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2 [라] absolutio [한] 赦罪 [영] absolution [관련] 고해성사

고해성사에서 하느님께 죄의 용서를 받고 교회와 화해하는 것. 사죄는 적극적 의미로 성사집전 사제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이름으로 죄의 용서를 베푸는 행위이며, 소극적으로는 성사의 효과로 주어지는 죄의 용서이다. 소극적 의미에서의 사죄에는 사제의 사죄권 행사와 참회자의 참회행위가 전제되어 있다. 적극적 의미의 사죄를 일컬어 성사적(sacramentalis) 사죄라 부르는 것이 보통이며 이는 사제적(sacerdotalis) 사죄와 전혀 같은 개념이 아니다. 양자를 동일시하는 경향은 참회자의 참회행위를 과소평가할 위험을 초래한다. 성사적 사죄는 개별 고백한 참회자에게 개별적으로 사죄를 베풀지만 공동참회를 한 신자에게 공동사죄를 베풀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적극적 의미의 사죄는 다양한 형태를 띠었다. 초대교회 때는 참회자들이 공동으로 참회를 하였는데 참회를 마친 신자들에게 주교가 교회와의 화해를 윤허(영성체)함으로써 공적으로 사죄의 뜻을 표시하였고 아직 일정한 형식을 갖춘 사죄경은 없었다. 중세에 이르러 탄원적인 형식의 사죄경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사죄권을 갖는 사제가 하느님께 죄의 용서를 기도하는 형식이었다. 토마스에 의하면, 사제의 사죄는 고해성사의 형상(forma)이요 참회자의 통회와 고백과 보속은 고해성사의 표지(signum)를 이루는 요소이며 양자가 결합하여 죄의 용서라는 효과를 낸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스코투스에 의하면, 고해성사의 표지를 이루는 요소는 사제의 사죄뿐이고 참회자의 통회, 고백 등은 성사의 구성요소가 아니며 오직 성사를 받기 위해 필요한 지향일 뿐이라 한다. 양자의 주장은 아직도 쟁점의 하나가 되어 있다.

스콜라 철학의 융성기에 성사 이론이 발전한 결과 종래의 탄원 형식의 사죄경은 “나는 당신의 죄를 사합니다”라는 단언 형식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형식은 사제적 사죄의 직접 효과가 참회자를 교회와 화해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 주지 않는다는 흠을 지닌다. 오늘날 고해성사의 역사와 구조에 대한 연구 결과, 사죄의 말씀은 사죄권을 행사하는 사제의 법적 선언이며, 이로써 통회하는 참회자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화해시키고 하느님과 친교를 회복시킨다고 보아 사죄의 교회적 차원을 강조하는 경향이다. (⇒) 고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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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죄1 [한] 死罪 [라] peccatum mortale [영] mortal sin

죽음에 이르는 죄. 교회 전통은 죄를 사죄와 경죄(輕罪)로 구별하여 왔다. 이는 성서가 중죄(重罪)의 개념을 즉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게 하는 죄들(갈라 5:19), 마땅히 죽어야 하는 죄들(로마 1:29), 암흑에 이르는 죄들(2고린 6:15)과 같이 구원의 부재(不在) 상태를 초래하는 죄와, 인간의 나약함과 부족에서 이루어지는 결점들로서 신앙인들도 범하는 일상적인 죄로 구분한 사실에 근거한다(1요한 1:8-2:2, 5:16-17). 교회의 교도권은 이와 같은 죄의 구별을 정식으로 정의(定義)한 일은 없으나 스콜라 학자들의 용례에 따라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은 사실이다. 즉 트리엔트 공의회는 고해성사 때 ‘중한 죄들을’ 모두 다 고백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죄의 종류를 변하게 하는 상황도 말해야 한다고 했으며 경죄도 함께 고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 것이다(제14회기 5장).

사죄와 경죄의 구별은 양이나 정도의 구별이 아니라 본질상의 구분이다. 흔히 죄의 종류를 병(病)과 죽음에 비유하여 구별한다. 사죄의 본질은 생명과 은혜의 하느님을 배역(背逆)하는 것이다. 사죄는 인간이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느님을 알면서도 완전한 자유의지로 그 하느님을 거역하고 피조물이나 자기 자신에 집착하여 생활하는 것으로 생명의 하느님과 이웃 인간을 완전히 이반(離反)한 행위이다. 인간이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느님을 알면서 양심을 거슬려 완전한 자유의사로 하느님과 그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 자신이나 피조물에 집착하는 행동을 두고 하는 말로 생명의 하느님과 이웃을 완전히 이반한 태도나 마음을 의미한다(예레 2:13). 이에 대하여 경죄는 하느님의 사랑을 저버리지는 않았으나 불성실한 응답이라 할 수 있다.

사죄와 경죄는 이와 같이 본질적인 차이가 있으나 이를 윤리생활에서 실제로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채워져야 한다. 즉 하느님의 뜻(계명)을 분명히 알고(인간적 인식) 완전한 자유의지로 동의하여 행동하는 것이다. 사죄와 경죄의 구별은 위의 두 조건에 계명의 중대성 여하로 결정된다. 사죄의 결과로는 하느님의 은혜인 초자연적 생명을 잃게 되고 그 상태에서 죽는다면 구원이 없는, 즉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회개와 속죄가 필요하며 특히 사죄를 범한 사람은 지체하지 말고 회개하고 고해성사로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받아 구원을 얻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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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종약의 [한] 四終略意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 스페인 출신의 아우구스티노회 선교사 오르티스(Ortiz, 중국명 白多瑪)의 저술로 1705년 4권 1책으로 간행되었다. 내용은 4말(四末)[죽음, 심판, 천당, 지옥]에 대한 설명으로, 제1권에서는 ‘사후지설'(死後之說)이라는 제목으로 죽음에 대해, 제2권에서는 ‘사심판지설'(私審判之說)과 ‘공심판지설'(公審判之說)이라는 제목으로 사심판과 공심판에 대해, 제3권에서는 ‘지옥지설'(地獄之說)이라는 제목으로 지옥에 대해, 제4권에서는 ‘천당지설'(天堂之說)이라는 제목으로 천당에 대해 각각 설명하고 있고 각 권의 첫 부분에는 내용을 암시하는 그림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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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평의회 [한] 司祭評議會 [라] consilium presbyterale

현대사회에 적합한 사목행정을 구현하기 위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 신설된 제도인데 주교를 도와 교구행정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사제단 대표들로 구성된 협의회 또는 원로회이다. 단순한 자문기관으로서 주교는 사목상 필요한 것과 교구의 이익에 관하여 의견을 청취하고 자문하고 협의하여야 한다. 교구 내에서 사목이나 사도직에 종사하는 수도회 사제도 평의회에 참여할 수 있으며, 교구장이 궐위하면 사제평의회는 해산된다. 단, 교구청이 인정하는 특수한 경우에 한하여 주교좌 참사회장(vicarius capitularis)이나 교구 관리자(administrator apostolicus)가 평의회를 인정할 수 있다. 평의회의 구성은 의무적으로 각 교구에서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사제들의 대의기관(代議機關)이기도 하지만 결정권은 갖고 있지 못하다. 교구참사회는 개인적으로 임명되어 구성된 자문기구인 반면, 평의회는 사제들의 대의기구인 동시에 자문기관으로서 교회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두 자문기구는 별개의 기구로 존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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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직 [한] 司祭職 [라] presbyteratus, sacerdotium [영] presbyterate, priesthood

1. 일반적 이해 : 사제 혹 사제직은 하나의 종교적이며 공적으로 마련된 사회의 제도로서 인간과 절대자 혹은 초월자 즉 신과의 관계를 유지하거나 회복시키고 인간에게 축복과 번영을 빌어주고 용서와 자비를 기원하는 일이 맡고 있다. 그러므로 이는 한 개인이 임의로 취하거나 선정하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절차와 의식을 통해서 마련된다. 그럼으로 해서 사제직을 이행할 수 있는 한 사제가 태어나게 마련이다. 비록 민족과 문화와 풍습에 따라서 (예컨대 유목민, 농경사회, 수렵인종 등) 형식과 지칭이 다를 수도 있으나 사제직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와 임무는 유사하고 공통적인 것이 많다. 사제직은 임명으로만 수행할 수 있으며, 이 사제직 수행은 일정한 규정에 의한 의식(儀式)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이를 수행하는 사제들은 그 사회나 공동체 안에서 그 기능을 수행하는 정도에 따라서 영예와 권능을 누린다.

① 사제직의 임명 : 사제직은 그 성격상 신과 인간과의 중개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엄격한 양식과 과정을 거쳐야만 임무를 받게 된다. 그 과정이란 일반적으로 불림과 수락과 의식을 거쳐서 성립된다. 첫째, 사제직에 임하기 위하여는 불림이 있어야 한다. 누가 사제직에 불린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 하나는 기존사회에 있어 사제가문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세습제도로서 사제의 혈통을 타고나지 않으면 사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 양식은 신으로부터 직접 불림을 받는 것이다. 이는 초월적 어떤 힘을 체험함으로써 성립되는데 신탁(神託)이나 꿈이나 탈혼(脫魂) 등의 현상이 수반된다. 먼저의 양식은 보수적이며 인간사회의 계급의식이 강하고, 후자의 경우는 파격적이고 신통력의 체험이나 초능력의 보유의 경험으로 개인의 권위가 크고 혁명적일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유교와 불교의 의식이 다르고 무속의 의식이 다르다. 유교가 제도적이며 가부장제도(家父長制度)에 의존하고 있다면, 불교는 자원(自願)과 소명의식이 강하고, 무속에서도 세습무와 강신무(降神巫)가 공존함을 볼 수 있다. 둘째, 일정한 의식을 거쳐야 한다. 누가 사제직에 불렸다 하더라도 사제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직위수여의식(職位授與儀式)을 치러야 한다. 이때에 본인의 수락이 따른다. 즉 사제직의 의미를 알고 그 직책이 요구하는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서약과 함께 그 직책이 수여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볼 때 마술, 의술, 점성술 등과는 완연히 구별되는 직책임을 알 수 있다. 또 예언직과도 구별된다. 그러나 문화와 풍습에 따라서는 왕직(王職)과 무당(巫堂)과는 유사한 현상이 많고 일치되는 점도 있다. 예컨대 신에게 제사를 바친다던가, 신과 인간 사이를 연결시켜 주고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것 등이다. 일정한 의식을 거쳐 사제직을 수행할 수 있게 되면, 그는 그 때부터 서민과는 구별되는 특수 계층에 속하게 되고, 그 직위가 보장하는 영예와 권리를 누리게 된다.

② 사제직의 수행 : 사제직이 신과 인간과의 중재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그 임무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신으로부터 불린 자답게 신탁으로써 신의 뜻을 전하거나 신의 이름으로 물건이나 동물이나 사람을 축복하고 교의가 포함된 경전을 읽고 해석하며 가르친다. 둘째, 인간으로부터 선택되었거나 선발된 사람으로서 인간의 고뇌와 고통을 신에게 전달하고 인간을 대표하여 예배하여 제사드리고 찬미와 감사, 청원과 속죄의 제사와 기원을 바친다. 이 의식은 문화와 풍습에 따라서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많은 경우 제물과 기도문과 노래 그리고 일정한 상징적 행위들이 수반된다. 이는 제사형식을 갖추게 되고 이것이 대표적이므로 사제는 제사장 혹은 제관이라고도 불린다. 셋째, 사제직을 올바로 수행하기 위한 엄격한 수련과 생활이 뒤따른다. 사제는 의식의 규정들을 익혀야 하고 그 사회가 요청하는 생활을 하여야 하며, 제단과 성전과 경전을 보관할 책임 외에 제구(祭具)들을 잘 다루고 보존해야 한다.

③ 사제직과 왕직 : 사제직과 왕직이 결부되는 경우도 있고, 분리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이 둘은 상호조화를 이루며 그들이 속한 공동체에서 충실히 봉사할 수 있기도 하고, 압제와 폭군 역할을 하기도 하며, 특히 분립되어 있을 때에는 긴장관계가 생기고 월권과 압제에 대하여 사제직이 견제 역할을 한다. 이러한 때에는 예언직의 특성을 갖게 된다.

2. 그리스도교 사제직 : 위에서 본 것과 같은 사제직은 그리스도 교회에 없다고 할 수 도 있다. 그러나 인류가 공감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제직은 그리스도교 안에서 완전하고 완성된 형태로 발견되었다. 그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이다.

①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 :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대하여는 용어상으로는 히브리서에서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으로 보아서는 신약성서의 사제직에 관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 이미 예표로 제시되었던 멜키세덱(창세 14:18 이하)과 아론(레위 8장)의 예를 따라 대사제직에 오르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께 부름을 받고 인간을 위하여 한 번이자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며 하느님께 나아갔다(히브 5:1-6, 8:3, 9:28, 10:11). 이로써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키셨다. 그러나 그의 사제직은 그전까지 있었던 어떤 사제직과도 견줄 수 없이 완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분은 참 사람이시며 참 하느님이시고 그럼으로 해서 인간의 연약성을 충분히 아실뿐 아니라(히브 2:14-18, 4:15, 5:7-10)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영원으로부터 계신 분이기 때문이다(히브 1:2-13, 3:6, 4:14, 5:5, 7:28). 이는 그의 강생의 신비에서 이해되는 것이며 신앙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진리이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이 진리를 받아들이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이룩된 구원에 참여하게 되며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신비체(神秘體)의 지체(肢體)가 되고 그의 사제직에 참여하게 된다.

② 그리스도인의 사제직 :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된 사람은 누구나 그를 머리로 하여 한 몸을 이루게 되며(골로 1:15-20, 에페 1:22, 1고린 15:20, 12:12-31 등), 그의 사제직에 동참하게 된다(1베드 2:9). 이 사제직은 우선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직결되는 종말론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으나(묵시 1:6, 5:10, 20:6), 영신적 제사만이 아니고(로마 12:1) 그리스도의 참 제사인 미사에 참여하고 미사봉헌에 동참하게 된다(Mediator Dei). 그러나 이 사제직은 교회 내의 성사적이며 봉사적 사제직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혼동과 오해는 교회역사 안에 큰 불행을 야기하였다(Tertullianus, Waldes, J. Wyclif, J. Hus, M. Luther 등).

③ 봉사적 사제직 : 이스라엘 백성에게 특별히 봉사하기 위해 사제직이 마련되었었다(출애 28-31, 레위 8).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으므로 이 사제직은 끝났고, 새롭고 완전한 사제직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마련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사제직을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에게 위임하였으며, 역사 안에서 주교와 사제들을 통해서 계승되고 있다. 이 사제직은 교회의 부름을 받아 주교들의 안수(按手)로 서품되며, 일반 신도들과는 구별되는 직분을 받고 봉사의 사명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교회헌장 3장). 이 사제직의 특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제헌을 재현하는 미사성제의 봉헌으로 나타나며 하느님의 이름으로 축성과 강복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종교에서의 사제직과 다른 것은, 사회적 계층으로서의 특권이 아니고 봉사의 특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는 것이다(요한 13장, 마르 9:33-37). 그리고 바울로 사도의 말과 같이,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모든 이의 종이 될 수 있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는 특전인 것이다(1고린 9:19-22). (崔昌武)

[참고문헌] Priest & Priesthood, in Ency. Religion and Ethics, vol. 10 / G. van der Leeuw, Phanomenologie der Rliegion / G. Widengren, Religionsphanomenologie / 교회헌장 제3장 / 사제교령 / 정하권, 교회론 II / Priester u. Priestertum, in Handbuch theol. Grundbegriffe II, pp.340-350 / W. Kasper, Sein und Sendung des Priesters, in GuL 51, 1978 / LthK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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