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쁜 [한] 金~ [관련] 이의송

김이쁜(1811~1866). 순교자. 이의송(李義松)의 처. 세례명 마리아. 황해도 출신으로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상경하여 입교했고, 그 후 1866년 병인(丙寅)박해가 일어나자 경기도 시흥(始興)으로 피신하였으나 체포되어 10월말(음 9월 14일) 양화진(楊花津)에서 남편, 아들 이붕익(李鵬翼)등과 함께 군문효수당하여 순교하였다. (⇒) 이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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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기 [한] 金以器

김이기(1858~1895). 아명은 진구(鎭九), 자는 중성(重聲), 호는 어초자(漁樵子). 서울에서 출생하여 충청도 노성(盧城)에서 한학(漢學)을 배우며 소년시절을 보냈다. 16세 때 김옥균(金玉均)의 개화당에 가입하고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이 실패하자 만주로 망명, 동학을 배운 후 간도의 호천개[湖泉浦]에 정학하여 의원을 개업하다가 간도의 벽촌서학대(樓鶴臺)에 학원을 세워 동학(東學)을 가르치는 한편 동학과 다른 종교를 비교, 연구하여 한만국경 일대에 학문적 도인적 명성을 크게 떨쳤다. 그 후 동학교리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가 1894년 동학혁명 후 학원이 폐쇄되자 천주교에 귀의, 천주교 연구를 위해 상경하던 중, 함북 고로에서 동학당으로 체포되어 1895년 회령(會寧) 옥에서 장사(杖死)하였다. 죽기 전 수제자 김영렬(金英烈, 요한)에게 천주교를 믿을 것을 당부, 그로 하여금 ‘북간도의 12종도’를 형성케 하는 등 간도지방 천주교 수용과 발전에 공헌하였다. 1933년 연길교구에서 용정성당 내에 있는 묘소에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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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호 [한] 金義浩

김의호(?~1802). 순교자. 일명 경서. 서울 출신으로 애오개(현재의 아현동)에서 염색업(染色業)을 하며 살았다. 1791년경 황사영(黃嗣永, 알렉산데르)에게 문교(聞敎)하여 입교했고 아들 희달(喜澾)을 황사영에게 맡겨 글을 배우게 하였다. 1801년 황사영의 백서사건이 일어나자 최설애(催雪愛), 송재기(宋再紀) 등과 함께 황사영에게 상복(喪服)을 만들어 줘 피신하게 한 죄로 체포되어 1802년 1월 29일에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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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덕 [한] 金允德

김윤덕(?~1815). 순교자. 세례명 아가다 막달레나. 경상북도 상주의 은재(慶州郡 利安面 猪音里)에서 태어났다. 입교 후 청송(靑松)의 노래산(老萊山)으로 피난하여 살던 중 1815년 부활축일을 지내다가 30여명의 마을 교우와 함께 체포되었다. 체포된 후 경주진영으로 압송되어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이겨내고 다시 대구감영으로 이송되었으나 1815년 5월경(음) 그곳에서 형벌과 고문의 여독으로 옥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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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육 [한] 金堉

김육(1580~1658). 호는 잠곡(潛谷)으로 1624년 문과에 급제한 문신이자 학자. 1636년(인조14년)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1643년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 · 도승지(都承旨)가 되었다. 1649년(효종 1년)대사헌을 거쳐 우의정에 올랐고 1655년 영의정이 되었다. 경제에 탁월한 지식을 갖고 있던 그는 백성수탈의 법적 근거였던 공물법(貢物法)을 폐지하고 대동법(大同法)을 실시케 하였고, 상평통보를 주조케 하여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미 역법(曆法)개정, 교통수단 개선, 활자 주조 등에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한편 동지사나 소현세자(昭顯世子)의 보양관(輔養官)등으로 청나라에 드나들면서 서학(西學)을 비롯, 서양문물 수입에 기여하고 그의 경제학은 실학(實學)의 원조인 유형원(柳馨遠)에게 큰 영향을 미쳐 실학에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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