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티카 [라] dalmatica [영] dalmatic

부제복(副祭服). 부제가 미사와 행렬 등 장엄한 의식 때 다른 모든 제의(祭衣) 위에 입는 옷, 소매는 폭이 넓고 짧으며 양 옆이 터져 있고 길이는 무릎까지 온다. 앞과 뒤에, 어깨에서 가장자리까지, 소매 끝에 다양한 색상의 줄무늬가 두 줄로 장식되어 있다. 미사 집전 사제의 제의와 동일한 천과 색으로 만들어 진다. 라틴 전례에서 부제서품 때 수여된다.

달마티카라는 이름은 달마티아(Dalmatia)의 모직으로 만들어진 데서 유래하며,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재위 : 284~305) 치하에 달마티아에서 로마로 전해져 귀족계급에서 유행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처음에는 교황만이 입었고 특전으로서 교황이 다른 이들도 입도록 허용했다고 전해진다. 4세기에 로마의 부제들이 처음 입게 되었고 12세기까지는 모든 부제들이 입게 되었으며 주교가 주교미사 때 제의(chasuble) 아래에 입기도 하였다. 원래 달마티카는 모직이나 아마포, 비단으로 만들어져 길이가 발등까지 오고 흰색으로 고정되었으나, 9세기에 로마 밖에서 길이가 무릎까지로 짧아졌고 옷 입기 편하게 양 옆이 터지게 되었다. 12세기에 색상도 다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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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레 [원] Dallet, Claude Charles

Dallet, Claude Charles(1829~1878). 신부.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교회사가. 1829년 10월 18일 프랑스 디종(Dijon)의 동북부에 위치한 랑그르(Langres)에서 출생. 랑그르의 소신학교(小信學校)를 거쳐 대신학교(大神學校)에 진학하여 수학하던 중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1850년 10월 5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 1852년 6월 5일 사제서품을 받고 인도 마이수르(Maissour) 지방의 선교사로 포교에 전념하는 한편 저술활동을 벌여 1859년 마이수르 지방의 개신교의 공격을 논박한 교리서 《A Controversial Catechism or short Answers to the Objections of Protestants against the true Religion》을 영어로 저술, 모든 선교사들의 필수품이 될 정도로 찬사를 받았다. 1860년 간질(癎疾)에 걸려 귀국, 치료를 받고 병이 어느 정도 낫자 힌두어의 보급을 위해 힌두어 활자를 주조(鑄造)하여 파리 국립인쇄소에 힌두어 인쇄시설을 갖추게 하고 1863년 포교지 인도로 돌아갔으나 간질이 재발되어 1867년 다시 귀국, 파리에서 병을 치료한 후 파리 외방전교회와 신학교를 위해 활동하였다. 1871년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보불전쟁(普佛戰爭)이 일어나 신학교의 경영이 어려워지자 캐나다와 미주지역을 방문, 기부금을 모집하는 한편 캐나다와 북미(北美)에서 파리 외방전교회의 활동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였고 이듬해 한국 주재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보낸 기초 자료와 다블뤼(Daveluy, 安敦伊) 주교의 비망기, 보고 및 편지들을 중심으로 한국 천주교회사의 편찬에 착수, 2년 후인 1874년 상 · 하 2권으로 된 《한국천주교회사》(Histoire de L’Eglise de Coree)를 출판하였다. 그 후 파리 외방전교회사의 편찬에 착수, 자료 수집차 외방전교회 관할의 각 포교지를 방문하기 위해 1877년 2월 파리를 떠나 일본(日本), 만주(滿洲)를 방문하였으나 한국에는 들어오지 못하고 북경(北京)에서 오래 체류한 뒤 다시 코친차이나, 홍콩을 거쳐 안남(安南)의 케소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케소에서 이질에 걸려 1878년 4월 25일 사망, 케소에 안장되었다. 평소 시와 철학에 관심이 깊어 몇 편의 철학 논문을 남겼고 선교사로 떠나가는 동료신부들을 격려하는 시 《선교사의 출발에 붙이는 노래》(Chant du depart des missionnaires)에는 작곡가인 친구 구노(Gounod)가 곡(曲)을 붙이기도 하였다. 달레의 사망으로 편찬이 중단되었던 《파리외방전교회사》(Histoire generale de la Societe des Missions-Etrangeres)는 1894년 동회원 로네(Adrien Launey)에 의해 완성되어 전 3권으로 간행되었다.

[참고문헌] 崔奭祐, 韓國敎會史의 探究, 1982 / Les Missions Catholiques, t. X, 1878, pp.417-418 / Compte-Rendu, 1878 / Societe des Missions Etrangeres, 1879, pp.7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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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원] Dante, Alighieri

Dante, Alighieri(1265~1321). 이탈리아 최대의 시인. 피렌체 태생. 9세 때 미소녀 베아트리체(Beatrice, 1266~1290)와 처음 만나 플라토닉한 사랑을 느끼고, 평생 변함이 없었다. 그 애정이 그의 정신생활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베아트리체는 천상적(天上的)인 사랑의 상징으로 아름답게 형상화되어 《신생》(La vita nuova), 《신곡》(Divina Commedia)에서 읊어지고 있다. 베아트리체가 젊은 나이로 요절하자, 그는 그 죽음을 깊이 애도하고, 정열을 학문연구에 기울이고, 철학 · 신학에 침잠(沈潛)하여 거기서 위안을 찾아냈다. 피렌체대학, 볼로냐대학에서 수사학을 공부하고 상류사회에 출입, 1295년경 피렌체시의 여러 요직에 취임하면서, 귀족의 딸과 결혼하여 4자녀를 얻었다. 피렌체의 행정장관으로 활약, 시의 자주독립을 꾀하고 정치 불안을 일소한 듯이 보였으나, 반대당에 의한 정변으로 실각, 추방의 몸이 되고, 한때는 사형판결까지 받았다(1302년). 그 후는 이탈리아 각지의 궁정과 프랑스에서 방랑생활을 했고, 만년에는 라벤나의 영주(領主)에게 몸을 기탁하다가 그 곳에서 병사하였다. 《신생》은 31편의 연애시를 모은 이탈리아어 작품으로, 이탈리아어 문학을 세계수준에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그의 최대 걸작인 종교적 서사시 《신곡》은 방랑 중에 집필하기 시작, 《지옥편》, 《속죄편》을 완성하고, 만년에 《천국편》을 완성하였다. 그리스도교적 세계상을 장대한 상징의 형태로 예술화하여, 사상적인 깊이, 창조적 상상력, 고뇌와 정열의 강렬함, 언어의 아름다움으로 해서 비할 데 없는 명작으로 손꼽힌다.

[참고문헌] Bassermann, Dantes Spuren in Italien, 1897 / Auerbach, Dante als Dichter der irdischen Welt, 1929 / H. Gmelin, Dantes Weltbild, 1940 / Nardi, Saggi di filosofia Dantesca,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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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재 [한] 斷食齋 [라] jejunium [영] fasting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고난받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생각하며 죄와 욕정의 사슬을 끊고 자신을 완전하게 그리스도께 봉헌하기 위해 음식물의 양과 종류를 제한하고 그것을 지키는 행위를 단식재라고 한다. 단식재는 구약시대의 관습에서 유래되었다. 모세(출애 34:38), 엘리야(1열왕 7:8)의 40일간 단식, 다니엘(다니 10:2)의 3주간 단식 등의 그것으로 하느님과 신비적인 대화를 나누기 위한 준비작업으로서의 성격이 있다. 속죄일에는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단식하기도 하였다(레위 16:2). 구약시대의 단식은 상당히 엄격하였다. 속죄복(贖罪服)[苦衣라고도 한다]을 입고, 목욕도 하지 않은 채, 재[灰]를 뒤집어 쓰고, 노동과 부부간의 동침도 금지되었다. 선약성서에도 단식에 관한 기혹이 나와 있다. 세례자 요한과 그의 제자들이 단식하였고 (마태 9:14 · 17,마르 2:18, 루가 5:33-39), 예수도 단식하였으며 나아가 장려하였다(마태 6:16, 루가 2:20). 초대 교회에서는 속죄자들에게 엄격한 단식을 요구하였고, 세례 준비자들에게도 단식을 권장하였다. 그 뒤 단식재는 교회의 규정에 따라 모든 신자들이 재의 수요일, 사순절의 금요일과 토요일, 사계(四季)의 재일(齋日), 축일의 전날 등의 날에 단식재를 지켜야 했다. 이러한 단식은 하느님에 대한 순종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서 단식으로 절약된 음식물을 가난한 이웃을 돕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현대에 접어들면서 생활이 복잡해지고 단식재를 지켜나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음에 비추어 1966년 교황 바오로 6세는 단식규정을 개정하였다. 즉 교황헌장 <페니테미니>(Paenitemini)는 “단식은 그날 점심 한 끼만 충분하게 하고 아침과 저녁에는 그 지방의 관습에 따라 음식의 양과 질을 조절할 수 있다”고 하여 단식의 법적인 의미만 남기고 “단식에 대한 적절하고 효과적인 규정은 각국의 주교협의회에 맡긴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따르면 전 교회가 단식재를 지켜야 할 날은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이 된다. 이때에는 전 세계 교회의 신자 중 21세 이상 61세 이하의 모든 신자들은 각국 주교협의회의 규정에 따른 단식재를 지켜야 한다. 다만 신체가 허약하여 단식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제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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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규정 [한] 斷食規定

단식의 의미와 형식, 신자들이 지켜야 할 의무 등에 관한 규정.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참된 그리스도 교인으로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행하는 단식은 초대 교회시대부터 사순절 기간과 사계의 재일 중 신자들이 지켜야 할 의무의 하나로 행하여져 왔다. 이 단식규정은 상당히 엄격하여 복잡한 현대생활에 맞게 수정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에 따라 1966년 교황 바오로 6세는 교서 를 통하여 단식규정을 현대인의 생활에 맞도록 수정하였다. 이 교서에 따르면 전 세계 모든 교회가 지켜야 하는 단식일은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이며, 단식을 지켜야 하는 사람은 만 21세에서 60세까지의 건강한 신자들이다. 또 단식일이라고 하여 하루 종일 음식물을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한 끼의 식사는 충분한 양을 섭취하도록 하고, 아침과 저녁 식사도 가볍게 하는 것을 금지하지는 않았다. 단식으로 절약된 양식은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데 사용하도록 하고 있으며, 여기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각국의 주교회의가 정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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