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7월에 경성(京城) 교구 청년연합회에서 창간한 월간지. 대구교구 청년연합회에서 창간한 <천주교회보>의 영향을 받아. 당시 청년연합회장이던 박준호(朴準鎬)를 비롯하여 정지용(鄭芝溶), 김교주(金敎周), 이의필(李義弼), 김순석(金順石) 등 젊은 가톨릭 지성인들이 주축이 되어, 문화창달, 생활개선, 종교 도덕의 보급 등을 취지로 하여 창간하였다. 1933년 모든 잡지를 통폐합하여 새로운 청년지를 창간한다는 주교회의의 결정에 따라 그해 5월 자진 폐간 때까지, 만6년 동안 71호가 발간되었다. 크기는 1호에서 6호까지가 30cm×43.8cm, 7호에서부터는 28cm×39.5cm판형의 타블로이드판 4면이었고, 내용은 교리를 주로 하여 소설, 호교, 역사, 문예 등과 칼럼, 가십, 뉴스 등을 통한 사회문제 및 일제에 대한 비판문까지도 취급하였다. 특히 뉴스란에는 서울과 지방교회의 소식, 현황 사진 등을 게재하여, 오늘날 일제하의 1920-1930년대 교회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참고문헌] 조선천주공교회 약사, 1931.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변화지례 [한] 變化之禮 [관련] 미사 성체성사 실체변화

미사성제 때 성찬의 전례 부분에서 집전사제가 성사적인 축성의 말씀으로 빵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피로 변화시키는 예절. (⇒) 미사, 실체변화, 성체성사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변혹치언 [한] 辯惑巵言

개신교를 변박(辨駁)하는 한편 천주교가 진교(眞敎)임을 설명한 책. 1881년 중국인 신부 이체(李杕)가 한문으로 저술한 책인데 우리나라에서 한글로 필사(筆寫)한 것을 볼 수 있지만 필사한 사람과 연도는 알 수 없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변학유독 [한] 辨學遺牘

리치(Matteo Ricci, 1552-1610)가 덕원(德園) 우순희(虞淳熙)와 항주(抗州)의 주굉(祩宏), 연지(蓮池) 불승과 주고받은 서한을 편집한 책. 그 내용은 불교를 배척하고 천주를 존숭해야 한다는 것으로 1609년 북경에서 간행되었다. 이 책에 대해서는 안정복(安鼎福)이 그의 ≪순암선생문집≫(順庵先生文集)에 논급하고 있음에 미뤄보아 이 책이 그가 보았던 시기인 정축년(丁丑年, 1757년) 이전에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권말(卷末)에 서광계(徐光啓)의 부언(附言)까지 붙어 있는 ≪변학유독≫은 단권이며, 후에 ≪천학초함≫ 총서에도 수록되었다.

[참고문헌] L. Pfistet, Notices biographiques et bibliographiques sur les Jesuites de l’ancienne Mission de Chine 1552-1773 Chang-Hai 1932 / 17, 18세기에 傳來된 天主敎書籍, 敎會史硏究 弟3輯, 한국 교회사연구소, 1981.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변신론 [한] 辯神論 [라] theodicea [영] theodicy [독] Theodizee [관련] 신 신학 악 자연

신의론(神義論)이라고도 번역되는 이 단어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theos(神)와 dike(義)이며 ‘신의 의로움’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세상에 존재하는 악으로 인해 생겨나는 신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려는 주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변신론에서 연구의 주요한 촛점은 “우주에 명백히 존재하고 있는 악의 실재에도 불구하고 신의 선(善)과 섭리를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가”이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악의 기원과 의미에 대해서 많은 철학자와 신학자들이 숙고해 왔다.

페르시아 종교와 같은 이원론에서는 세계란 선과 악이 서로 투쟁하는 전쟁터이고, 결국에는 선이 승리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일신교의 경우에는 신의 전능과 사랑이 현세의 악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오리게네스는 악의 존재를 피조물이 자유를 남용한 죄의 결과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계몽주의시대의 회의주의자 베일(P. Bayle, 1647-1706)은 매력적인 변증법을 사용하여 악이 실재한다는 사실과 신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 격론을 불러일으켰다. 라이프니츠(C.W. Leibniz)는 그의 저서 ≪변신론≫(Essais de Theodicee, 1710)에서 이에 답하여 현실의 세계는 가능한 한 최고선의 세계이고, 회화(繪畵)에서 그림자가 전체의 미와 조화를 산뜻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처럼, 가시적인 악은 보다 높은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인정되어진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 그의 극단적인 낙관론을 피력하였다. 이렇게 변신론이란 단어는 라이프니츠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근대에 들어오자 자연적인 악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악이 크게 부각되면서 변신론은 신학적인 중심논제의 위치에서 밀려났다. 즉 사회악이 신의 사랑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근대신학은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노력을 통해서만 하느님의 사랑과 섭리가 관철될 수 있음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특히 1, 2차 세계대전은 인간성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를 뿌리째 뽑아 버렸기 때문에 인간생활에 존재하는 악의 실재와 신의 사랑에 대한 문제가 논쟁의 촛점이 되었다. 이제 변신론은 이 문제의 중대성에 밀려 더 이상 논급되지 않는다. 다만 신에 대한 형이상학의 한 부분적 학문인 자연신학(natural theology) 속에서 언급되고 있다. (⇒) 악, 신학, 자연, 신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