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적지(敎會史蹟地). 전북 김제군 금산면(錦山面)에 있던 유서 깊은 교우촌으로 박해(迫害)시대 때부터 교우들이 교우촌을 이루고 살았다. 1879년 체포되어 만주로 추방되었던 드게트(Deguette, 崔東鎭) 신부가 1881년 재입국하여 이곳에 잠시 피신해 있었고, 1892년부터 1895년까지 베르모렐(Vermorel. 張若瑟) 신부, 조조(Jozeau, 趙得夏) 신부, 라크루(Lacrout, 具瑪瑟) 신부 등이 이곳을 근거로 전라도 일대에 전교하였다. 그러나 1895년 라크루 신부가 근거지를 수류(水流)로 옮기고 그 곳에 본당을 창설하자 배재[梨峴]는 수류본당의 관할지역으로 되었다.
배론신학교 [한] 舟論神學校 [관련] 가톨릭대학
1855년 충청북도 제천(提川) 배론[舟論]에 설립된 성 요셉 신학교를 이르는 말.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학교. 초대 교장에 푸르티에(Pourthie, 申) 신부 취임. 1866년 병인(丙寅)박해로 폐교되었다. (⇒) 가톨릭대학
배론 [한] 舟論
교회사적지(敎會史蹟地)이며 유서 깊은 교우촌. 현 지명은 충북 제천군 봉양면 구학리(忠北 堤川郡 鳳陽面 九鶴里). 이곳은 1791년 신해(辛亥)박해를 피해 온 교우들이 농사와 옹기(甕器)를 구워 생활하며 신앙공동체를 이룬 곳으로, 마을이 위치한 계곡이 배(舟)밑창을 닮았다 하여 배론으로 불렸다. 1801년 신유(辛酉)박해 때 황사영(黃嗣永)이 이곳의 옹기굴에 숨어 있으면서 조선 교회의 박해상황과 외국의 도움을 청하는 내용을 적은 이른바 백서(帛書)를 작성했고 이를 북경(北京)교구장 구베아(Gouvea, 湯士選) 주교에게 보내려다 실패하고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1855년에는 배론 공소 회장 장주기(張周基)의 집에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성 요셉 신학당’이 세워져 교장 푸르티에(Pourthie, 申) 신부, 교사 프티니콜라(Petitnicolas, 朴) 신부가 조선인 신학생을 가르쳤고, 1861년 최양업(崔良業) 신부가 문경(聞慶)에서 병사하자 푸르티에 신부 일행이 최양업 신부의 시신을 이곳에 안장하였다. ‘성 요셉 신학당’은 1866년 병인(丙寅)박해 때 푸르티에 신부, 프티니콜라 신부들이 체포되어 순교함으로써 폐쇄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신학당 터, 최양업 신부묘소, 박해시대의 옹기굴 흔적 등이 남아있고, 1932년 몇몇 사제들에 의해 매입된 이후 1977년 원주교구에서 성지개발위원회를 구성하여 개발을 시작했으며 고(故) 양기섭(梁基涉) 신부에 의해 ‘성요셉 신학당’이 복원되고 피정센터가 건립되었다.
배교자 [한] 背敎者 [라] apostata [영] renegade [관련] 배교
다른 종교나 이념(理念)을 믿기 위해 스스로, 혹은 강제적으로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를 버리는 사람. 구약성서에서는 야훼의 성전에서 이방인의 신(神)이나 우상을 섬기는 사람을 배교자로 간주했고, 신약성서에서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던 사람들이 다시 개종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 사람들을 배교자로 간주하였다.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에 전파된 이후 4세기 까지는 로마황제들의 그리스도교 박해로 인해 많은 순교자들이 나오게 되었고 아울러 배교자들도 속출하였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1801년 신유(辛酉)박해 때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밀고한 김여삼(金汝三), 1839년 기해(己亥)박해 때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를 비롯 많은 교우들을 밀고한 김순성(金順性) 등의 배교자가 있었다. (⇒) 배교
배교 [한] 背敎 [라] apostasia [영] apostasy [그] apostasis
세례를 받은 자가 한번 공헌한 서약을 버리는 행위. 라틴어의 apostasia는 ‘신을 돌아보지 않는 것’, ‘신과의 이별’을 뜻하며 그리스어의 apostasis는 ‘반역’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배교는 ① 그리스도교 신앙을 버리는 것(apostasia a fide), ② 수도생활을 버리는 것(apostasia a monachatu), ③ 성직생활을 버리는 것(apostasia a clericatu)의 3가지 형태가 있고, ②는 수도자와 수녀가, ③은 성직자가 비합법적으로 종교직을 물러나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러나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①의 경우다. 구역성서에서는 야훼에 대한 반역(여호 22:22), 유태교 신앙의 포기(1마카 2:15)를 배교로, 신약성서에서는 모세율법의 배척(사도21:21), 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하느님을 배반하는 행위(2데살 2:3)를 배교하는 말로 기록하고 있다. 배교한 자를 보통 랍시(lapsi)라고 부르는데, 이교(異敎)의 신상(神像)에 희생제물(犧牲祭物)을 바친 자(sacrificati), 이교의 신상에 분향(焚香)한 자(thurificati), 희생제물을 바치기로 한 자(libellatici)들을 가리켰다.
3세기 데치우스(Decius) 황제의 칙령에 의해 의기소침해진 사람들이 신앙을 버리고 배교자가 되었다. 이들 가운데는 스스로의 행위를 반성하고 그리스도교로 돌아오려는 사람이 많았다. 성 고르넬리오(St. Cornelius)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St. Cyprianus)는 배교자의 교회 복귀를 장려하였고 주교회의에서는 공식적으로 보상행위를 한 배교자의 복귀를 허용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노바시아노(Novatianus)는 이러한 관대조치에 반대하고 떨어져 나가 이교집단을 형성하였다. 그 뒤 배교자에 대한 공식적인 규정은 니체아 공의회에서 마련되었다. 한편 근대의 배교는 종래와 같은 이교도의 개종도 있긴 하지만 대표적인 것은 역시 무신론으로 빠져드는 일이다. 이러한 현상은 르네상스와 계몽기를 거쳐 19세기에 이르면 교회 이탈운동이 광범하게 일어나게 된다.
이리하여 현대적인 배교의 원인은, 전쟁과 자본주의적인 사회모순에 대한 교회의 태도, 국가주의나 사회주의에 대한 교회의 태도, 날로 늘어가는 교회의 부(富), 결혼제도와 산아제한에 대한 교회의 자세, 진보와 과학을 적으로 보는 교회의 시각(視角) 등에 회의를 느낀 그들의 마음은 교회소원의 경향을 가진 신자들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20세기 후반에 이른 지금의 교회에서는 이러한 신자들의 교회 이탈을 막는 것이 사목의 긴급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교회가 신자들의 교회 이탈을 막고 제 위치를 정립하기 위해서 더 이상 방관하고 있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음도 사실이다. 교회는 교회 반대자들이 제기하는 문제에도 귀를 기울이면서 그리스도교가 가진 기본적인 자세에 충실해야할 필요성 앞에 서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적절히 지적했듯이 교회는 하느님의 현대적 계시를 읽어야 할 것이다. 즉 공의회의 사목헌장에서는 무신론이 발생하는 원인의 하나로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판을 지적하고 있다.
[참고문헌] B. Violet, Die Kirchenaustrittsbewegung, 1914 / K. Algermissen, Die Gottlosenbewegung der Gegenwart, 19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