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신론 [한] 汎神論 [라] pantheismus [영] pantheism

일반적으로 신과 우주 즉 자연의 대립을 인정하지 않고, 그 동일성을 설명하는 종교관, 철학관을 지칭하는 이 말의 어원은, 그리스어 ‘pan’(모두, 모조리)와 ‘theos’(신)의 합성어에서 찾을 수 있다. 만유신론(萬有神論), 만유재신론(萬有在神論)이라고도 한다. 세상 모든 것이 신이다. 또는 신과 우주와는 실제로 동일하다. 혹은 신이라는 것과, 이 세상에서의 신자들이 우주라고 부르는 것과의 사이에는 진정한 구별이 없다는 설이 ‘범신론’인데, 이에는 신과 세계와의 일체를 매한가지로 주장하지만, 신에 대한 세계의 상대적인 독립을 인정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신에 역점을 두어 세계란 신의 유한한 양태(樣態)의 총합(總合)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 세계를 신에게 몰입시키는, 즉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범신론’의 예로 스피노자(B. Spinoza)의 철학, 인도의 직관철학과 종교의 근원인 우파니샤드(upanishad, 優婆尼沙土)가 있고, 세계에 중점을 두어 그것을 유일한 실재로 보며, 신이란 이 실재하는 것 즉 세계의 총체에 불과하다는 시각에서 신을 세계에 몰입시키는 즉 세계의 상대적 독립을 인정하는 ‘범신론’으로서, 스토아학파의 철학이나 동양의 도가(道家)의 사상, 헤켈(E. Haeckel)의 유물론적인 일원론에 가까운 것들이 그 예이다. 이 밖에 자연을 생명에 가득찬 통일로 보고, 이 자연의 힘을 기르는 예술가의 태도도 ‘범신론’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범신론의 종교적인 의의는 ‘유신론’(有神論) 즉 ‘인격신론’(人格神論)과 대비해 보면 한결 뚜렷해진다. 실체의 단일성을 주장하는 범신론은 철학적인 입장에서 보아도 세계의 유한성, 제약성, 변화성 등과 신의 영원성, 절대성, 불변성 등과의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명확히 하지 못하며, 정신과 물질과의 본질적인 상이점, 선과 악의 대립을 해석하지 못한다. 신의 윤리적 인격적인 파악이 어렵게 되어 윤리의 기초, 모든 법의 기초가 무너진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신을 인격적인 존재로 보며, 신의 윤리적 인격적인 파악이 가능하다. 그리스도교는 이렇게 인격신(人格神) 신앙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의 범신론과도 근본적으로 상반된다.

[참고문헌] W. Driesenberg, Theismus und Pantheismus, Wien 1880 / G.E. Plumptree, General Sketch of the History of Pantheism, London 1881 / G.M. Schuler, Der Pantheismus, 1884 / F. Clark, Pantheism and Analogy, Ir TheolQ 20,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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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세형 [한] 范世亨 [관련] 앵베르

앵베르(Inbert) 주교의 한국명. ⇒ 앵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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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제 [한] 燔祭 [영] burnt sacrifice [관련] 희생

구약시대 제사의 한 종류. 짐승을 죽여 전부 태움으로써 드리는 제사. 번제물로는 흠이 없는 수컷짐승(소 · 양 · 염소 등)이 바쳐졌는데, 가난한 이들에게서는 날짐승(산비둘기, 집비둘기) 사용도 가능하였다. 레위기에 번제에 관한 규정이 상세히 나와 있다(레위 1:3-17). 즉 만남의 장막 문간에서 번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는 예식이 있은 뒤, 번제물을 바치는 사람이 번제물을 죽여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저며 제단 위에 피운 장작불에 차려놓는데, 공적인 제사인 경우 사제가 이 일을 담당하였다. 짐승의 피는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사제가 제단 주변에 뿌린다. 번제물은 불로 완전히 살라진다. 가죽은 사제의 몫이 된다. 번제는 짐승을 완전히 태워 하늘 높이 연기로 해체시킴으로써 인간과 인간에 속한 모든 것이 하느님의 전권에 종속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유태인들이 바치던 의무적인 번제는 다음과 같다. ① 날마다 바치는 번제 : 아침과 해거름에 한 살 난 어린 수양을 각 한 마리씩 곡식 예물과 포도주와 함께 바침(출애 29:38-42, 민수 28:3-29) ② 안식일의 번제 : 날마다 바치는 번제의 2배(민수 28:9-10) ③ 절기의 번제 : 매월 초하루, 무교절, 추수절, 오순절, 속죄일, 초막절 등에(민수 28:11-29:39), ④ 사제 성별식의 번제(출애 29:19, 레위 8:18, 9:2), ⑤ 출산 후 산모의 번제(레위 12:6-8), ⑥ 나병환자를 정하게 하는 번제(레위 14:19-20), ⑦ 부정을 벗는 예식의 번제(레위 15:15-30), ⑧ 서약을 깨뜨린 나지르인의 속되 번제(민수 6:11 · 16). (⇒)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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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원] Byrne, J. Patrick

Byrne, J. Patrick(1888~1950). 미국 메리놀 외방전교회원. 초대 평양교구장. 주교. 한국명 방일은(方溢恩). 미국 워싱턴에서 출생하여 1915년 성 마리아 볼티모어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1922년 메리놀 외방전교회가 교황청으로부터 평안도의 포교권을 위임받자 이듬해 5월 평양교구 창설 준비 책임자로 내한, 이해 가을 의주(義州)에서 모리스(Morris, 睦) 신부, 클리어리(Cleary, 吉) 신부와 만나 교구 창설 기초 작업을 벌이는 한편, 1924년 한국으로 파견된 메리놀회 수녀들과 신부들에게 한국어와 풍습을 익히게 하고 평북 비현(枇峴)에 임시본부를 설치하였다. 1926년 신의주 진사동에 성당을 신축하고 이어 캐시디(Cassidy, 姜) 신부로 하여금 중강진(中江鎭) 일대를 개척케 한 후, 평양을 장래 평양교구의 중심지로 선택, 서포(西浦)에 교구본부를 설치하여 이듬해 3월 17일 평양교구가 설정되자 초대 교구장에 취임하였다.

1929년 메리놀 외방전교회 총회에 참석차 귀국하였다가 이 회의에서 메리놀 외방전교회 부총장으로 피선되어 평양교구를 떠나게 되었고, 1935년에는 일본 교오또(京都) 교구장에 임명되었다. 그 후 광복이 되고 1947년 5월 12일 교황청에서 주한 로마교황사절관을 창설하게 되자 이해 10월 9일 교황사절로 내한, 대한민국을 승인하는 교황청의 승인서를 발표하는 한편 외교가로서 수완을 발휘하여 1948년 12월 12일 유엔총회에서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받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1949년 주교로 승품되어 이해 6월 14일 명동성당에서 뉴욕교구 보좌주교 맥도날드(McDonald) 주교의 주례로 주교로 성성되었고, 이 때 평양교구장 홍용호(洪龍浩) 주교가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체포되자 번 주교는 북한에서의 종교박해와 성직자들의 체포, 투옥에 대해 신랄히 비판하였는데, 이에 대한 북한 공상정권은 평양방송을 통해 만약 번 주교가 자기들에게 붙잡힌다면 무서운 보복을 하겠다고 협박하였다.

그 후 6.25전쟁이 일어나자 외국인 신부들을 일본으로 피난시키고 교황사절관을 지키다가 7월 11일 비서인 부드(Booth, 未) 신부와 함께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인민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 7월 19일, 평양으로 이송되었고, 만포(滿浦), 고산진(高山鎭), 초산(楚山) 등 여러 곳을 끌려 다녔다. 10월 31일부터 11월 17일까지 만포에서 중강진에 이르는 250리길을 도보로 끌려가는 이른바 ‘죽음의 행진’ 중 11월 25일 중강진 부근 하창리(下昌里)에서 갖은 고초와 수난 끝에 병사(病死)하였다. 임종 때 “나는 성직의 영광을 받은 후로 그리스도를 위해 여러분과 함께 고통을 겪을 수 있었던 것이 내 생애 중 가장 큰 영광이었다고 생각하오. 우리들의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내 소원이었소. 착하신 하느님께서 이 은혜를 주셨으니 감사할 뿐이오”라고 최후의 말을 남겼다. 1955년 미국 뉴욕에서 번 주교의 친구인 만주 무순(撫順)교구장 레이먼드(Laymond) 주교가 저술한 번 주교의 순교기 ≪쇠사슬에 얽힌 대사≫(Ambassador in chain)가 출간되었다.

[참고문헌] 韓龍換 · 徐相堯, 福音의 證人,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2 / 天主敎平壤敎區史, 분도출판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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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진제도 [원] Virgin Islands [한] ~諸島

1917년 이래 미국이 영유하고 있으며, 푸에르토리코의 동쪽 카리브해의 여러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면적 344㎢에 인구 약 10만명이다(1982년 추계). 1493년 콜룸부스가 발견하였으며, 1660년 경 프랑스인이 이곳에 교회를 세운 이래 많은 변천이 있었다. 남자 16세, 여자 14세 미만의 결혼은 무효이며, 남자는 21세 이상 여자는 18세 이상이면 부모의 동의 없이 결혼할 수 있다. 또한 낙태는 산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경우가 아니면 허용되지 않는다. 1980년 현재 가톨릭 신자는 약 2만 5,000명이며, 본당은 6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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