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나 본당 여교우들의 지도자로서 남성 회장이 할 수 없는 직무를 맡아 수행하는 여성 회장을 말한다. 여회장의 직무는 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부녀 예비자 교육, 여교우들의 교리교육, 전교(傳敎), 부녀자들에게 대세(代洗)를 주는 일 등이었는데 이는 유교(儒敎)를 국시로 했던 조선의 ‘남녀유별’(男女有別)이라는 관습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다. 1801년 신유(辛酉)박해 때 순교한 최초의 여회장 강완숙(姜完淑), 1839년 기해(己亥)박해 때 순교한 성녀 현경련(玄敬連) 등은 한국 교회의 대표적 여회장들이다. (⇒) 회장
역대교황표 [한] 歷代敎皇表 [라] Liber Pontificalis
제1대 베드로에서부터 시작하여 교황직에 올랐던 교황들의 전기(傳記)를 수록하고 있는 서적. 각 교황들의 생애가 일정한 형식에 맞춰 기술되어 있다.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리베리우스표>(Liberian Catalogue, 354)에 의거하여 교황 보니파시오 2세 시대의 로마 사제가 작성한 것이 있다. 그 후에 출판된 <역대교황표>들은 각 교황이 선종한 이후 작성된 전기들이 첨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대기 [한] 歷代記 [라] Libri Paralipomenon [영] Books of Chronicles
1. 예비지식 : 역대기는 70인역(그리스어 번역)과 불가타역(라틴어 번역)의 영향을 받아 상하 두 권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 책의 히브리아어 원명은 “그날 일어난 일들(의 책)”(=[saeper] dibre hajjamim), 즉 일지(日誌)라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이 제목은 열왕기 후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료(史料)를 지칭하는 관용구를 모방하여 지어졌다고 볼 수 있다. 70인역에서는 이책을 Paraleipomena라고 한다. 이것은 직역하면 ‘간과된 것’을 뜻한다. 어느 책에서 간과된 것을 말하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사무엘서와 열왕기에서 취급되지 않은 것을 지칭한다기보다 번역할 때 사용했던 원본에는 없었다는 의미로 알아 듣는 것이 옳다[J-P Ander, A Hebrew aramaic List of Books of the Old Testament, JThs N.S. 1, 1950, pp.135-154 참고]. 불가타 역에도 같은 명칭을 사용하였다. 역대기라고 불리게 된 것은 예로니모 성인이 이 책은 ‘하느님의 전 역사의 역대기’(Chronicon totius divinae historiae)라고 이름지은 데에 기인한다. 이 책은 제일 늦게 성경으로 인정받았다고 본다(느헤미야서 항목 참고).
2. 내용 : 크게 보아 4부분으로 구분된다. ① 역대기 전 1-10 아담부터 사울까지의 족보. ② 11-29다윗의 집정. ③ 역대기 후 1-9 살로모의 집정. ④ 역대기 후 10-36 유다왕들의 집정부터 귀양 때까지, 귀양 후의 이야기는 에즈라-느헤미야서로 이어진다.
내용의 특성을 몇 가지 볼 수 있다. 첫째 부분(1역대 1-10)에서는, 아담부터 족보를 써 내려갔지만 카인, 아벨 등의 이야기는 없고 아브라함의 후손과 야곱의 12아들에 대해(1:1-2:2) 언급하고 유다부터 다윗까지는 물론(2:3-55, 4:1-23), 다윗 후예 왕들, 그리고 귀양간 후의 왕손의 대하여도 말하고 있다(3장). 레위족에 대하여도 다윗 왕가에 못지않게 길게 부연하고 있다(5:27-6:66). 사울에 대하여 간단히 언급하고 지나친 반면, 다윗 가문과 레위족에 대하여 자세히 서술함으로써 저자는 자기 관심이 어디 있는지 잘 드러내고 있다. 더구나 사울의 죽음이 하느님께 대한 불충 때문이었다는 내용(10장)은 다음에 이어지는 둘째 부분에 묘사된 다윗을 돋보이게 한다. 다윗 집정에 대한 기록(11-29장)은 그의 집정(11-16장)과 성전 건축(17-29장)으로 나뉘어진다. 따라서 둘째 부분은 자연히 살로모를 겨냥하고 썼다고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윗과 살로모에 대한 부정적인 것이 생략되었다는 점이다. 다윗의 밧세바 부인과의 부정, 그에 따른 나탄 예언자의 선고, 다윗을 거스려 일어났던 폭동이야기 등, 다윗 계승사와 관계된 것은 지나치고 있다. 그 대신 살로모가 성전을 지을 왕으로서 소개되므로(1역대 17:11~2사무 7:12 참고) 다윗이 시작한 업적의 계승과 완성을 가능케 하고 있다. 살로모가 반대자를 학살한 것(1열왕 2장)이나 파라오의 딸과 결혼한 것(1열왕 3:1) 등도 살로모의 집정을 서술한 셋째 부분(2역대 1-9)에서 취급되고 있지 않다. 성전 건축의 완성과 관련된 문맥 가운데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물을 불사르고 하느님의 영광이 성전을 채웠다(2역대 7:1 이하)는 기록은 살로모가 이스라엘의 종교사 안에서 갖는 높은 위치를 증언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살로모가 다윗이 뿌린 것을 거두는 왕으로 묘사되므로(2역대 2:6 · 13 · 16, 3:1, 5:1, 6:3-11) 두 왕의 활동이 큰일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과 동시에 살로모가 다윗의 계승자임을 잘 드러내고 있다. 넷째 부분인 2역대 10-36장에서는 유다왕의 역사만 소개되고 있다. 즉 왕국이 남북으로 갈라진 후의 역사가 열왕기에서는 유다와 이스라엘로 구분되어 기록되어 있는 반면에 역대기에서는 유다의 이야기만 언급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그 왕들은 다만 유다의 상대자로서만 언급되므로 열왕기에서 볼 수 있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비교하여 기록하는 연대의 동시성은 볼 수 없다. 넷째 부분에는 열왕기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건축, 군대 행정조직 등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 할 수는 있으나 그 자체가 독립적 역사 문헌에 근거하였다고는 볼 수 없다.
이런 특징들은 역대기가 사무엘서와 열왕기와는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 역대기 고유의 문학적 신학적 작업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윌리(T. Willi)는 이런 작업을 사료로 쓰인 사무엘서와 열왕기의 ‘해석’(Auslegung)이라고 주장한다. 그와는 좀 다르게 많은 학자들은 역대기가 다윗 왕국의 역사를 새롭게 이해하는데 대한 관심은 독특한 방법으로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
3. 지향 : 역대기가 목적하는 바에 대하여 많은 학자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한때는 예루살렘과 거기 있는 성전이 야훼를 공경하는 곳으로서 유일하게 그 합법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정당화하려는 것이 역대기가 지향하는 바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마리아와의 분쟁과 사마리아에 있는 성소의 합법성에 대한 논쟁이 역대기를 쓰게 된 계기라고도 보았다(M. Noth, K. Galling). 그러나 이 의견은 수정되거나 포기되었다. 역대기에는 북쪽을 거스리는 경향이 없고 역대기 저자는 이스라엘을 12지파를 포함하는 하나의 단위로 보았기 때문이다(T. Willi, R. Mosis).
역대기 저자의 지향이 신학에 바탕을 두었느냐(R. Mosis) 아니면 시대에 매인 정치적인 것이었느냐(P. Welten) 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 두 의견은 꼭 상치된다고는 말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기의 뜻하는 바는 신정국가, 다윗 하에서 그 준비, 멸망, 개혁 및 재건의 시도로 준비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살필 수 있다. 역대기 저자에게 이스라엘은 하느님이 선택하고 가르치신 공동체이고, 하느님 경신례를 드림으로써 그를 섬기고 권리를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왕에 의하여 다스려질 단체이다. 이런 견지에서 저자는 다윗 휘하에서 그 신정이 가장 이상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후대의 왕들도 그를 본받았어야 만하였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였기 때문에 계속 쇄신과 개혁의 필요를 느꼈고, 비록 시대적으로는 부적합하였을지 모르나 언제고 미래에 그 이상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그러기 위하여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신뢰를 잃지 않게 하려고 했다.
4. 저술연대 : 귀양 후에 쓰여진 점에 대하여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프리드만(D.N. Freedman)은 에즈라 1∼3장과 함께 기원전 515년에 쓰여졌다고 본다. 다른 저자들은 훨씬 후 즉 헬레니즘 시대에 씌었다고 본다. 이 의견은 둘 다 극단적이다. 연대를 추정하기 위한 일차적 근거는 느헤미야서와 에즈라서이다. 이 두 책과 역대기는 비록 같은 저자에 의하여 쓰여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같은 시대에 서로 보완하고 서로 관련을 맺어 집필되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느헤미야서와 에즈라서에 쓰인 사실이 생긴 후에 씌어졌다고 볼 때 400년 후로 생각하게 된다. 집회서 47:2-11이 다윗을 역대기같이 묘사하는 것으로 보아 200년 후일 수는 없다. 역대기에 나오는 전쟁 이야기가 서로 적대 관계에 있던 프톨레미아와 셀레우키드 때 있었던 군사적 위협의 상태를 반영한다고 보면 3세기에 쓰였다고 볼 수 있다(P. Welten). 4세기에 씌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5. 사료와 생성 : 역대기 저자는 약 20개의 사료를 지칭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것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기 저자는 창세기-여호수아기, 그리고 사무엘서와 열왕기를 알았고 또 자기 책에 이용했다고 본다. 자기에게 맞지 않는다든지 자기 생각을 뚜렷하게 나타낼 필요가 있을 때에는 독자적인 방법으로 그 사료들을 분리하고 변형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로, 열왕 21:1-18과 2역대 33:1-20을 비교하여 볼 수 있다.
역대기도 한 번에 쓰여진 것이 아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필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처음 부분에 즉 이미 모세오경(특히 창세 46:8-27, 민수 26 비교)을 이용하여 다윗 전의 이스라엘 역사를 기술하는 부분에서 본문이 많이 변형되었다. 루돌프(Rudolph)에 의하면 본문은 1:1-4a · 24-31 · 34b-42, 2:1-17 · 25-33, 42-50a, 4:24-27, 5:1-3, 6:1-9·14 이하, 7:1 · 2a · 3 · 12 이하… · 14-19 · 20, 9:1a로 구성되었다. 다음에 크게 삽입된 것은 1역대 23:3-27 · 34까지다. 이 부분도 한 번에 쓰인 것은 아니다. 그 외에 1역대 12:1-23, 15:4-10 · 16-24, 16:5-38 · 42도 후에 첨가 된다. (沈勇燮)
[참고문헌] K. Galling(ATD) 1954 / W. Rudolph(HAT) 1955 / J.M. Meyers(AB) 1965(번역됨)의 주해서 외에 A.C. Welch, The Work of the Chronicler Its purpose and its date, 1939 / Th. Willi, Die Chronik als Auslegung, 1972 / P. Welten, Geschichte und Geschichtsdarstellung in den Chronikbuchern, 1973 / H.G.M. Williamson, Israel in the books of chronicles, 1977 / R.L. Braun, Chronicles Ezra and Nehemiah: Theology and literary History, in: Vis 30, 1979 / D.N. Freedman, The Chronicler’s Purpose, in: CBQ 23, 1961 / R. Mosis, Untersuchungen zur Theologie des Chronistischen Geschichtswerkes, 1973 / J.D. Newsome, Toward a new understanding of the chronicler and his purpose, in JBL 94, 1975 / M. Noth, Uberlieferungsgeschichtliche Studien, 1973 / G. von Rad, Das Geschichtsbild des chronistischen Werkes, 1930 / A.M. Brunet, Le Chroniste et ses Sources, in: RB 60, 1953; 61, 1954 / W.F. Stinesspting, Eschatology in chronicles, in: JBL. 80, 1960.
역사 [한] 役事 [라] operatio [영] operation
일반적으로 토목 · 건축 따위의 공사나 또는 일을 가리킨다. ≪한불자전≫(韓佛字典, 1880)에서는 ‘역사’를 일(travail)[노동 · 노력 · 수고 등] 또는 사업(entreprise)[기업]의 뜻이라 하였고, ‘역사하다’를 travailler 즉 ‘일하다’, ‘근무하다’의 의미로 풀이하였다.
이 말은 한국어 가운데서도 오래된 옛말로서 특히 성서의 경우 한글 개역(改譯)전 구약에서는 모두 ‘역사’로 나오면, “하느님이 창조적으로 행하신 것”을 의미하였다. 그 다음 한글 개역에서는 이를 주로 ‘일’로 번역하여 역시 같은 뜻을 나타냈다(시편 28:4 · 5, 판관 5:12). 신약에서는 성령의 내적 역사(內的役事)와 권능은, 개개인과 교회에 부여된 영적인 은사를 지칭하며, 예수의 부활 안에서 하느님의 권능과 ‘역사’를 통하여, 죄 가운데 죽은 자들이 믿음으로써 새 생명으로 일으켜진다는 사건에서 드러난다(골로 2:12).
역사철학 [한] 歷史哲學 [영] philosophy of history [독] Geschichts-philosophie
역사의 의미와 방법론을 탐구하는 학문. 역사를 단순한 사실의 기술로 보지 않고 역사에 내재된 의식구조를 추적 · 분석함으로써 인간 삶의 목적과 가치를 탐구대상으로 한다. 1769년 볼테르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헤르더, 헤겔 등이 정착시켰다. 역사과정의 전개원리를 추구하는 역사존재론, 역사인식의 성립근거와 역사학의 방법론을 추구하는 역사인식론으로 구분된다.
역사존재론은 다시 세계의 역사를 초자연적인 존재 속에서 구하는 역사형이상학, 문화의 전통이나 인간정신의 자기전개 속에서 구하는 관념론, 물질의 생산관계 속에서 구하는 사적 유물론으로 나눠진다. 역사형이상학은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유태교나 그리스도교에서 나타난다. 이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각 민족의 갈등과 몰락 등 역사는 신의 섭리에 의해 전개되어 간다고 한 사람은 아우구스티노였다. 그 뒤 비코 · 볼테르 · 헤르더 · 칸트 등은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역사존재론을 주장하면서 신(神) 중심의 세계관에서 탈피하여야 함을 강조하였다. 볼테르는 인류의 역사가 유태인 이전에도 있었음을 설명하고, 종교의 기원을 고대 동양민족에게서 찾음으로써 역사의 기원과 본질 및 그 인식방법을 철학적으로 고찰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칸트와 헤르더는 인류사의 본질을 자연이 그 계획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파악하여 역사의 목적은 인간성의 완성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칸트에 이어 피히테, 셸링을 거쳐 헤겔에 이르면 관념적인 역사관은 그 절정을 이루게 된다. 헤겔은 세계를 절대정신의 변증법적인 자기전개과정이라고 생각하여 세계사를 절대정신이 국가를 통하여 목적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헤겔은 역사의 주체를 절대정신이라 보고 관념적으로 파악한 결과 역사를 신비화시켰다. 이를 비판하고 나선 포이에르바하와 마르크스, 엥겔스는 역사의 추진력을 운명, 섭리, 영웅, 천재, 절대정신 등에서 찾는 관념론적 역사관이나 기후 · 풍토 등에서 구하는 지리적 유물론을 배척하고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주축으로 형성된 소유관계를 둘러싸고 계급간에 벌어지는 투쟁으로 보았다. 19세기말 이후에는 마르크스주의의 사적 유물론과 대결하기 위해 역사에 내재하는 보편적인 본질을 추구하려는 비합리주의적인 철학이 나타난다. 니체에서 실존주의에 이르는 사상적 조류가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역사란 자연과 달라서 어떤 인식을 내포한 존재라고 주장하고, 그 인식 자체가 일종의 역사적인 존재로서 역사의 자기형성과정에 참여한다고 주장하였다.
역사인식론은 역사가가 역사를 기술하는 데 있어서 어떤 법칙에 따라 기술하는가와 관계된다. 역사가는 과거의 수많은 사실들 중에서 역사에 기재할 만한 중요성을 선택적으로 인정한 다음 사건과 사건과의 인과관계를 분명히 하여야 한다. 그러나 역사가에 따라 사실을 평가하는 기준이 다양하므로, 역사의 내용과 방향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 역사인식론의 필요성이 존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