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 [한] 啓示 [라] revelatio [영] revelation

1. 종교학적 의미 : 계시(啓示)란 말마디는 어원적으로 ‘드러나다’, ‘나타나다’, ‘열어 밝히다'(revelare)라는 동사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계시’란 일반적으로 어떤 ‘감추어져 있는 것’, ‘가려져 있는 것’이 ‘자기를 드러내다’, ‘자기를 나타내다’, ‘자기를 열어 밝히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종교에 있어서 그 토대가 되는 것은 ‘거룩한 것'(聖, Das Heilige)이다. 따라서 종교학적으로 볼 때, ‘계시’라는 개념은 흔히 ‘거룩한 것’이 ‘자기를 드러내다’, ‘자기 자신을 열어 밝히다'(聖顯, Hierophania)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① ‘거룩한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비'(神秘, Mysterium)이다. 다시 말해서 ‘거룩한 것’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감추어 두고 있다. 어둠의 장막 속에서 자기 자신을 숨겨 두고 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거룩한 것’을 있는 그대로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없다. 우리 인간이 일상 생활에서 접촉하고 있는 사물 또는 사건들은 드러나 있다. 감추어져 있지 않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나타내고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그 모두가 ‘속(俗)된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이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속된 것’이며, 또한 ‘속된 것’의 영역에 속한 것들이다. 이와는 달리 ‘거룩한 것’은 그 자체로 자기 자신을 감추어 두고 있다. 어둠 속에서 자기 자신을 숨겨 두고 있다. 우리 인간은 이 ‘거룩한 것’을 결코 직접적으로 있는 그대로 경험하거나 체험할 수 없다.

② 이 ‘거룩한 것’은 때때로 그리고 예외적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 일정한 장소, 일정한 역사 속에서 자기 자신을 열어 밝힌다. 그러나 ‘거룩한 것’은 이 때 자기 자신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닌 다른 것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자기 자신을 나타낸다. 다만 다른 것 즉 ‘속된 것’을 매개로 해서만이 자기 자신을 열어 밝혀 준다.

‘거룩한 것’은 때로는 일정한 사물(事物) 즉 나무 · 바위 · 하늘 등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이들 사물을 통해서 ‘거룩한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이 흔히 오래된 고목나무 앞에서 또는 커다란 바위 앞에서 엎드려 절하는 것은, 그들이 바로 이 나무 또는 바위를 통해서 ‘거룩한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하늘을 두려워하고 경천사상(敬天思想)을 갖게 되는 것은, 그들이 바로 하늘을 매개로 하여 ‘거룩한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거룩한 것’은 또한 때때로 일정한 사건 그리고 그 사건과 관련되는 인간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열어 밝혀 준다. 사람들이 흔히 어떤 인간 즉 예언자나 성자(聖者)를 두려워하고 경외(敬畏)하는 것은, 그들이 이러한 예언자나 성자를 통해서 ‘거룩한 것’을 얻어 만나기 때문이다.

③ 이와 같이 ‘거룩한 것’은 그것이 자기 자신을 드러낼 때에는, 언제나 일정한 장소와 일정한 역사 속에서 자기 자신을 한정시키게 된다. 다른 사물이 아닌 바로 이 ‘사물’에, 그리고 다른 사건이 아닌 바로 이 ‘사건’에 제한하여 자기 자신을 나타낸다. 그리하여 다른 나무가 아닌 바로 구체적인 이 나무만이 ‘거룩한’ 나무로, 그리고 다른 사건이 아닌 바로 구체적인 이 사건 만이 ‘거룩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또한 다른 사람 아닌 바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이 사람만이 ‘거룩한’ 인간[聖者]으로 인정된다. 이러한 사실은, 또한 이러한 사실에 대한 경험은 역사적으로 일정한 형태의 종교들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 결과로 세상에는 다만 하나의 종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종교들이 존재하게 된다. (鄭達龍)

[참고문헌] M. Eliade, The sacred and the profane, New York 1961 / F. Heiler, Erscheinungsformen und Wesen der Religion, Stuttgart 1961 / G. Van der Leeuw, Phanomenologie der Religoon, T?bingen, 1956 / R. Otto, Das Heilige, Munchen, 1963 / M. Scheler, Vom Ewigen im Menschen, Bern-Munchen 1968 / B. Welte, Religionsphilosophie, Freiburg 1978.

2. 성서적 의미 : 그리스도교의 계시 개념은 여타 종교에서 이해하고 있는 계시 개념과 일치하고 있지 않음을 미리 밝혀 둔다. 성서 안에서는 계시자인 ‘거룩한 것’이 ‘거룩하신 야훼 하느님’으로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즉 성서적 계시는 가장 거룩한 존재자로서의 인격적 신(神)이 자유로이 자기자신을 드러내신다는 데에 그 특색이 있다. 그러나 성서 안에서 ‘계시’를 표현하는 용어는 단일하고 명확하기보다 다양한데, 이는 성서가 계시에 대한 개념 내지 반성보다는 계시의 사실과 그 사건 자체를 더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성서적 계시는 역사적 행위 안에서 완성된다. 왜냐하면 거룩한 하느님은 시간의 제약 안에 들어오셔서 천천히, 점진적으로 인류에게 자신을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① 구약성서 : 구약성서는 스스로 추상적 사고단계 내에서 하나의 신을 유출해 내고 있지 않다. 구약성서는 오히려 신이 자신을 스스로 계시하시기를 원하셨을 때에만 비로소 신은 인식 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신명 4:32 이하).

하느님의 계시는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실질적인 삶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계시에 의해 생존을 유지하였다. 그래서 하느님은 자신의 이름을(이사 64:1 이하), 자신의 권능을(예레 16:21), 자신의 위대한 일을(하바 3:2), 자신의 도우심(시편 98:2)을 계시하시며, 그것들만이 유일무이한 것임을 알리고 계시다. 그런데 하느님의 계시는 바로 역사 내에서 발생하므로, 인간과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역사는 하느님 계시의 대상이요 수단이 된다. 하느님은 특정 인물들을 통하여(아브라함, 모세, 예언자들) 자신을 계시하시며, 또한 폭풍이나 구름, 기둥, 불기둥, 나무소리, 바람소리 등의 형태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는데, 이는 하느님이 이 세계 내에서 매개물을 통하여 인간에게 자신을 알리시는 형태들로서, 하느님 계시의 역사 관련성을 표현하고 있다(출애 19:16, 14:24, 2사무 5:24, 1열왕 19:12, 시편 8:4, 19:2). 또한 계약의 궤, 천막, 성전, 하느님의 지팡이, 희생제물 등이 계시의 특정장소로 등장하는 것은 계약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는 역사 내에서의 하느님 의지의 계시를 현시함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동시에 인간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장소가 된다. 즉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역사를 이루어 나가시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야훼임을 백성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심이다(예레 31:34, 에제 36:38, 37:28, 이사 43:10). 하느님의 자기 계시는 순수 인간적 지성으로는 깨달을 수 없는 바 역사라 칭하여지는 인간적 성취 안에서 비로소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 내 행위자로서의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 및 온 세계백성을 위한 약속으로 자신을 계시하고 계신다(미가 4:5, 6:3 이하, 예레 11:5, 신명 4:37, 출애 32:13, 이사 41:8 이하, 창세 9:1).

② 신약성서 : 신약성서는 결정적 계시자로서의 예수에게로 집중되어 있다. 계시관에 입각하여 신약성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의 약속이 충만되었음을 기술하고 있다. 요한에게 있어서 예수는 빛이고 진리이며 계시자이다. 그러나 바울로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하느님 신비의 내용-계시된 자-이 된다. 어쨌든 ‘계약’,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백성’ 등의 신·구약의 근본 개념들은 신약성서의 여러 귀절들을 통하여 결국 구약성서의 옛 계약에서 나타난 하느님의 약속이 구약성서의 하느님 상(像)과 함께 새로운 계약인 그리스도 안에서(에페 3:6) 계시의 충만으로 주어지고 있음을 지시하고 있다.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이스라엘 역사와 그리스도가 연결됨을 기술하고 있고(로마 9장 이하), 구약의 구절들을 요한복음(3:9)은 아드님의 증거로서 얘기하고,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3:15)는 신앙인들을 아브라함의 유산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러한 신약성서의 진술들은 모두 예수가 구약성서의 약속이 충만된 하느님의 계시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예수는 하느님의 계시이다. 왜냐하면 예수는 구세사 안에서 모든 약속의 충만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부활은 인간의 삶은 원하시는 생활하신 하느님의 자기 계시이다. 하느님은 약속의 말씀과 약속 충만의 업적 사이에서,즉 과거로부터 현재를 뛰어넘어 개방된 미래에로 뻗쳐진 역사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고 계신다. 계시는 예수를 뛰어넘지는 않지만,-바로 예수 안에서 인간의 구원이 존립 가능하므로 인간의 구원을 위해 계속 작용한다. 그러므로 계시는 역사를 위한 하느님의 말씀이고, 충실한 말씀으로 인간에게 있어서 하느님 말씀의 역사인 것이다.

3. 교의신학적 의미 :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계시는 초세계적인 하느님께서 스스로를 열어 보이시는 것이다. 이러한 계시는 먼저 행위 자체로서의 계시인 능동적 계시(revelatia activa)와 계시된 것을 의미하는 수동적 계시(revelatia passiva), 이중의 측면에서 고찰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초자연적 계시는 본질에 있어서 하느님이 스스로 자신을 인류에게 열어 보이셨다는 데에 존재한다고 천명함으로써, 계시의 개념을 순수 지성적으로 추구하려는 경향을 배척하고 있다. 이 초자연적 계시는 역사적 행위 안에서 일어나고(계시헌장 3항), 계시의 완성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에 달한다.

① 하느님의 창조업적인 피조물 안에서 자연적 방법으로 하느님의 계시가 파악되기도 한다(자연적 계시, revelatio naturalis). 그러나 피조물의 자연적 인식가능성을 뛰어넘는 초자연적 계시(revelatio supernaturalis)는 고유의 의미에서 계시라 불려진다.

② 초자연적 계시는 내용적으로 다시 구분될 수 있다. 죽은 후에 영원히 축복받게 되는 인간에게 하느님은 자신을 열어 보이시므로, 이 축복받은 인간은 하느님의 신비를 하느님을 통하여 하느님 안에서 완전히 인식할 것이다. 이러한 계시를 영광의 계시(revelatio gloriae)라 부른다(로마 8:18 이하, 1베드 1:5 참조). 그러나 살아 있는 인간에게는 하느님의 초자연적 신비가 완전히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초자연적 실재인 하느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실 때(말씀계시) 하느님의 신비를 표현하는 상상이나 개념들은 유비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뿐이다. 사도 바울로는 그래서 “우리가 지금은 (하느님을)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희미하게 본다“(1고린 13:12)고 하였다. 하느님은 초자연적인 말씀계시를 통하여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업적계시로 부르신다. 그러므로 자연적 신인식(神認識)은 구세사와의 맥락 안에서 가능하다. 또한 초자연적 계시는 일반 구세사 전반을 의미하는 일반적 초자연적 계시와 특수한 구세사, 즉 신·구약 성서에 담겨진 내용을 의미하는 특별한 공적 직무적 계시로 구분되기도 한다.

③ 전달되는 진리가 신비로서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을 때 초자연적 계시라 부른다. 초자연적 말씀계시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일 때 공적 계시(revelatio publica)라 부르고, 다만 한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계시는 사적 계시(revelatio privata)라 부른다.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공적 계시의 절정이고 종결임은 신앙의 진리이다. 그리고 공적 계시의 확실한 선포는 마지막 사도가 죽으면서 끝났다는 것은 적어도 신학적으로 확실하다. “로마 교황과 주교들은 … 새로운 공적 계시를 신앙의 유산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없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의헌장 25항).

계시의 중계방법에 따라서, 하느님의 사자(使者)에게 직접적으로 내려지는 계시를 직접적 계시(revelatio immediata)라 하고, 하느님의 사자를 통하여 인류에게 중계되는 계시를 간접적 계시(revelatio mediata)라 부른다. 구원의 신비의 초자연적인 공적 계시는 근본적으로 인류를 위한 간접적 계시인 것이다. (朴順信)

[참고문헌] A. Kolping, Fundamentalthelogie I. Theorie der Glaubenswurdigkeitserkenntnis der Offenbarung, Munster 1967 / K. Rahner u.a., Sacramentum Mundi III3 Freiburg i. Br. 1970 / J. Feiner u. M. Lohrer (Hrsg.), Mysterium Salutis, Grundriβ heilsgeschichtlicher Dogmatik, Einsiedeln, 1965(I), 1970(III1) 1969(III2) / L. Volken, Die Offenbarungen in der Kirche. Aus dem Franzos (1961) ubersetzt v.H. Hoefert u.M. Fabian, Innsbruk 1965 / R. Schnackenburg, Offenbarung, II. In der Schrift, in J. Hofer-K. Rahner (Hrsg.), Lexikon fur Theologie und Kirche VII, 1962 / A. Lang, Fundementaltheologie I, Munchen 1967 / 서강대 신학연구소, 현대신학동향, 분도출판사, 1984.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계성학교 [한] 啓星學校

한국 최초의 근대적인 초등 교육기관. 1836년부터 입국하여 선교 활동을 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은 교회에 대한 박해 때문에 활발한 교육 사업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가 1822년 한미수호조약(韓美修好條約)이 체결됨에 따라 조만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될 것을 예견한 블랑(Blanc, 白圭三) 주교가 종현 언덕을 사들이고 이 곳에다 학교를 세웠는데 이것이 계성의 전신이다. 즉 부지를 마련한 블랑 주교는 학교를 세우게 하고 한문, 국어, 교리 등의 초등교육과 신학교에 들어갈 사람들을 위한 예비 교육을 실시케 하였다.

이 학교의 학생 중 최초의 신부는 김성학(金聖學) 신부였다. 그는 1883년 페낭신학교로 유학하여 1897년 서품되었다. 그 뒤를 이어 1884년에는 정규하(鄭圭夏), 한기근(韓基根), 최 바오로, 문 바오로 등 4명이 페낭으로 유학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 1886년의 뮈텔문서는 당시 이 학교의 학생수가 40여명이었음을 알려 준다. 1895년 약현학교가 개설되기 전까지 이 학교는 ‘종현서당’, ‘한문학원’, ‘종현학원’ 등으로 불렸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종현학원이라는 명칭이 가장 적절한 것이다. 그후 약현학교의 개설과 함께 약현학교를 문밖학교, 종현학교를 문안학교라 부르기도 하였다.

1906년부터는 성 바오로수녀회를 초청하여 교육에 박차를 가하였고, 1909년에는 정식으로 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수업연한 4년의 ‘계성학교’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사용하였다. 이때 남녀학생을 구별하여 남학교를 ‘계성’, 여학교를 ‘계명’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1924년에는 수업연한 6년의 계성보통학교로 교제와 명칭을 변경하였고, 1926년 늘어나는 학생으로 인하여 학교를 증축하였다. 1931년에는 계성심상소학교로, 1938년에는 계성국민학교로 교명이 각각 변경되었다. 1944년 현재의 계성여자중고등학교의 전신인 계성여자상업전수학교를 병설하였다. 발전을 거듭해오던 계성국민학교는 6.25동란중인 1951년 25회 졸업생을 배출시킨 후 한때 폐교되었다가 1964년 다시 개교하였다. 1966년 유치원의 병설로 계성학교의 울타리속에는 계성여자중고등학교, 계성국민학교, 계성유치원 등 유아교육에서 고등교육까지 담당하는 학교가 들어서게 되었다. 서울시 중구 명동 2가 소재.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계성여학원 [한] 啓星女學院

샤르트르 성 바오로수도회에서 설립, 운영하던 교육기관. 고녀(高女) 출신 여학생을 모집하여 가사에 필요한 제반 학과를 교육하였으며 가정과, 연구과 각각 1년씩의 전문 교육을 실시하는 2년제 학교였다. 1927년에 설립되었고 1944년 계성여자상업전수학교(현 계성여자중고등학교)를 설립한다는 조건으로 폐교되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계성여자중고등학교 [한] 啓星女子中高等學校

1944년 8월 10일 경성구 천주교회유지재단에서 경성계성여자상업전수학교(京城啓星女子商業專修學校)로 개교한 여성중등교육기관. 어둠 속에서 항상 빛을 발하는 안내자 혹은 지도자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여성을 양성함과 아울러 성모님과 같이 현숙하고 순결하며 내적 용기를 가진 여성의 양성을 창립 목적으로 1942년 당시 국민학교 교육 의무화에 대비코자 여학교의 설립을 추진하여 당시 운영되던 계성여학원을 폐교하면서까지 1944년 계성여자상업전수학교를 설립하였다.그러나 곧 광복이 되어 1946년 6월 24일 인문계 여자중학교로 재개교하였지만 6.25동란으로 인하여 피난학교를 부산과 대구에서 운영하다가 1953년 본교로 복귀하였다. 한편 1951년 8월 31일 학제 변경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분리하였다. 1957년 3월 한국 샤르트르 성 바오로수녀회에서 학교 운영권을 이양받고 1959년 현재의 교표(校標)로 개정하였다. 1969년 3월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완전 분리하여 운영하기 시작하였고 1975년 7월에는 ≪계성 삼십년사≫(啓星三十年史)를 출간하였다. 현재 중학교 30학급, 고등학교 24학급을 운영하면서 여성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계산동본당 [한] 桂山洞本堂

대구 대교구 주교좌 성당. 1886년 로베르(Robert, 金保祿) 신부가 경상남북도 지역의 전교를 담당하여 대구로 부임하여 읍내 밖 신나무골과 새방골에서 은신, 전교하다가 읍내 정규옥(鄭圭鈺) 집에 주거하며 7년 동안 전교 활동을 하였다. 그 뒤 1897년 현재의 계산동본당의 대지를 구입하고 그 곳에 있던 초가를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며 성당 신축을 계획하여 3년만인 1899년 한국식 목조 십자형의 성당을 신축하였다. 축성식은같은 해 성탄첨례날에 거행하고 성모를 성당 주보로 삼았다. 당시 성당 대지를 물색 중 처음에는 동산(東山)의 구릉지(丘陵地)를 내정하였으나 몇몇 사람들의 반대로 대구 시내에서 제일 저지대(低地帶)에 위치하게 되었는데 개신교가 그 동산을 매입하여 공사를 착수할 때는 적지 아니 후회도 많았다.

더욱이 어렵게 지은 한국식 목조 십자형은 완공한 지 1년도 못 되어 불에 타고 말았다. 그러나 서상돈(徐相燉), 김종학(金鍾學), 정규옥 등 몇몇 사람의 도움으로 성당 재건 계획을 세워 한국에서 구하지 못하는 자재를 프랑스 혹은 홍콩에서 수입하여 서양식 벽돌 건물을 건축하기로 하였다. 당시 대구에서 서양식 건물로는 처음인 새 성당이 1902년 5월에 준공되었다. 2개의 종각이 우뚝 솟아 뾰족집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그 뒤 1911년 대구교구 설정으로 주교좌 성당으로 승격되고 교우 수가 증가함에 따라 증축하지 않을 수 없어 성당 종각을 2배로 높이고 성당 뒤쪽을 확장하여 남북으로 나래를 달아 1918년 완공되었다. 축성식은 1919년 5월 11일 거행되었다. 1983년 현재 신자 수는 9,887명이며 루르드의 성모 마리아를 주보로 모시고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