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금(1789~1839).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 안나. 서울에서 태중교우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독실한 신앙생활을 했고, 중년에 과부가 된 뒤로는 친정 노모와 함께 살면서 열심히 수계했는데, 이웃에 사는 이광렬(李光烈)의 가족과 매우 화목하게 지내 그 평판이 교우들 사이에 널리 퍼졌었다. 1839년 4월 7일 이광렬 일가와 함께 체포되어 포청과 형조에서 혹형과 고문을 이겨내고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7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김임이 [한] 金任伊
김임이(1811~1846).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동정녀(童貞女). 세례명 데레사. 서울의 교우가정에서 태어나 7세 때 수정(守貞)을 결심하고 그 뒤 오직 신앙생활에만 전념하였다. 20세 때 부친이 사망하자 오빠 베드로와 함께 친척들의 집을 전전하며 살았고, 1839년 기해(己亥)박해 후에는 이문우(李文祐)의 양모 오 바르바라의 집에서 살았으며, 1845년부터는 김대건(金大建) 신부의 처소를 돌보며 살았다. 1846년 5월,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자 신부집에 남아 있던 여교우들과 함께 현석문(玄錫文)이 마련한 새 집으로 피신했으나 결국 7월 11일 현석문, 정철염(鄭鐵艶), 이간난(李干蘭) 등과 함께 체포되어 9월 20일 매를 맞아 거의 반죽음이 된 몸으로 6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이어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김일호 [한] 金日浩
김일호(?~1802).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未詳). 경기도 양근(楊根)에서 출생. 1799년 서울로 이주, 약국을 경영하던 정인혁(鄭仁赫)으로부터 《천주실의》(天主實義)를 빌려 읽은 후 입교, 그 후 명도회(明道會)에 가입하여 정약종(丁若鍾, 아우구스티노), 황사영(黃嗣永, 알렉산데르), 최필제(崔必悌, 베드로), 정인혁 등과 모임을 갖고 명도회의 활성화를 위해 지방의 교우들을 방문하는 등 정력적으로 활동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체포되어 1802년 1월 29일(음 1801년 12월 26일) 형조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고향 양근으로 이송되어 이튿날 그 곳에서 권상문(勸相問)과 함께 참수당하여 순교하였다.
김익진 [한] 金益鎭
김익진(1906~1970). 교육자. 문필가. 세례명 프란치스코. 호는 야인(也人). 본관은 안동(安東). 전남 목포(木浦)에서 한말(韓末) 장성 군수(長城郡守)를 지낸 김성규(金星圭)의 3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한학(漢學)을 수학하고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대전(大田)중학, 서울 중앙고보(中央高普), 일본 와세다(早稻田)중학을 거쳐 중국 뻬이징(北京)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했고, 이 때 학생운동과 독립 운동에 관계하였다. 한때 사회주의 사상에 빠져 공산당에 가입하기도 했으나 부모의 만류로 중국에서 귀국하여 불교에 심취하다가 오기선(吳基先) 신부와 교분을 맺은 뒤로는 천주교에 심취, 오기선 신부의 권면과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감동되어 1936년 영세 입교하고 이듬해 프란치스코 제3회에 가입하였다. 그 뒤 광주(光州)교구의 섭외 일을 돌보다가 1940년 선친의 유산이 있는 장성(長城)으로 이주하여 신앙생활에 전념하며 장성성당을 건립했고 8.15광복이 되자 스스로 자신의 토지를 소작인에게 분배하고 가산을 정리하여 광주교구에 헌납하였다. 1948년 다시 대구(大邱)로 이주하여 교육계에 투신, 왜관 순심중학교 교장, 김천 성의 중학교 교감 등을 역임했고 6.24 전쟁 중에는 대구교구에서 발행하던 <가톨릭시보>의 편집동인으로 활약하다가 종전이 되면서 다시 교육계로 돌아가 경주 근화여중 교감으로 재직하였다. 1955년부터는 문필생활에 전념, 이후 많은 저술을 남겼고 1967년 한쪽 눈을 실명한 후로 오직 신앙생활에만 전념하던 중 1970년 1월 6일 고혈압으로 사망, 대구 범어동본당 묘지에 안장되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이신영(李信榮)과 7남매가 있는데 3녀 화영은 현재 ‘예수의 작은 자매회’의 수녀이다.
주요 저서로는 《레지오 마리에 직무수첩》(번역, 光州, 1956), 《동서의 피안(彼岸)》(번역, 가톨릭出版社, 1961), 《동방문화와 공교(公敎)》(번역, 분도出版社, 1965), 《내심낙원》(번역, 聖바오로出版社, 1966), 《민속(民俗)과 서학》(유고집) 등이 있다.
김이우 [한] 金履禹
김이우(?~1801). 순교자. 김범우(金範禹, 토마스)의 동생. 서울의 역관(驛官) 집안에서 출생. 한국 천주교회 창설 직후 동생 현우(金顯禹, 마태오)와 함께 맏형 범우에게 천주교를 배워 입교하였고,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때 체포되어 포청에서 장사(杖死), 순교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