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룸바노 수녀회 [한] ~修女會 [영] Missionary Sisters of St. Columban

성 골룸바노수녀회는 1922년 2월 1일 아일랜드에서 당시 성 골룸바노 선교회 총장인 존 블로윅(John Blowick) 신부에 의해 창설되었다. 포교활동을 함에 있어서 포교지의 전통적인 관습을 극복하고 보다 효과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전교수녀들의 적극적이며 정성어린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여 골룸바노회 내에 전교수녀회를 창설하게 된 것이다. 현재 이 수녀회원들은 아일랜드, 미국, 영국, 홍콩, 필리핀, 남미의 페루, 칠레, 그리고 한국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모원(母院)은 아일랜드의 위클로(Wicklow)에 있고, 지역본부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하이드파크(Hyde Park)에 있다. 각 지역에서 전교활동 외에 주로 의료사업, 교육사업, 사회사업 등을 하고 있다.

한국진출 : 1955년 광주교구의 헨리(Harold Henry, 玄) 주교의 초청으로 엔다(Enda Staunton) 수녀를 비롯한 4명의 수녀들이 한국에 첫발을 디디게 되었다. 이들은 그해에 목포(木浦)에 수녀원을 설립, 진료수를 개설하여 의료사업에 착수하였다. 같은 해에 춘천(春川)에도 성 골룸바노 의원을 개설, 1960년에는 제주도 한림(翰林)에 진료소를 개설함과 아울러 성 골룸바노 선교회 신부들의 협조를 얻어 직조업(織造業)에 착수, 지역개발에 이바지하는 동시에 부녀자들의 경제에 도움을 주게 되었다. 1963년에는 삼척(三陟)에도 의료시설을 개설(성 요셉의원), 1975년에는 영주(榮州)에 분원(分院)을 설치하여 수녀들이 나환자 진료소인 다미안 의원에서 근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1971년 서울에 본원(本院)을 신축, 수녀들에 대한 한국어 교육사업과, 지방에서 활동 중인 수녀들의 뒷받침을 해주고 있으며, 서울에서 수녀들은 서울 가톨릭의대와 협력하여 한국 천주교회의 산하 ‘행복한 가정운동’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대 47명의 수녀들이 서울의 본원과 목포, 춘천, 제주, 삼척, 영주 등 5개 분원에서 의료사업, 간호원 교육사업, 사회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 본원 소재지는 서울 성북구 동선동 2가 1의 1, 현재 지부장은 존(Joan MsDermott)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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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바노 [라] Columbanus, Bobii

Columbanus, Bobii(530/543~615). 성인. 아빠스. 프랑스의 뤽세이유(Luxeuil) 및 이탈리아의 보비오 대수도원장. 축일은 11월 23일. 아일랜드의 렌스타(Leinster) 지방에서 태어나 보비오에서 죽었다(이곳에 그의 유골이 있다). 밴고르(Bangor)에서 수도자가 되었다가 590년경에 12명의 동료들과 함께 이곳을 떠나 최초는 영국, 이어 브르타뉴, 591년경부터는 동 프랑크 및 브르군드 지방으로 포교를 하며 다녔다. 그리하여 민중과 귀족 및 성직자의 교회적 종교생활의 부흥을 위해 놀라운 활동을 하였다. 강하게 이상을 추구하는 그의 뚜렷한 인품은 제자들을 사로잡았으며 또한 유럽의 수도생활의 발전을 위하여 많은 수도원을 세웠다.

그가 수도자를 위해 쓴 규칙은 엄격하기 그지없으며 그 후 프랑스뿐만 아니라 널리 각지의 모든 수도회칙을 대신하게 되었다.

유명한 보비오 수도원 건설도 그가 한 것이며 몰락해 가고 있던 아리우스파의 극복에 힘을 쏟았다. 그는 고 (古)브리태니아적 교회관습, 그 중에서도 부활축일의 관습을 고수했기 때문에 600년 이후의 갈리아의 여러 주교들과 충돌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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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 [라] Epistola B. Pauli Ad Colossenses [관련]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① 수신인과 집필동기 : 이 편지의 수신인인 ‘골로사이에 있는 성도들’(1:2)은 ‘바울로의 얼굴을 직접 못 본 사람들’(2:1)로 대부분이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었던 것 같다(1:21 · 27). 그들이 이룬 공동체를 세운 사람은 골로사이 출신으로(4:12) 에바프라(1:7)였을 것이다. 그가 바울로와 함께 감옥에 갇혀서(4:10-17) 골로사이 교회의 사정을 바울로에게 알려 주었다(골로 1:8). 이 공동체의 믿음을 전해들은 바울로는 관심과 호의를 나타낸다. 그러나 당시 소아시아의 여러 문화와 사상 그리고 종교가 교류 · 혼합되어 있던 도시인 골로사이의 교회 공동체에 그리스도 믿음을 변질시킬 위험이 있는 이설이 나타났다. 바로 여기에 대해 조심하도록(2:8) 이 편지가 씌어졌다. 그 이설은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부인하지는 않지만 격하시키는 것이었다(2:10 · 15). 또 이 이설은 어떤 축일이나 안식일의 준수(2:16), 음식에 대한 어떤 금기(2:16 · 21), 또 어떤 종류의 극기(2:18 · 21-23) 같은 것을 요구하였다.

② 만물의 으뜸이신 그리스도 : 골로사이서의 가장 중요한 신학사상은 온 피조계의 으뜸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물이 창조되고 하느님과 화해하여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상이 1:15-20의 그리스도 찬가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찬가에는 우주론적 그리스도상만이 아니라, 그 머리가 바로 그리스도인 신비체로서의 교회관도 역시 드러난다. 이렇게 볼 때 골로사이서의 그리스도론은 바울로의 다른 서한들에서 보다 가장 발전된 단계의 것이다. 가장 발전된 그리스도론이 여기에 나오는 것은 골로사이 교회 공동체에 나타난 이설에 대해 반박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보인다.

③ 저자 : 골소사이서의 저자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집필 장소와 시기에 대한 문제와 더불어 통일된 의견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④ 에페소서와의 관계 : 골로사이서와 에페소서를 보면, 두 서간이 그리스도론을 중심으로 한다는 것뿐 아니라 단어와 문체에서까지 대단히 비슷하다. 그러나 골로사이서는 이설에 대항하여 그리스도관을 밝히지만, 에페소서는 그리스도의 신비, 바로 그 자체를 길게 해설한다. 그러므로 골로사이서를 간단히 에페소서의 초안이라고 만은 할 수 없다. 그 둘은 서로 다른 의도를 가지고 씌어진 독립된 편지들이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만 에페소서가 골로사이서를 확장 · 발전시킨 편지라고 말할 수 있다.

⑤ 수인 서간 : (⇒)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范善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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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산본당 [한] 谷山本堂

1928년 5월 황해도 곡산에 창설되어 1950년 10월 폐쇄된 서울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소화(少化) 데레사. 곡산은 병인(丙寅)박해때 서흥(瑞興)에 살던 교우 고(高)첨지 부부가 잡혀와 순교한 곳이며, 병인박해 후 평양에서 이주해 온 황천일(黃千一) 일가와 노성구(盧成九, 요한)[黃千一의 사위이며 盧基南 대주교의 부친] 일가가 숨어 살면서 신앙 생활을 한 곳이다. 1878년 리델(Ridel, 李福明) 주교가 체포된 후 이 곳으로 피신해 온 로베르(Robert, 金保祿) 신부에 의해 복음이 전래된 후 1896년 강원도 이천(伊川)땅에 포내(浦內) 본당이 창설되자 포내본당의 관할지역으로 되었고, 1925년 황해도 수안에 사창(社倉)본당이 창설되자 사창본당 관할지역을 되었다가 1928년 5월 사창본당 주임 박정렬(朴貞烈, 바오로) 신부가 본당을 곡산군의 중심지인 곡산읍으로 옮기면서 곡산본당으로 창설되었다.

박정렬 신부는 곡산본당을 창설하면서 즉시 곡산면 장림리(長林里) 일대의 과수원 1,500평을 매입, 성당 건축을 시작하여 1929년 10월 3일 소화 데레사 축일에 축성식을 가졌고, 이어 2대 주임 신부로 부임한 구천우(具天祐, 요셉) 신부는 1931년 5월부터 1941년 10월까지 만 10년 동안 사목하면서 소화 유치원을 개설하고 성당을 증축하는 한편 부인들의 모임인 명도회를 비롯, 가톨릭청년회, 소년회 등 여러 신심단체를 조직하여 본당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3대 주임 강주희(姜周熙, 방그라시오) 신부의 후임으로 부임한 임충신(林忠信, 마티아) 신부 재임시절에는 일제말기의 가중된 교회 탄압으로 본당 발전은 중지상태가 되었고, 광복 이후에도 북한 공산정권의 교회 탄압은 계속되어 유치원과 성당을 빼앗기게 되었다. 1950년 10월 유엔군이 곡산에 진주하자 임충신 신부는 사목보고차 상경했으나 1.4 후퇴로 곡산본당에 귀임하지 못하게 되어 결국 그 후로 곡산본당은 침묵의 본당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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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 [한] 苦行 [영] austerity

고행이란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사면을 얻고자 고해(告解)를 하기 위한 준비, 또는 다시금 얻는 성총을 길이 간직하기 위한 자발적인 수덕(修德)으로서, 내면적 속죄의식이 외면으로 나타난 표징을 말한다. 여기에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두가지 양식이 있으며, 그 형식에 있어서도 혹은 세밀한 규율에 따라야 하는 것과, 혹은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의 두 가지가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기도, 단식, 삭발, 속죄를 위한 헌금, 속죄행렬 등으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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