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류성 [한] 無謬性 [라] infallibitas

무류성은 ‘무류지권’이라는 말로 잘못 사용되고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교회와 교도권의 무류성’이다. 또한 이 말은 성서의 무오성(無誤性)과도 전혀 다른 개념의 말이다.

1. 전체교회의 무류성 : 교회 전체가 구원의 진리를 믿음에 있어서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은 성서에 의하여 명백하다. 주께서 세우실 교회를 지옥문이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약속하셨고(마태 16:18), 주께서 세상 끝날까지 교회와 함께 계시겠고(마태 28:20), 진리의 성령이 영원히 교회를 지도하시겠다(요한 14:16-17)는 약속은, 만일 진리의 전달자인 교회전체가 오류에 떨어질 수 있다면 무의미한 약속이다. “하느님의 집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교회이고 진리의 기둥이며 터전이라”(1디모 3:15)고 믿기 때문에 교회헌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령의 도유를 받는 신자들의 전체는 믿음에 있어서 오류를 범할 수 없으니 주교로부터 마지막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가 신앙과 도덕에 관하여 같은 견해를 표시할 때에 백성 전체의 초자연적 신앙감(信仰感)에서 이 특성이 드러난다”(교회헌장 12).

2. 주교단 전체의 무류성 : 교회 전체의 무류성은 교회의 신앙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주교단 전체에도 나타난다. 주께서 사도들의 말을 듣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말을 듣는 사람이라 하셨고(루가 10:16, 마태 10:40, 요한 13:20), 바울로는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이미 전한 기쁜 소식과는 다른 것을 여러분에게 전한다면 그는 저주받아 마땅하다”고 선언하였다. 아타나시오는 니체아 공의회를 통하여 선언된 주님의 말씀은 영구히 남으리라 하였고(Ep. ad Afros, RJ 792), 교회헌장은 “각 주교들이 무류의 특권을 누리는 것은 아니지만, 온 세계에 산재하면서 서로 일치하고 또 베드로의 후계자와 일치하여 신앙과 도덕에 관한 사정을 유권적으로 가르칠 때에 결정적인 한 가지 판단에 의견이 일치하면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교리를 오류없이 가르치는 것이다”(교회헌장 25)하였다. 주교단의 장엄 교도권 행사인 세계 공의회의 무류성은 명백하다. “주교들이 공의회에 모여서 세계 교회를 위하여 신앙과 도덕에 관하여 가르치고 판단할 때에 무류성은 더욱 명백한 것이니, 이 결정 사항은 신앙적 순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교회헌장 25).

3. 교황의 특별 교도권의 무류성 교황은 주교단의 단장으로서 다른 주교들과 함께 장엄 교도권을 행사하지만(공의회의 경우 – 교회의 최고 목자의 자격으로 단독적으로 장엄 교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런 경우를 교좌선언(敎座宣言, ex cathedra)이라고 한다. 교황이 교좌에서 신앙과 도덕에 관한 문제에 최종 단안을 내릴 때에는 무류한 결정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선언은 극히 희소한 일이지만 근세에 몇 번 있었다. 교황의 단독 선언이 무류하기 위하여 반드시 다음 조건들이 채워져야 한다. ① 전체 교회의 최고 목자로서 공식으로 선언한다. 따라서 교황도 개인 자격으로나 로마 교구의 교구장 자격으로 선언한 것은 무류하다고 보장할 수 없다. ② 어떤 진리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의사를 밝혀야 한다. 따라서 교황의 통상적인 설교, 지도, 권유, 해설, 반박, 경고 등이 다 무류하지는 않다. ③ 신앙이나 도덕의 문제에 국한된다. 따라서 교황이 아무리 강력하게 주장할지라도 과학, 예술, 인문, 정치, 경제, 사회 등에 관한 주장이라면 무류할 수 없는 것이다.

4. 무류성에 대한 태도 : 장엄 교도권이 정의한 것은 신자들의 동의여부와는 상관없이 결정 자체로서(ex sese) 무류한 것이지만, 교도권이 신자 전체의 신앙감과 유리되어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교도권자들은 이런 중대한 결정에 앞서서 충실한 조사, 연구, 협의, 기도를 거칠 중대한 도덕적 의무를 지고 있다. 교도권은 신앙 진리의 최고 규범이 아니고 더 높은 규범인 성경과 성전의 규제를 받는 규범(norma normata)이다. 그러므로 장엄 교도권이 선언한 내용을 해석할 때에는 엄밀하게(stricte) 그리고 축소하여(restrictive) 해석하여야 한다. (鄭夏權)

[참고문헌] B.D. Dupuy, L’infaillibilite de I’Eglise, in Catholicisme, t. 5, col. 1549-1572 / G. Dejaifve, Pape et eveque au 1er concile du Vatican, 1961; L’infaillibilite de I’Eglise, 1963 / 정하권, 교회론 II, 125-133(문헌목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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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 [한] 無量

일반적으로 ‘무한량’, ‘막대함’ 등과 같은 말로서, 양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가리킨다. 가톨릭에서는 하느님의 품성(稟性)을 적극적인 것, 소극적인 것 둘로 나누어 설명할 때, 적극적인 품성의 하나를 ‘무소부재’(無所不在)라는 말로 나타냈음에 대조하여, 소극적인 품성의 하나로서 ‘무량’(無量)을 꼽는다. 우리나라 가톨릭 교회사적으로 초기단계부터 쓰였던 용어인데 ‘한도가 없는 일’을 지칭한다. ≪한불자전≫(韓佛字典, Dictionnaire Coreen-Francais, 1880)에 의하면 ‘무량하다’를 ‘무제한하다’(Etre sans limite), ‘무한한’(Sans bornes), ‘무한의’, ‘한없는’(illimite) 등으로 풀이하고 있는데. 이 ‘무량’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적으로는 ‘신의 무한성’(infinity of God)을 가리킨다. 즉 하느님의 한계가 없는 완전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느님은 “지성과 의지와 모든 완전성에 있어서 무한인 것이다”(제1차 바티칸 공의회, 제3총회 제1장). 신에게는 가능성은 없으며, 신은 순수한 현실유(現實有)이다. 신은 자기 안에 지식, 권능, 존재에 있어서의 모든 완전성의 충만을 다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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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토리 정전목록 [한] ∼正典目錄 [영] Muratorian Canon

무라토리(L.A. Muratori, 1672-1750)에 의해 1740년 밀라노의 암브로시오 도서관에서 발견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신약성서의 경전목록. 작성 연대는 교황 비오 1세(재위 : 142-155)가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74-77행) 2세기에 작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철자와 문법적 오류가 많은 점, 서투른 라틴어로 쓰인 점, 그리고 문법적 구성으로 보아 그리스어에서 번역된 것으로 추측되며, 저자로는 성 히폴리토(St. Hippolytus)가 가장 유력시된다. 앞뒤가 파손되어 있고 85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르코 복음에 대한 언급의 말미로 시작되어 루가와 요한이 각각 제3, 제4 복음으로 열거되어 있고 히브리서, 야고보서, 제1, 제2의 베드로서를 제외한 모든 신약성서가 언급되어 있다. 또한 경고와 함께 베드로의 묵시록과 솔로몬의 지혜서도 언급되었다. 반면 2세기 중엽에 쓰여진 도덕서 ‘헤르마스의 목자'(Shepherd of Hermas), 성 바울로가 라오디케아(Laodicea)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 보내는 마르치온(Marcion)적인 서한, 그리고 다른 그노시스적이거나 몬타니즘적인 글들은 배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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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 [한] 巫堂 [관련] 무속신앙

⇒ 무속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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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회주의 [한] 無敎會主義

일본의 종교가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 1861-1930)가 시작하고 그의 문인(門人)들에 의해 계승되고 있는 신앙과 주장. 의식, 전례, 교회당 등 교회의 제도에 매이지 않으며, 하느님의 말씀은 성서에 의해서만 주어지고, 구원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오직 신앙에 의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는 복음주의적인 입장을 신봉하는 독특한 그리스도교 운동을 형성한 것이 이 무교회주의이다. 1878년 우찌무라는 삽뽀로(北海道 札幌) 농학교(農學校)에 다닐 때 감리교 선교사 해리스(M.C. Harris)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 뒤 선교사들의 교파주의적인 경쟁심에 실망하고, 미국 유학을 통하여 복음신앙의 재발견 시기를 거쳐 귀국하였다. 그는 타고난 깊은 애국심과 그리스도교를 연결시키려고 한 것 때문에 선교사들에게 배척을 받게 되자, ≪그리스도 신도의 위안≫(1893)에서 비로소 “나는 무교회가 되었다”고 해서 ‘무교회’란 말을 쓰기 시작하였다. 1901년 잡지 <무교회>를 창간하여 그 제1호에서 무교회주의 그리스도교는 결코 교회를 부정함을 목표삼은 것이 아니라, ‘교회 없는’ 사람들의 교회라고 선언, 이보다 한 해 앞서 창간한 잡지 <성서의 연구>(聖書之硏究)의 발행을 통하여 성서연구의 그룹적 활동을 계속, 성서강의에 힘써 각계에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무교회주의의 성립 배경은, 일본적인 주체적 그리스도교의 모색, 교회의 형식과 경화에 대한 도전이요, 따라서 주체성 확립과 개혁 의지가 그 기축을 이루고 있다. 우찌무라는 “나는 직접 그에게로(즉 그리스도에게로) 향한다. 교회, 교황, 감독, 기타 유상 무상의 거간을 통하지 않고 그대로 직접 그에게 향한다. 그리스도교가 역사이기를 그칠 때 – 그리스도교는 역사가 아니다 – 교권을 갖는 교회란 것은 소멸된다”고 결론을 맺었다. 서구 그리스도교에서 독립하고자 한 욕구에서 볼 때, 동양적인 체질의 무교회주의는 그리스도교의 적나라한 모습을 직접 접함에서 일본적인 그리스도교의 바탕을 보고 있었다.

[참고문헌] 土肥昭未, 內村鑑三, 東京 敎團出版局, 1962 / 內村鑑三 信仰著作全集, 東京 敎文館, 1961-1964 / 萬有百科大事典(Genre Japonia), 小學館,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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