 하나의 기반을 이루는 것은 인생의 4기를 규정해 주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인간의 이상적인 삶의 과정을 4단계(asrama)로서 구분한다. 즉 상층 3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아동기를 지나면 부모의 슬하를 떠나 스승(gum)의 문하에서 ‘베다’ 등의 학문을 공부하며 금욕적인 범행자(梵行者, brahmaearin)의 생활을 한다. 이 기간이 끝나면 결혼을 하고 자손을 낳고 신과 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며 재산을 증식하는 재가자(在家者, grhastha)의 생활을 한다. 재가자의 의무를 다하고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가면 생의 제3기인 임서자(林棲者, vanaprastha)의 생활을 한다. 즉 숲 속에서 금욕과 명상의 생활을 하며 해탈(解脫, moksa)을 모색하는 기간이다. 제4기는 고행자(苦行者, sannyasin)의 단계로서 이때에는 완전히 가족과 사회와의 유대관계를 끊어버리고 걸식자로서 유행하면서 고행자 명상을 통하여 해탈을 추구한다. 이상과 같은 제도를 통하여 힌두교는 세속적 사회적인 의무의 수행과 더불어 영원한 영적인 자유를 조화 있게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힌두교는 사회적 삶의 방식을 규정할 뿐만 아니라 초월적인 삶, 즉 해탈의 길을 제시하는 종교이다. 힌두교는 영혼의 윤회(輪廻, samsara)를 믿는다. 인간은 육체의 파멸과 더불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은 각기 그 지은 행위[業, karma]에 따라서 적합한 형태의 육체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우리가 업을 행하는 한 이 생사(生死)의 반복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며 해탈이란 바로 이와 같은 고통스럽고 무의미한 과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말한다.

힌두교는 해탈의 방법으로서 지식(jnana)과 신애(信愛, bhakti)의 두 길을 강조해 왔다. 지식의 길은 ≪우파니샤드≫에 처음으로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는 사상으로서 여기서 지식이란 무엇보다도 인간의 본질 혹은 참 자아(Atman)는 곧 우주의 궁극적 실재인 브라만 그 자체라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진리를 깨닫는 것을 말한다. ≪우파니샤드≫의 해석에 기초를 둔 베단타(Vedanta)철학은 힌두교 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파로서 이 진리를 해명하는 철학이다. 베단타철학 내에서도 브라흐만을 인격적인 절대자로 보느냐 아니면 비인격적인 실재로 보느냐, 혹은 브라흐만과 현상세계와의 관계 등을 둘러싸고 다양한 철학적 신학적 입장들이 전개되었다. 샹카라(Sankara, 8세기)의 불이론(不二論), 라마누자(Ramanuja, 11세기)의 한정불이론(限定不二論), 마드바(Madhva, 13세기)의 이원론은 대표적 베단타사상 체계들이다.

해탈을 위한 지식의 중요성은 베단타 학파 외의 다른 학파들에서도 인정되었다. 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인간의 자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상키야(Sakhya)나 요가(Yoga)학파에서는 인간의 참 자아를 ‘푸루사’(purusa, 精神)라고 부르며 푸루사는 물질적 현상세계의 궁극적 실체인 프라크르티(prakrti, 物質)와는 전혀 이질적인 존재라고 한다. 해탈이란 이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영혼이 물질세계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에 있다고 한다. 요가철학은 이 진리를 요가라는 육체적 정신적 수련을 통하여 깨달을 것을 강조한다.

지식과 더불어 힌두교에서 강조되는 또 하나의 해탈의 길은 신에 대한 신애의 길이다. 신애란 세계를 창조하고 지배하는 위대한 인격적인 신(主, Isvara)에 대한 전적인 사랑과 헌신을 통하여 그와 연합하는 구원의 길로서, 이 신애의 사상은 인도의 유명한 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harata)의 일부분인 <바가바드 기타>(Bhagavad-gita)에 고전적으로 나타나 있다. 전통적으로 ≪우파니샤드≫를 포함한 ‘베다’의 학습이 상층의 3계급의 사람들에게만 허용된 것이었음에 반하여 ‘기타’는 남녀나 계급의 차별 없이 누구나가 접근할 수 있는 문헌으로서, 신애를 통한 구원의 메세지는 ‘기타’로 하여금 힌두교의 바이블이라 불릴 정도로 대중적인 호소력을 지니게 하였다. ‘바가바드 기타’의 문자적인 뜻은 ‘지존(至尊)의 노래’라는 의미로서, 여기서 ‘지존’이란 곧 비슈누(Visnu)신과 그의 화신(化身, avatara)인 크리슈나(Krsna)를 가리킨다.

비슈누신은 나라야나(Narayana)나 하리(Hari)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흔히 어두운 색의 얼굴과 네 개의 팔을 가지고 네 팔에는 패각(貝殼) · 원판 · 연꽃 · 활 · 곤봉 등의 상징들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는 우주의 해체시에 태초의 바다를 상징하는 쉐사(Sesa)라는 범위에서 잠자고 있다가 때가 되면 그의 배꼽으로부터 브라흐마신이 나와서 세계를 창조하며 지배하고 또 파괴한다. 그는 세계의 도덕적 질서가 쇠퇴할 때에 주기적으로 여러 형태의 동물이나 인간으로 자신을 화신하여 나타나 질서를 되찾는 자비로운 존재이다. 특히 크리슈나로서의 화신은 가장 유명하며 바다, 특히 ‘바가바드 기타’의 설교자인 크리슈나로서의 화신은 가장 유명하며 매우 대중적인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다. 비슈누신과 크리슈나에 대한 신앙전통은 ‘비슈누 푸라나’(Visnu-purana)나 ‘바가바타 푸라나’(Bhagavata-purana) 등과 같은 문헌들을 통하여 더욱 더 풍부하게 형성되었다.

한편 비슈누신 못지않게 힌두교도들의 대중적인 신앙을 받아 온 신은 시바(Siva)신이다. 그는 아마도 아리아인들의 정복 이전부터 원주민들에 의하여 섬겨진 신으로서 ‘베다’에 나오는 천둥의 신 루드라(Rudra)와 동일시되었으며 ‘동물의 주’(Pasupati)라는 칭호로서 숭배되었다. 시바는 여러 가지 다양한 성품을 지닌 신으로 묘사된다. 그는 히말라야산 속에서 몸에 재를 바르고 머리는 상투를 틀고 심한 고행을 하는 요가행자(yogin)의 모습으로 그려지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번식과 다산(多産)의 상징인 남근(男根, lingam)으로 흔히 상징되기도 한다. 시바신은 또한 무왕(舞王, Nataraja)의 모습으로 형상화되기도 하며 그의 춤에 의하여 세계는 창조되고 파괴된다고 한다. 중세 인도를 통하여 힌두교에는 많은 종교적 시인과 성자들이 출현하여 비슈누와 시바신에 대한 그들의 뜨거운 사랑과 신앙을 표현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비슈누와 시바는 인도 전역에 걸쳐서 힌두교도들의 마음속에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비슈누와 시바는 각기 아내를 갖고 있다. 비슈누의 아내는 행운의 여신 락스미(Laksmi)이며 시바의 아내는 파르바티(Parvati), 칼리(Kali), 두르가(Durga)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들 여신들은 만물의 창조력(sakti)을 상징하는 존재들로서 그들 자체가 대중적인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비슈누와 시바는 온 세계를 창조하고 다스리며 파괴하는 주로서 전 인도적이며 전 힌두교적인 신들임에 비하여, 힌두교도들은 그 밖에도 그 능력에 있어서 제한된 다수의 신들을 섬긴다. 예를 들어 액운을 제거해 주는 코끼리 머리 모양의 가네샤(Ganesa)나 서사시 ≪라마야나≫(Ramayana)의 주인공이며 비슈누 신의 화신으로 간주되는 라마(Rama)의 친구인 원숭이 하누만(Hanumant)은 인도 전역을 통하여 널리 숭배되는 신들이다. 또한 힌두교에는 지방적으로 혹은 마을에 따라서 숭배되고 있는 각종의 많은 신들이 존재한다. 성자들, 성스러운 나무나 동물들, 신격화된 지방의 영웅적 인물들, 신화적 전설적 존재들, 이 모든 다양한 신들이 힌두교의 다신교적 전통을 더욱 더 복잡하고 풍부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힌두교의 전통에 의하면 사람들은 각자의 성향과 관심에 따라서 자기가 ‘선택한 신’(istadevata)을 섬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또한 여러 신들을 동시에 섬기는 것에서도 힌두교도들은 어떤 갈등이나 모순을 발견하지 않는다. 결국 모든 신들은 우리의 언어와 형상적 구현을 초월한 우주의 궁극적 힘인 브라만의 제한된 현현(顯現)으로 힌두교의 신학적 철학적 전통은 간주하고 있으며, 따라서 어떤 특정한 신을 통해서든지 우리는 결국 영원한 실재에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종교 (吉熙星)

[참고문헌] A. Avalon, Principles of Tantra, London 1915 / A. Barth, The Religion of India, London 1882 / Bhantan Kumarappa, Hindu Conception of Deity, London 1934 / K.F. Geldner, Die Religionen der Inder, Tubingen 1911 / H.D. Griswold, Brahman, A Study in the History of Indian Philosophy, New York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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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폴리토 [라] Hippolytus

Hippolytus(170∼236). 성인, 사제, 순교자, 그리스교부. 축일 8월 13일. 이레네오의 제자. 해박한 지식으로 많은 저작을 남겼다. 살인 · 간음 · 우상숭배 등 세 가지 사죄(死罪)에 대해 엄격하여, 이러한 죄를 범한 자들에게 너그럽다는 이유로 교황 성 갈리스도(St. Calistus) 1세를 비난하였다. 교황은 히폴리토의 삼위일체설에서의 오류를 들어 그를 질책하였다. 이에 히폴리토는 그의 신봉자를 모아 스스로 교황이라 칭하고, 교황의 신봉자들은 교회가 아니라 학교에 속한 자들이라고 하였다. 그는 그의 ≪철학사상≫(Philosophumena)에서 교황의 이단적 신앙을 신랄하게 비난했는데 이로 인한 혼란은 교황 성 폰시아노(St. Pontianus) 시대까지 계속되었다. 235년 교황과 그는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박해를 받아 사르디니아 광산으로 추방되었고, 그 곳에서 순교하였다. 그의 추종자들은 그를 위해 기념상(紀念像)을 세웠다. 이 상에는 그의 저서명(著書名)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1551년 발견되어 라테라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는 이단을 반박한 ≪철학사상≫과 ≪총록≫(總錄, Syntagma), 교회 최고의 성서주석서인 ≪다니엘서 주석≫, 2∼3세기 교회규율을 성문화한 ≪사도행전≫(Apostolike Paradosis)과 법령집(Canones Hippolyti) 등 다수의 저작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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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스타시스 [라] hypostatis

실체, 위격(位格)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개체적 비대체적(非代替的)이며 그 자체로 존재의 완전한 실체를 가리키는 용어. 이는 성삼위의 각 위격과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적 일치를 설명하기 위하여 교회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다. 인간은 이성이 부여된 히포스타시스이다. 나아가 히포스타시스와 본성 서로 간에는 히포스타시스가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존재와 행위의 궁극 주체이어서 히포스타시스는 본성을 통하여 존재하고 행동하는 관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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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로니모 [라] Hieronymus [관련] 예로니모

⇒ 예로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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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라] Epistola ad Hebraeos [영] Epistle to the Hebrews

1. 명칭과 독자 : 히브리서라는 명칭은 200년경부터 사용되어 왔다. 우리는 누가, 또 무슨 이유로 이 명칭을 붙였는지 정확히 모른다. 아마 누군가가 신약의 편지들을 집성할 때에 붙인 것 같다. 즉 이 책은 구약성경을 많이 인용할 뿐 아니라 제관, 성전, 제사 등 유태인들의 예배를 매우 상세하게 묘사한다. 이로 미루어 신약의 편지들을 집성한 사람이 이 책의 독자들은 팔레스티나, 특히 예루살렘에 살던 유대계 신자들이었으리라 생각하고 이 명칭을 부여한 것 같다. 그런데 히브리서를 분석해보면 그 독자들은 유대계 신자들, 즉 히브리인들이 아닐 가능성이 더 크다.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갈라디아서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대체로 구약성경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고, 유대 예식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참조 갈라 4:9, 5:1). 게다가 저자는 ‘유태인’이나 ‘이스라엘인’이라는 칭호를 한 번도 사용치 않을 뿐 아니라 유태인과 이방인 사이의 대립 현상에 대해서도 말이 없다. 또 유태인들이 중시하는 할례에 관해서도 침묵을 지킨다. 저자의 주된 관심은 독자들이 신앙의 초보적 단계를 벗어나 성숙한 생활을 영위하고(6:1-12) 하느님과 일치하여 그들이 받은 소명을 잘 보존하며(3:14) 계속 발전시키는 데에 있다(2:3 · 4, 3:1, 4:14). 이러한 몇 가지 사실과 로마의 글레멘스(96년 경)가 히브리서를 인용하는 점(1글레멘스 17:1, 36:2-5) 등을 근거로 대부분의 현대 주석가들은 이 책의 독자들을 로마나 이탈리아의 어느 지방에 살던 공동체로 본다.

2. 저자 : 동방교회, 특히 이집트에서는 판테누스(180년 경),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 등의 증언을 바탕으로 히브리서의 저자를 바울로로 간주하였다. 반면에 서방교회는 350∼400년에 이르러서야 동방교회의 영향을 받아 이 책을 바울로의 저서로 인정하고 경전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예로니모와 아우구스티노 및 루터는 계속 바울로의 저서임을 의심하거나 부인하였다. 히브리서는 사실 여러 면에서 바울로의 편지들과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먼저 사상적인 유사점을 보면,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속죄와 새 계약의 체결, 비천해짐으로써 영광을 누리신 예수(2:14-17, 필립 2:6-11), 옛 율법의 폐기 및 효력상실(7:11-19, 10:1-10, 갈라 3:21-25, 로마 4:15, 5-20) 등이다. 그 외에 ‘차움’, ‘신앙고백’ 등 바울로의 전용 단어가 65개나 되며, 마지막 인사(13:19, 22-25)가 전형적인 바울로식 인사다. 그러나 책 전체의 언어, 문체, 사상 등은 바울로의 것과 차이점이 많다. 바울로의 편지에 한 번도 나오지 않는 단어가 124개나 되며, 거의 정확히 70인 그리스 번역본을 인용하는 것도 바울로와 틀린다. 바울로의 문체는 열정적이고 변칙적인데 비해 히브리서의 저자는 차분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특히 히브리서는 바울로가 전혀 언급조차 않는 그리스도의 대제관직을 주제로 삼고 있으며 자주 ‘제관’, ‘대제관’, ‘제관직’이라는 표현을 쓴다. 결국 히브리서의 저자는 바울로일 가능성이 희박하다. 학자들은 바울로와 직접 간접으로 친분이 있는 루가, 실라, 바르나바, 글레멘스, 아폴로 등을 저자로 내세우지만 모두 막연한 추측일 뿐이다. 오직 확실한 사실은 히브리서가 그리스와 유다 및 영지주의적 특성을 지닌 것으로 보아 그 저자는 팔레스티나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3. 집필시기와 장소 : 히브리서의 집필시기는 빨라도 바울로시대(60년대) 이후이며 늦어도 글레멘스 1서가 씌어진 96년 이전이다. 어떤 이들은 이 책이 성전 예식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보아 성전이 파괴된 70년 이전이라고 주장하지만 구약성경에도 성전과 그 예식에 관한 보도가 많기 때문에 이것을 연대 측정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그 보다는 책의 내용이 저자를 사도들의 제자 시대의 인물로 암시하기 때문에(2:3) 집필 시기를 80년에서 90년 사이로 보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집필 장소로는 로마, 이집트, 에페소, 안티오키아 등이 대두되지만 확증할 만한 아무런 단서가 없다.

4. 문학적 특성과 구조 : 우리는 히브리서를 편지라고 하지만 실제로 편지 형식으로 된 부분은 13:19 · 22-25 뿐이다. 그 밖에는 서론(1:1-4)부터 시작하여 책 전체가 설교체로 되어 있어(2:5, 5:11, 6:4-9) 우리는 히브리서를 글로 씌어진 설교라고 부를 수 있다. 편지형식의 결문은 저자 또는 후대의 편집자가 덧붙였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사용된 언어나 문체 및 구조 등은 대단히 세련되었으며 사상과 조화를 이룬다. 히브리서는 문학적 관점에서 보아 신약성경 중 가장 훌륭한 작품이다. 히브리서는 매우 조직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음은 틀림없으나 저자 특유의 논리로 전개되기 때문에 그 구조 설정이 간단하지 않다.

학자들이 제시하는 구조 중에 대표적인 두 가지를 열거하면, 첫째 안(Nauck)은 이 책을 세 항목으로 나눈다. 각 항목의 앞뒤에는 해당 부분과 연관되는 훈화가 들어 있다. 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느님의 말씀(1:1-4:13), ② 대제관이신 예수 그리스도(4:14-10:31), ③ 예수 그리스도께 충실한 그리스도인의 생활(10:32-13:25).

두 번째 안에 의하면, 이 책은 서론(1:1-4)과 결론(13:20-25) 외에 다섯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각 항목은 댓귀 교차법, 주제 예고, 특징적인 단어 · 문장 · 문학 유형 · 고리어 등으로 서로 밀접히 연결되면서 전체가 매우 조직적으로 짜여져 있다. ① 그리스도의 이름(1:5-2:18), ② 하느님께 신뢰받고 인간을 동정하는 대제관(3:1-5:10), ③ 멜키세덱의 본을 따른 대제관이며 구원의 원천인 그리스도(5:11-10:39), ④ 신앙과 인내(11:1-12:13), ⑤ 의화의 열매(12:14-13:18).

5. 주제 : 히브리서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대제관직, 구약과 신약의 일치 및 지상에서의 신자 생활 등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 히브리서는 신약성경 중에서 인류 구원을 예식적인 드라마로 제시하면서 그리스도의 제관직을 주제로 삼은 유일한 책이다. 저자는 그리스도의 제관직을 두 가지 방향으로 제시한다. 첫째로, 그리스도는 아론과 같이 사람들 가운데서 뽑혀서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을 섬기는(5:1) 참된 제관이시다. 그분은 만물을 만드신 주님이시고 천사들보다 더 높은 하느님의 아들이면서(1:4-14)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다. 그것은 그분이 시험을 받으시고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시련을 겪는 모든 사람들을 도와주시고 그들의 잘못을 속죄하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그분은 하느님께 충실하고 인간에게 자비로우신 대제관, 곧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가 되셨다. 둘째로, 그리스도는 레위 계통의 제관들과는 틀리는 영원하고 완전한 대제관이시다. 그분은 거룩하고 순결하고 흠도 죄도 없는 당신 자신을 속죄제물로 바치심으로써 사람들이 저지른 죄를 용서받게 하시고 그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씻으셨다. 사람들은 그분이 드린 제사의 힘(9:28)으로 하느님과 새로운 계약을 맺고 영원한 구원의 상속자가 되었다. 그분은 멜기세덱의 본을 따른 영원하고 완전한 대제관이시다(6:20, 7:28).

② 히브리서는 구약성경을 토대로 그리스도론을 전개한 첫 번째 작품이다. 저자는 구약성경을 자기논증의 보조 자료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분과 직무를 계시하는 신앙의 원천으로 사용한다. 그는 구약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제시한다. 구약은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될 실체의 불완전한 상징이며 그림자에 불과하다(9:9, 8:5, 10:1). 그러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고 그분의 신비를 밝힌다. 신약은 구약에서 예시되고 약속된 바를 계승하고 완성시킨다.

③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제관직을 설명하면서 그분을 통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신앙인들의 생활 지침을 제시함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저자는 신자들의 생활을 대제관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천상 지성소로 들어가는 전례적인 순례 행렬(4:16, 12:22)을 보고 있다. 신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에서 해방되고(9:26-10:14) 거룩하게 되어 천상 성소에서 찬미의 제사를 바치도록 초대받았다. 신자는 아직 타향인 이 지상에 살면서 영원한 대제관이 계시는(3:2-6, 10:21) 성부의 집(11:13)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길은 새로운 탈출의 길이요 신앙의 길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옛 이스라엘 백성과는 달리 계시된 하느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따르며, 시련 중에 인내하고, 거룩하고 정결한 생활, 선행과 사랑의 실천으로 부르심에 맞갖은 완전한 생활을 영위해야 한다. 그들의 이러한 생활이야말로 하느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찬미의 제사가 될 것이다(13:15-16). (李洪基)

[참고문헌] C.K. Barrett, The Eschatology of the Epistle to the Hebrews, The Background of the N.T. and its Eschatology, ed. W.D. Davies and D. Daube Cambridge, Eng. 1956 / A. Cody, Heavenly Santuary and Liturgy in the Epistle to the Hebrews, St. Meinrad, Ind, 1961 / A. Vanhoye, La Structure litteraire de l’epitre aux Hebreux, Bruges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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