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화 [한] 義化 [라] justificatio [영] justification

하느님의 은총으로 인간 안에 일어난 내면적인 변화. 이 말은 바울로가 다수 유태교도들의 율법적이고 종말론적인 구원개념을 은총으로 변화된 그리스도교인의 처지에 응용한 것이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하느님은 종말에 가서 율법의 준수 여부에 따라 인간을 의화나 단죄로 선언하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바울로는 그리스도 안에 신앙으로 의화된다고(로마 3:28) 하였는데 그 이후 신학은 의화를 은총의 주입으로 보았다. 신앙은 하느님의 말씀을 동의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나, 이는 먼저 인간을 신앙에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은총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은총은 인간의 업적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의 발로로 주어지는 것이기에 무상이다. 그렇다고 하여 은총으로 구원하시는 하느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수동적으로 머무르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구원의 길을 함께 가도록 해방시켜 주신다. 그러므로 인간의 자유가 전적으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며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에 협력하는 것이다.

인간 안에서 실현되는 의화의 내용은 죄의 용서와 내면적 쇄신이다(로마 5:1-5). 죄란 과거에 이행된 해위일 뿐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 아래 놓여 있는 지속적인 상태이다(로마 1:18-3:20, D. 793). 죄를 극단적으로 이해하여 단순히 도덕규범을 위반한 행동뿐, 인간 실존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것이라든가, 탐욕과 동일시하여 불가피한 인간성의 한계로 보는 태도는 양자 모두 지양되어야 한다. 죄란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과의 내밀한 일치(지복직관)를 이향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인간 실존에 영향을 미치고 인간 자신의 힘으로 타락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려고 헛되이 몸부림치도록 방치한다. 죄는 결코 인간 본성을 완전히 부패시키는 것이 아니요, 인간의 궁극목적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바꿔 놓는 것이 아니다. 죄인의 처지란 인생의 궁극목적과 그 목적을 지향하는 현실간의 불일치를 뜻하며 죄의 용서란 이 지향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양자를 일치시키는 것이다. 죄의 용서를 받은 인간은 잃었던 우애를 되찾고 양자(養子)의 지위를 회복한다. 이것이 성령의 내주(內住), 새로운 창조 등으로 표현되는 은총의 상태요, 은총이 작용한 결과 변화된 인간의 내면적 쇄신이다.

종교개혁자들에 의하면, 범죄한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완전히 상실하고 본성이 부패하여, 범죄할 능력 외에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므로, 만사는 은총의 소산이라 하며, 은총은 인간을 변화시키지 않고 하느님이 당신을 우리에게 내세우는 새로운 관계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트리엔트 공의회는 의화교령(義化敎令)에서 “인간이 인간 본성의 힘에 의하여 성취되는 자신의 업적을 통해서, 현존하는 하느님의 은총 없이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 앞에 의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단죄하는 기본입장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통한 구원과정에 인간의 자유로운 협력 가능성을 인정하고, 의화시키는 은총은 인간 안에서 참된 효과를 발휘하여, 죄인의 처지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되며 구원에로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을 받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루터가 은총의 우위성을 강조하면서도 이에 관통되어 있는 인간도 보고 있으며 트리엔트 공의회가 은총입은 인간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주도적인 은총행위의 전제 하에서 보여지고 있다는 인식이 역사가 흐르면서 분명해지게 되었다.

사실 의화는 오로지 은총만에 의하여 이루어지되 인간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으며, 오로지 신앙만이 의화시키나 진정한 신앙에는 선행이 없지 않다. 의화는 유일회적(唯一回的) 사건이면서도 일생에 걸친 과정이다 하느님 앞에서 인간은 아무 것도 내세울 수 없으나 성서는 공로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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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본당 [한] 義州本堂

1911년 평북 의주군 의주읍(平北 義州郡 義州邑)에 창설되어 1950년 폐쇄된 평양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성모승천(聖母昇天), 의주는 옛부터 조선과 중국과의 관문(關門)이었던 곳으로, 조선 교회의 밀사들이 북경(北京) 왕래의 통로로 사용했던 곳이며 또한 모방(Maubang, 羅) 신부, 샤스탕(Chastan, 鄭) 신부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 등이 조선에 입국하여 첫 발을 내디딘 곳이다. 이곳은 1898년 섶가지[薪枝里]본당 주임 샤플랭(Chaplain, 蔡) 신부와 그의 복사 양덕현(梁德鉉, 힐라리오)에 의해 전교되어 평북지방의 첫 공소로 개설된 후, 1911년 본당으로 창설되었고 폐쇄되기까지 의주군과 삭주군(朔州郡) 일대에 영삭(寧朔) · 청성진(淸城鎭) · 삭주(朔州) · 수진(水鎭) · 고성(古城) · 송장(松長) 등의 공소를 두고 관할하였다. 초대 주임신부로 서병익(徐丙翼, 바오로) 신부가 부임하여 의주읍내 남문동(南門洞)에 임시성당을 마련하고 사목하다가 1918년 해성(海星) 유치원, 1924년 해성학원 등을 개설하고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들을 초빙하여 교육을 전담시켰다. 그 후 1923년부터 미국 메리놀회가 평안도에 진출하여 평양교구 신설을 준비함에 따라 1924년 서병익 신부는 서울교구로 돌아가고 이후로는 메리놀회 신부들이 본당사목을 담당하게 되었고, 메리놀 수녀회 의주 분원도 설치되어 동(同)회 수녀들에 의해 1926년 시약소, 고아원이 개설되었다.

그러나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평양교구내의 모든 메리놀회 성직자들이 일제(日帝)에 체포 구급되고 평양교구가 방인교구로 되자 1942년 강영걸(姜永杰, 바오로) 신부가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인근의 강계(江界) · 중강진(中江鎭) 본당까지 맡아 사목했다. 1943년 4월부터는 김교명(金敎明, 베네딕토) 신부가 강영걸 신부의 후임으로 부임하여 사목했으나 광복 후 북한 공산정권의 교회탄압이 가중되는 가운데 1950년 6월 25일 김교명 신부가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체포됨으로써 본당도 폐쇄되었다.

의주본당의 신심단체로는 가톨릭청년회, 성가대, 부인회, 가톨릭운동연맹 지회 및 분회, 주일학교 등이 있었고, 본당운영 사업체로는 해성유치원, 해성학원, 해성학교, 고아원, 양로원, 시약소 등이 있었다. 1937년 의주본당 교세는 신부 1명, 수녀 3명, 총 교우수 474명, 유급 전교회장 4명, 공소 5개소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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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본당 [한] 議政府本堂

1945년 8.15 광복 후 경기도 양주군 이담면 덕정리(德亭里) 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김피득(金彼得, 베드로) 신부는 본당을 매각하고 의정부시 의정부동에 대지(1,625평)를 매입, 1946년 11월 이전하여 한옥에서 서울 혜화동본당을 모본당으로 한 의정부본당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김 신부는 피난지에서 1951년 병사하였고, 그 해 11월 박지환(朴址煥, 요한) 신부가 2대 주임으로 피난지 부산에서 발령을 받고 부임도중에 1.4후퇴의 피난길에 다시 나서게 되어 부임하지 못하고 말았다. 1953년 3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계광(李啓光, 요한) 신부는 주한 미 1군단의 원조와 교구청의 지원으로 새 성당건물(68평)을 준공, 이듬해에는 역시 미 1군단의 도움으로 유치원 건물(49평)을, 1955년에는 수녀원(15평), 사제관(27평), 1957년에는 본당부속 성모병원(80평)을 잇달아 건축하였다. 1959년 산하의 동두천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 분리되었다. 이계광 신부는 1967년 전임되기까지 16년간 재임하면서 성당건립과 전교사업은 물론 교육과 의료사업에도 크게 전력하여 본당의 기반을 닦아 놓았다. 1973년 6대 본당주임으로 부임한 최서식(崔瑞植, 라우렌시오) 신부는 1976년 본당부속 성모병원을 가톨릭대학 의학부 부속병원으로 등록시키는 동시에 새로 마련한 420평 대지 위에 현대식 병원(지하 1층, 지상 3층, 연건평 900평)을 그해 12월에 준공하였다. 의사 확보 및 최신 의료기재 도입, 내과, 외과 · X-선과, 임상병리과, 주야간 응급실을 갖춘 경기도 북부지역의 유일, 최대의 종합병원으로 발전시켰다. 1979년 7대 주임으로 취임한 이사응(李思應, 안토니오) 신부는 사목활동 강화에 주력하는 한편 노후된 성당 보수공사에 착수, 성당 및 부속건물을 전면 보수하였다. 1980년에는 사제관을 신축하고, 1981년 부활절을 기하여 의정부 4동 본당을 신설, 분리 독립시킴으로써 이 본당명칭은 의정부 2동 본당으로 바뀌었다. 이 본당의 주보는 성모성심, 신자수는 2,116명(1983년 현재)이며, 경내에 성가수녀회 수녀원과 유치원이 있다.

[참고 : 의정부본당은 의정부2동본당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2004년 6월 2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새로 신설된 의정부교구 주교좌본당이 된 후 의정부 주교좌본당으로 명칭이 다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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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전수도회 [한] 儀典修道會 [라] canonici regulares [영] canons regular

사제들로 구성되어 전례생활을 주목적으로 하여 고유한 회칙에 따라 공동생활을 하는 수도회, 중세에서 발달한 성대서원수도회의 한 형태이다. 대성당에서 공주(共住)하는 사제들에게 공동의 회칙에 따라 생활하며 사유재산을 버릴 것을 권유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정신에 따라 11세기 후반부터 12세기초에 대주교좌 성당을 중심으로 널리 조직되었다. 중세기에 가장 큰 의전수도회로는 성 아우구스티노 의전수도회(Canonici Regulares St. Augustini)와 프레몬트레회(Praemontratenses) 등이 있는데 중세가 끝나면서 쇠퇴한 다른 의전수도회들과는 달리 현재까지 많은 회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현대에 와서 전례생활 외에 다방면의 교육과 사목, 사회사업 등에 종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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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전사제단 [한] 儀典司祭團 [라] chapter of canons

주교좌(主敎座) 소속이거나 단체 소속이거나 주교좌 성당이나 단체 성당에서 좀 더 장엄한 전례예식을 수행하기 위한 사제단체이다. 의전사제단은 그밖에 법이나 교구장주교에 의해 위임된 임무도 수행해야 하며 업무와 집회, 업무의 유효성이나 합법성에 요구되는 조건, 보수, 복식 등을 정한 정관을 갖는다. 이 정관은 교구장 주교의 인준을 받아야 하며 그의 승인이 없는 한 개정되거나 폐지될 수 없다. 새 교회법은 의전사제단을 사목구에 결부시키지 않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사목구 성당이면서 동시에 의전사제단 성당인 경우에는 의전사제단과 상관없이 사목구주임이 지명되어 법규정에 따른 고유한 직무와 권한을 행사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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