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한] 自由 [라] libertas [영] freedom

1. 자유라는 낱말은 동서(東西)를 막론하고 아득한 옛날부터 일상언어로 매우 다의적(多義的)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 말은 시대와 장소와 분야에 따라, 특히 철학자들에 의해서 많은 개념의 변천을 가져왔다. 이 낱말은 남에게 구속이나 강제를 받지 아니하고, 그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한다는, ‘∼로부터의 자유’라는 소극적인 의미로부터, 마음대로 ‘∼을 한다’는 선택과 결단과 같은, 적극적인 의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동양에서는, 두보(杜甫)가 ‘송객봉춘가자유’(送客逢春可自由)라고 읊은 싯귀에서 이 자유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데, 이 말은 장해가 없는 상태, 즉 마음대로인 상태라는 뜻으로 소극적으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거주 · 언론 · 집회 · 결사 · 신교(信敎) · 양심의 자유 등과 같은 법률적 의미와 인간의 본질로서의 기본자유에 대한 철학적 해석은 서양에서 주로 논의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선 서양문화가, 특히 천주교가 전래되면서 자유에 대한 생각이 고취되기 시작하였다. 자유는 한 때, 일제(日帝)시대와 특히 광복 직후엔, 방종과 비슷한 뜻으로 오해되기도 하였다. 아무튼 동양고전에선 자유의 본질이나 의의에 대하여 학자들이 논한 것을 찾아볼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동양인의 결정론적인, 짙은 운명론이나 자연관과 관련이 깊은 것 같다. 자유는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에서는 구체적 소극적인 의미로 사용되며, 정치학 · 법학 · 경제학 · 철학 · 신학에서는 대체로 추상적 관념적으로, 때로는 적극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철학에서는 자유는 바로 자유의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며, 윤리학의 근본문제로 다루어지며, 최근엔 인간학(人間學)에서 이를 깊이 다루고 있다.

2. 자유의 개념은 철학사 전반에 걸쳐서 찾아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게 논구되어 있다. 이를 세 가지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자유는 인간이 그의 환경과의 표면적 관계와 관련되며, 그가 원하는 것을 하는 데 있어서 소극적으로 할 수 있는 것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자유는 자기 자신과 자기의 행동과의 인간의 특정한 선천적 또는 유전적 관계를 의미한다. 인간의 행동은 그 관계에 의하여 무의도적인 행동과 구별된다. 즉 자유는 특별한 의미에서 의욕할 수 있는 것으로 정의내려진다. 셋째, 자유는 인간학의 기본이 되며, 인간 자신이 달리 못하고 꼭 그렇게만 의욕하는 것의 원천이 된다. 즉 자유는 자유의지이며, 의도적 자유이거나 초월적 자유이다.

서양의 고대철학에서는, 자유란 자유가 없는 노예에 대해서 자유인이 누리는 신분을 의미했으며, 또 운명이나 자연의 인과법칙, 외부로부터의 강제에 의한 구속을 받지 않는, 외적 자유를 주로 문제삼았다. 교부철학시대에서는 자유는 그리스철학의 전통과 성서의 가르침과의 조정에 의해 해석되었다. 구약성서는 야훼 하느님의 완전한 자유와 해방자로서의 하느님에 관해서 언급할 뿐, 인간의 자유를 문제삼지 않았다. 그러나 계명(誡命), 죄와 벌, 회개, 회두, 순명, 타락 등의 언급은 이미 인간의 결단의 자유, 자유의 경험을 전제로 하고 있다. 신약성서는, 구약성서의 자유에 대한 이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하느님의 자유의 역사(役事)가 예수에 의해서 완성된다고 말하며, 자유는 종말론의 대상이 된다. 자유에 관한 그리스사상이 신구약성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분명하게 입증되지 못하고 있다. 단지 성서에서는 자유에 대하여 언급할 때, 철학적인 의미를 담은 autezousion, ezousia나, 자유의 적극적 의미를 담은 ekon, ekou sios가 드물게 사용되고, 주로 자유의 소극적 의미를 담은 eleutheria, uleutheros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초대 그리스도교 사상은 자유를 두 개의 큰 흐름으로 나누어 놓았으며 이 두 전통은 전 중세사상을 규정해 놓았다. 그 하나는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제나(Johanes Scotus Eriugena)로부터 니콜라오 쿠사누스(Nikolaus von Kusanus)에 이르는 데, 동방그리스도 교회의 신비신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여기서는 자유란 하느님의 인내에 의하여 ‘신적인 것’의 조건과 충족을 의미한다. 다른 흐름은 아우구스티노(Augustinus)를 정점으로 하여 윌리엄 오캄(William Ockam)에까지, 종내에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등의 개신교에 이르는데, 자연과 은총의 지양할 수 없는 변증법에 있어서의 근본 긴장을 자유로 보았다.

중세에서는 대체로 교부들의 정신적 유산의 영향을 받아, 신학적 관점에서 자유가 논의되었다. 스콜라 철학 말기에 들어와서 점차적으로 철학적 윤리학적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자유문제가 논의되었으나, 신학의 확고한 주장의 제약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개별적인 면에선 상이한 점들이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신학의 확정을 준수하였다. 그 중요한 주장은, ① 자유의 개념을 발전시키는 자는 인간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천사, 성인에게까지 해당되며, ② 그리스도가 죄를 지을 수 없음은 그가 완전한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③ 인간에겐 선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지며 악을 행할 자유도 주어진다. ④ 의지의 자유란 이성의 올바른 실행에 대한 선택행위의 필연적 구속으로 말미암아 지양되지는 않는다. ⑤ 하느님 자신이 선택의 자유의 원천이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외부의 강요로부터의 자유’(libertas a coactione)와 ‘내면적 필연성으로부터의 자유’(libertas a neccssitate)를 구별하고, 전자를 인간의 자유의 본질로 보았다. 자유의 문제에서도 이성이 우위에 있는지, 아니면 의지가 우위에 있는지 하는 논쟁이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 사이에서 벌어졌었다.

르네상스시대에 들어와서 휴머니즘은 자유를 인간의 자기원인성으로, 또 인간의 인격성의 발전이 방해되지 않는 상태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주의는 자연과학이 발달하면서 자연의 인과율에 대한 관찰이 점점 깊어지게 되자 점차로 퇴색하였다. 또한 칼빈(Calvin)주의자들의 열광적인 예정설은 더욱 인간의 창조적 자유와 의도적 자유에 찬물을 끼얹었다.

근세의 독일철학자, 예컨대 독일 관념론자, 생철학자들은 대체로 자유를 인간의 본질에 상응하는 것으로 보고, 자유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라이프니츠(Leibniz)는 “자유는 이성에 의해서 많이 다루어질수록 점점 더 커지고, 열정(감정)에 의해서 다루어질수록 부자유가 더욱 더 커진다”고 말하였다. 칸트(Kant)는 17∼18세기의 자유의 논쟁을 일단 이론적으로 결합시켰다. 그는 심리적 자유 또는 비교적 자유와 선험적 자유 또는 우주론적 오성(悟性)의 자유를 구분하였다. 그는 감성의 충동욕구로부터의 의도적 독립을 소극적 자유로, 순수 이성의 능력으로서의 그 자체로 실천적인 것을 적극적 자유로 보았다. 칸트나 피히테(Fichte)에게서는 자유는 도덕법칙의 도구로 된다. 선험적 관념론의 체계에서는 자의로서의 선험적 자유는 도덕법칙과 마찬가지로 절대의지의 현상이다. 독일 관념론에서는 자유의 문제의 해결은 결정론과 비(非)결정론의 피안에 놓여있다. “행위가 존재의 내적 필연성에 따른다면, 이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근원적 행위이며, 따라서 자유롭다”고 셸링(Schelling)은 말하였다. 결국 관념론의 자유개념은 헤겔(Hegel)에 이르기까지 형식적 개념에 불과하였다.

이와 같은 형식적 자유의 개념을 반박하면서 쇼펜하워(Schopenhauer)와 니체(Nietzsche)는 행동의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니체는 도덕의 전 역사는 자유의지의 오류에 근거한다고까지 말하였다. 포이에르바하(Feuerbach)는 “자유의지란 공허한 동어반복에 불과하다”고까지 말하였다. 영국의 경험론자들은 자유의 개념을 행위의 자유로 환원시켜 버렸다. 그들에게선 자유는 바로 외부의 강제로부터 벗어나는 소극적 자유를 의미할 뿐인데, 홉즈(Hobbes)는 육체가 움직일 때 물리적 제약(압력)을 받지 않는 것을 자유라고 했으며, “인간은 더욱 넓은 공간에서 활동할 수 있으면 있을수록 점점 더 자유롭다”고 말하였다. 홉즈 뿐만 아니라 영국의 경험론자들은 정치적인 면에서만 자유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스피노자(Spinoza)도 자유란 외부의 강제로부터의 자유로 이해했는데, 엄격히 말해서 하느님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그에 의하면, 하느님은 그 자신의 본질의 필연성에 의해서만 존재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하느님은 자유롭고 인간은 외부에서 오는 충동이나 욕망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부자유롭다. 그러나 불분명한 관념이 분명한 관념, 즉 합리적인 하느님 사랑으로 인도되면, 인간도 스스로 자유로울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자유를 하나의 허구(虛構)로 보고 인간은 경제적 사정과 계급투쟁이 큰 역할을 하는 사회의 상황과 충동의 제약을 받으면서 행동하고 생각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이데거(Heidegger)와 사르트르(Sartre)에게서는 자유는 철학의 근본문제로 되는데, 자유는 인간의 어떤 특징이 아니라, 모든 인간적인 본성에 선행하는, ‘실존’과 같은 의미를 가진 것이다. 하이데거는 존재자가 탈존(脫存)하는, 숨은 상태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 현존재가 본래적인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을 자유라고 보았다. 아놀드 겔렌(Arnold Gehlen)은 실제적 자유와 자유문제의 해결은 반복되는 필연성과 자기 자신을 자유의지로 긍정하면서 사변(思辨)을 지양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나의 의지의 규정은 나의 본질을 인정하는 것과 꼭 같은 것이며, “반성에 대한 반성이야말로 자유 그 자체이다”라고도 말하였다. 최근엔 인간학자들이 자유를 인간의 근본문제로 보고 이를 해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막스 뮐러(Max Muller)는 그의 저서 ≪철학적 인간학≫에서 자유를 인간의 본질로 보고, 이를 설명하는 데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秦敎勳)

[참고문헌] O. Michel, Der antike und christliche Freihe it-Begriff, Universitas I, pp.1-17, 1946 / J. Laporte, La conscience de la liberte, Paris 1947 / B. Willms, Die Totale Freiheit, 1967 / H.J. Sandkuhler, Freiheit und Wirklichkeit, 1968 / J. Davydow, Freiheit und Entfremdung bei Marx, 1964 / I. Fetscher, Die Freiheit im Lichte des Marxismus-Lennismus, 1959 / R. Dunayevskaya, Marxism und freedom, New York 1958 / J. Hommes, Die Krise der Freiheit(Hegel-Marx-Heidegger), 1958 / W. Windelband, Uber Willens-Freiheit, 1904 / A. Messer, Das Problem der Willens-Freiheit, 1911 / J. Rehmke, Die Willens-Freiheit, 1911 / H. Driesch, Das Problem der Freiheit, 1917 / M. Planck, Kausalgesetz und Willens-Freiheit, 1923 / F. Medicus, Die Freiheit des Willens und ihre Grenzen, 1926 / H. Reiner, Freiheit, Wollen und Aktivitat. Phanomenol. Untersuch. in Richtung ouf das Problem des Williens-Freiheit, 1927 / G. Siewerth, Die Freiheit und das Gute, 1959 / R. Berlinger, Das Werk der Freiheit, 1959 / J. de Finance, Existence et librte, Paris, Lyon 1955 M. Polanyi, The logic of the liberty, Chicago 1951 / Ch. Bay, The structure of freedom, Stanfod, Calif 1958 / S. Hook, The paradoxes of freedom, Los Angeles 1962 / M. Schlick, Problems of ethics, Englewood Cliffs, N.J. 1939 / M.J. Adler, The idea of freedom 1, 2, New York 1958, 1959 / M. Horkheimer, Um die Freiheit, 1962 / A.V. Spakovsky, Freedom, deteminism, indeterminism, Den Haag 1963 / R. Garaudy, Die Freiheit als philos und hist. Kategorie, dtsch. 1959 / G. Vennes, Inconscient freudien et problemes de liberte, TroisRivieres 1960 / T. Foldesi, The Problem of free will, LOndon 1958 / V.J. Bourke, Will in the Western thought. Anhist-crit. survey, New York 1964 / P. Ricoeur, Philos. de lavolonte 1: Le volontaire et I’involontaire, Paris 1963 / H. Daudin, La liberte de la volonte. Signification des doctrines classiques, Paris 1950 / Y. Simon, Traite du libre arbeitre, Paris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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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 [한] 自慰 [라] masturbatio [영] masturbation

스스로 성기를 자극하여 극치감을 느끼는 행위를 말하며 이는 외부적 수단에 의한 신체적 자위와 성적 충동을 일으키는 그림이나 상상에 의한 정신적 자위를 포함한다. 성서에는 자위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는 죄라고 하였다(1고린 6:9). 교회의 가르침도 자위를 금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성기능은 자녀의 출산과 부부애의 증진을 위한 수단으로서 사용하도록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이므로, 자위는 성기능이 지니는 의미와 목적을 벗어나는 반자연적 행위이며 따라서 하느님의 뜻에 거슬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자위의 원인은 내성적인 성격, 정서적인 불안 등 다양하며 병적인 경우는 심리학자나 의사의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활양식을 변화시키고 원만한 인간관계 속에 적극적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자위의 관심과 기회를 피할 수 있다. 아울러 기도생활에 열심하고 의연한 의지와 자기신뢰를 잃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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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한] 資源 [영] resources [독] Rohstoffquellen [관련] 자연

좁은 뜻으로는 자연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만을 말하고, 넓은 뜻으로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생산에 이용되는 것을 자원이라고 한다. 식량, 원재료, 에너지 등은 생황이나 생산 속에서 소비되는 갖가지 물질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물질들은 많건 적건 간에 사람의 노동에 의하여 생산된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생산되는 동안 가해졌던 사람의 노동을 한 꺼풀 한 꺼풀 제거하여, 그 소재의 원천을 추적해 가면 마침내 노동에 의한 생산물이 아닌 것, 즉 자연 그 자체인 것으로 귀착하게 된다. 자원 또는 자연자원(自然資源)이란, 이처럼 자연에 의하여 주어진 유용물로서, 어떤 형태로든 사람의 노동이 부가됨에 따라 생산력의 한 요소로 될 수 있는 것들을 지칭한다.

자원에는 토지, 삼림, 물, 매장광물, 수산생물 등이 있으며 이것들이 지구상에 얼마나 분포되어 있는가 하는 양적 질적 상태는, 본디 자연적인 부존(賦存)에 의하여 규정지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관점은 자원이라는 것이 단순한 자연의 일부가 아니고, 역사의 발전단계에 따라 사회적으로 의미를 부여받는 그러한 자연의 일부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연의 일부를 자원으로서 평가할 경우, 당연히 노동과정에 있어서의 유용성(有用性)의 견지에서 선택을 하게 되는데, 이때 선택 기준은 기술의 발전수준 여하에 따라 좌우되는 탓으로, 자원이 외연적인 범위라든지, 자원으로서의 유용성의 정도 즉 자원적 가치는, 기술의 진보 발전에 다라 변화해 가는 매우 동태적(動態的)이며 상대적인 성격을 갖는다고 본다. 이러한 예로는 자원 매장량의 비(非)고정성이나 자원의 전화 또는 대체 가능성들의 문제가 낄 수 있다.

자원적 가치가 기술의 진보 발전에 따라 변화하는 적히라고 앞서 지적했는데, 이 기술의 진보 발전이야말로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며 동시에, 그 자신이 일정한 역사적 생산관계의 소산이기도 하다. 생산력의 수준이 낮은 단계에서는, 자연적인 부존이 많고 적음에 따라 생산력 발전을 제약하는 요인이 커지지만, 기술의 진보 발전으로 인하여 생산에 있어서의 자연적인 제약의 비중은 낮아지며, 아울러 생산에 대하여 자연이 담당하는 기증에도 양적 질적인 변화가 생긴다. 자원의 사회경제적인 성격이 일정한 생산관계에 대응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여기서 이른바 자원의 계급성 문제가 등장한다.

계급사회 즉 사유재산이 인정되는 사회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자원은 사적 소유에 독점되어, 자원의 이용 개발은 지배계급의 이해에 따라 좌우되게 마련이다. 본래 모든 인류, 모든 국민의 복지를 위하여 쓰여져야 할 자원의 이용 개발이, 지배자에 의한 부의 축적 또는 계급 지배의 수단으로 쓰인다. 더구나 자원의 개발이 전적으로 자본의 이윤추구 원칙 아래서 이루어지는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자본에 대하여 사적인 이윤을 낳지 않는 자원개발은 도외시되게 마련이며, 또한 기술의 채용에 있어서도, 자본에 최대한의 이윤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만이 추구되어서, 자원 자체가 지닌 자연적인 법칙성이나, 그 속성에 맞는 합리적인 개발방식은 무시되거나 혹은 왜곡된다. 이런 결과 때로는 자원의 혹사, 낭비, 파괴가 빠른 속도로 촉진되게 되며, 이른바 남획(濫獲), 남굴(濫掘), 공해 문제의 발생을 가져온다. 1, 2차 세계대전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자원의 쟁탈이 바로 전쟁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 당시 일본이나 독일에서 사용했던 ‘자원’이라는 용어의 개념은, ‘군수’(軍需)자원 또는 ‘인적’(人的)자원이라는 말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자원 본래의 뜻에서 벗어나, 식민지 지배에서 얻어내는 초과이윤의 원천으로서 자원, 혹은 군사적 · 전략적 가치가 높은 자원을 놓고서의 강대국 사이의 재분할을 위한 쟁탈전의 슬로건의 하나로 쓰여졌다. 자본주의의 테두리와 상대적으로 대립되는, 즉 국민의 자원을 지배계급의 사적인 독점에서 해방하여 이른바 국민적 지지 아래서 하는 소위 계획적이고 합리적인 자연개발은 사회주의 여러 나라에서 대규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게다가 개발 도상에 있는 후진국에 있어서도 자원개발이 과감히 추진되어 나가는 중이다.

사목헌장은 “현대에 와서 인간은 특히 과학과 기술이 도움을 받아 그 지배권을 거의 자연계 전체에 확장했고 또 계속 확장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기술의 발전이 인간향상에 물질적 바탕은 마련할 수 있지만 그 힘만으로 즉 자원개발만으로 인간 향상을 실현시킬 수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가톨릭 교회는 “큰 땅을 채우고 땅을 복종시켜라”는 성경말씀을 통하여 모든 자원은 모든 사람이 이용하기 위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에 어떤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이 자원을 독점하는 것을 배격하며, 모든 자원은 정의에 입각하여 공정하게 제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자연

[참고문헌] 小出博編, 日本資源讀本, 東洋經濟新報社, 1958 / 바오로 6세, 민족들의 발전 촉진에 관한 회칙, 1967 / 바오로 6세, 세계 안의 정의,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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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 [한] 自然主義 [영] naturalism

자연 이외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고, 자연을 모든 존재와 가치의 기준이고 원리라는 입장. 자연은 상호관련된 체계를 가지고 스스로 존재하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것을 가지고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이러한 입장은 철학, 윤리학, 문학에서 나타나며 어떤 의미에서 자연과학의 방법론이기도 하다. ① 철학에서 자연주의는 자연을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르다. 고대 스토아학파의 법신론적 유물론은 보편적인 세계이성(logos)이 자연에 내재해 자연을 합목적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8세기의 기계적 유물론자들은 자연을 시공적(時空的)으로 무한한 기계론적 인과율에 의해 지배되는 체계라고 보았다.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이르면 자연을 상하의 계층으로 된 상호 연관된 물질의 운동 형태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② 논리학에서 자연주의란 “쾌락을 가져오는 것”이 선하고 올바른 것인가, “개인과 집단의 자기 보존에 유익한 것”이 선하고 올바른 것인가, “개인과 집단의 자기보존에 유익한 것”이 선하고 올바른 것인가와 같은 윤리적 가치개념을 자연적 사실에 따라 정의하는 유리학설. 대표적인 것으로는 쾌락주의, 공리주의, 진화론적 윤리설 등이 있지만 오늘날에는 사실에서 가치와 당위를 추출하려는 입장을 말한다. ③ 문학에서는 실증주의, 진화론 등의 영향을 받은 19세기 후반에 문학의 조류를 가리키며 졸라(E. Zola)가 대표적이다. 현실을 이상화하여 관념에 빠지는 것을 배척하고 인간생활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바른 문학인의 자세라는 주장. 그러나 자연주의 문학은 인간의 동물적 측면과 인간의 한경예속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환경의 변화에 대한 인간의 작용, 이상으로 나아가려는 인간의 노력을 무시한 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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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종교 [한] 自然宗敎 [영] natural religion [독] naturliche Religion

계시종교에 대비되는 말로 인간 이성으로 발견할 수 있는 신에 대한 의무를 총칭하여 자연종교라 한다. 계몽시대의 합리주의자들에 의해 자연종교라는 것이 주장되었는데, 이들에 의하면 종교의 본질이란 기성종교의 교의 · 신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나 경험에서 종교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자연 종교란 종교사나 비교종교학 등 일반 종교연구 분야에서 이야기되는 자연적인 종교(nature religion)[원시인이나 미개인이 신봉하였던 원시종교]와는 구분된다. 자연중교에 대한 탐구는 ① 종교개혁 이후 격렬하게 전개된 가톨릭과 개신교의 논쟁과 투쟁으로 그리스도교의 권위가 동요되기 시작하고, ② 과학의 발달과 교역의 확대로 그리스도교의 세계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한 17~18세기의 지적인 상황을 반영하여 나타났다. 당시의 철학자나 사상가, 과학자들은 “종교의 진리와 본질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기성종교의 권위에 도전하였다.

유리주의자(唯理主義者) 프랑스의 보댕(J. Bodin)이나 영국의 허버트(E. Herbert of Cherbury)에 의해 전개되어 영국의 로크(J. Locke) 등에 의해 이신론(理神論)으로 발전된 자연 종교는 “종교란 모든 인간에게 선천적인 것이고, 따라서 특별한 계시라는 것은 소용없을 뿐 아니라 해로운 것”이라 하여 계시종교에 반대하고, 최고신(最高神)의 존재, 영생(永生)에 대한 희망, 상선벌악(賞善罰惡)에 대한 신앙 등이 참된 종교의 본질적인 핵심이라 하였다. 틴달(Tindal) 같은 이는 그리스도교는 이 핵심으로 축소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톨란드(J. Toland), 뉴톤(I. Newton), 볼테르(Voltaire) 등의 계몽사상가들에 의해 계승되었고, 루소(J.J. Rousseau)는 모든 올바르고 참된 종교는 선과 미에 대한 사랑에서 성립된다고 주장하여 그리스도도, 계시도, 구속(救贖)도 없는 종교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교회는 이자연종교 사상을 이단으로 배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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